50여 년 전, 내가 처음 본 바나나는 상처투성이였다. 껍질에는 갈색 반점이 여기저기 퍼져 있었고, 한쪽은 이미 물러져 잘린 상태였다. 하지만 그 바나나는 달콤한 향을 뿜으며 내게 다가왔고, 나는 그 향만으로도 가슴이 설레었다.
아버지가 지으신 그 집 왼쪽 대문 옆에는 작은 구멍가게가 있었고, 아홉 식구의 생계가 그 공간에 달려 있었다. 가족들은 번갈아 가며 가게를 지켰고, 나도 어린 나이에 종종 그 자리를 대신했다.
그럴 때면 나는 아무도 몰래 사탕통에 손을 슬쩍 집어넣곤 했다. 하지만 사탕을 줜 손에는 알 수 없는 맘이 딸려 나왔다. 바늘 도둑이 소 도둑 될까 걱정하면서도, 너무 맛있어서 멈출 수 없었다. 어린 마음에 ‘선택’과 ‘유혹’을 배워가는 순간이었다.
어머니는 가게에서 팔 물건들을 사기 위해 종종 도매시장으로 가셨다. 나는 이따금 어머니를 따라나서곤 했다. 싸고 좋은 물건을 찾기 위해 시장을 몇 바퀴나 돌고 또 돌던 어머니. 그 길은 길고 지루했다. 집으로 돌아올 때면 커다란 짐 때문에 어머니의 목이 보이지 않았다. 앞서 걷는 어머니가 아니, 커다란 짐 덩이가 자꾸만 흔들렸다. 나는 그것을 바라보며 어머니의 목이 부러질까 무서웠다.
그 시절 바나나는 흔한 과일이 아니었다. 시장 한쪽에서 겨우 볼 수 있었지만, 이미 물러지고 흠집 난 것들이 대부분이었다. 겉모습은 볼품없지만, 껍질을 벗기면 믿을 수 없을 만큼 달콤한 향과 맛이 숨겨져 있었다. 하지만 그마저도 덥석 사기엔 비쌌다.
장보기가 끝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 어머니는 그 바나나를 꼭 하나 사 주셨다. 바나나를 처음 베어 무는 순간, 나는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아이가 되었다. 단순한 간식이 아니었다. 힘든 장보기를 마치고 얻은 작은 보상이자, 어머니와 함께 걸은 시간에 대한 선물이었다.
그런 나를 흐뭇하게 바라보시던 어머니는 늘 미안한 듯 말씀하셨다.
“다음에는 온전한 걸 사 줄게.”
그러나 나는 고개를 저었다.
그 바나나는 이미 충분히 달콤했고, 더 바랄 것이 없었다. 불완전했지만, 그 안에 담긴 마음만큼은 흠이 없었다. 그때 나는 어렴풋이 알았는지도 모른다. 사랑은 꼭 가장 좋은 형태로만 오지 않는다는 것을. 때로는 상처 난 모습으로 우리 곁에 오기도 하지만, 그것을 돌려줄 시간은 다시 오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을 그때는 몰랐다. 엄마에게 한입 드시라고 했어야 했는데... 그렇게 빨리 먼 길 떠나실 줄 미처 몰랐다.
세월이 흘러, 지금 마트에는 언제나 흠 하나 없는 바나나가 진열되어 있다. 값도 싸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그때 그 바나나만큼 달게 느껴지지 않는다. 맛 때문이 아니라 기억 때문일 것이다.
갈색 반점이 돋은 바나나 하나. 그것에 담겨 있던 어머니의 마음을 나는 기억한다.
불완전했기에 더 선명하게, 지금도 내 마음속에서 충분히 달콤하다. 그러나 그 달콤함을 이제는 전할 길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