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지니삼촌 Oct 29. 2023

005. 화가의 회복력.

< 영혼의 그림과 편지들/빈센트 반 고흐>

우연히 '빈센트 반 고흐'에 대한 글 읽었다.

그는 37세의 짧은 생을 마감하기 전까지 900여 점의 유화를 그렸지만 오직 단 한 점만이 팔 수 있었다. 성격이 모나고 예민해서 인생의 유일한 벗은 친동생 '테오'뿐이었다. 생전에 동생과 나눈 수백 통의 편지가 그의 그림과 함께 남아 찬란한 유산이 되었다.


23세에 일하던 화랑에서 해고를 당한 뒤, 목회자의 길을 자원하였으나 실패했다.


'직장, 친구, 가족,  신, 미래(희망)'로부터 버림을 받았다고 느끼던 암흑의 시기에 화가의 길을 선택한다. 평생을 경제적 빈곤 속에 동생의 지원을 받으며 살았고 경제적 자립을 위해 고갱과의 '화가공동체'를 꿈꾸었으나 그마저 산산조각 났다. 그 충격으로 생레미정신병원으로 스스로를 격리시킨다.


나를 단숨에 사로잡은 것은 실패로 점철된 인생행로를 걸은 그가 어떻게 가장 인기 있는 위대한 화가가 되었는가 하는 궁금증이었다. 단숨에 그의 서신집을 사서 읽는 동안 그의 그림과 스토리에 흠뻑 빠져버렸다.  



유튜브에서 '피카소와 고흐'를 인간관계 측면에서 성공한 화가와 실패한 화가로 비교하는 영상을 보았다. 피카소도 생전에 고흐의 화풍에 영향을 받았다고 하니 화가로서의 영향력이나 그림가격에서도 고흐가 우위인 현실을 외면한 지극히 단편적이고 가벼운 견해 같다.


사람들은 성공적인 삶으로 규정할 때 겉으로 보이는 외모, 라이프 수준, 성과 등에 초점을 둔다.

원하는 대로 누리는 것이 진정한 삶이라고 여긴다. 실패로 점철되거나 나락으로 떨어진 삶은 경멸과 조롱의 대상이  뿐이다.


1800년대 시기에 유일하게 <붉은 포도밭>, 단 한 점만이 헐값으로 팔린 채 <까마귀가 있는 밀밭> 곁에서 빈궁하게 시들어간 고흐를 외면하던 사람들과 미술계가 오늘 그를 바라보는 잣대가 전혀 다는 사실에서 세인의 평판과 시각이란 통속적이다 못해 외설적으로 여겨진다.


반센트 반 고흐, 영혼의 그림과 편지들 중에서


가난에 발목이 잡혀서 이런저런 일에서 배척을 당하고 꼭 필요한 것들은 언감생심 꿈도 꾸지 못하는 처지야. 마음속에 커다란 화덕이 있는데 불을 쬐러 오는 이 아무도 없고 지나가는 이들은 그저 굴뚝에서 나오는 작은 기만 쳐다보다가 가던 길을 그대로 간다.             


인성이 괴팍하고, 가족과 이웃들, 동료화가 고갱에게 외면당했던 그가 그린 그림을 보고 수많은 사람들은 왜 감동과 위안을  것일까. 인생의 모진 역풍 같은 시련들 속에서 그를 지시키고 일으킨 회복력의 근원은 무엇일까.


내가 <감자 먹는 사람들>에게서 정말로 보여주고 싶었던 건,  이 농부들이 램프 불빛 아래서 집어먹는 감자가 바로 그들의 손으로 땅을 일구고 수확해서 식탁을 차린 것이라는 사실이었어.

말하자면 손으로 하는 노동을 그들이 정직하게 일해서 얻은 식사를 보여주고 싶었다.


우리 같이 '좀 배웠네'하는 치들과는 전혀 다른 삶의 방식을 말이야.


내가 마침내 깨달은 건, 농부들의 거칠고 투박한 모습이 담긴 그림이 더 좋다는 거야.

상투적으로 굳어진 참한 분위기의 인물을 그리는 것이 아니라 내 눈에는 시골아낙이 고상한 귀부인보다 훨씬 아름다워 보인다.

때가 묻고 기운 자국에 시간, 바람, 태양이 더없이 섬세하게 장식된 파란 치마와 상의 차림의 그들 말이야. 그녀들이 귀부인의 드레스를 걸치는 순간 진정성은 사라져.


농부를 그린 그림에서 향수냄새가 나서는 안돼.

이들이 힘든 상황에서도 꿋꿋이 그림을 그려냈듯이 나도 물질적인 어려움은 있지만 꺾이거나 무너지지 않을 거다. 아무렴.




나는 그의 그림 속에서 삶을 향한 생생한 날 것과 같은 감정을 느낄 수 있었다. 삶의 처절한 외면 속에 생존하기 위해 붓을 들었던 강렬한 열망이 그의 그림 속에 살아 꿈틀거리며 깊은 감동으로 다가왔다.


택배를 하며 이사한 집 안 여기저기 공간이 휑하니 빈 채로 방치되어 있다. 이젠 그 빈 공간을 하나씩 그의 그림으로 채워나가고 싶은 열망이 생긴다. 그에게서 느끼는 감동은 그림보다 그의 인생궤적이의 진정성을 향한 회복탄력성 때문이다.


인생의 성공이란 부나 세인의 좋은 평가를 성취하는 것에 달려있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에서 진한 위안을 받는다.


인성이 모나든지, 내향적이든, 인간관계가 좁든지, 경제적으로 빈약든지 그 나름의 인생궤적이 있을 뿐이지 실패한 인생이란 없음을 '사이프러스'와 '해바라기'가 알려준다.


각자의 다양한 인생행로에서 우리 속에 있는 회복탄력성을 얼마나 잘 발휘하는가에 성공의 정도가 결정되는 차이만이 존재할 뿐이다. 




삶이란 무질서 그 자체다.

무엇이 옳은 것일까. 스스로 선택할 수 있는 것이 인생이라 믿어왔는데

때론 바람에 흩날리듯이 파도에 실려가듯이 의도하지 않은 상황으로 향할 때가 참 많다.

     

그것을 탓할 수가 있을까.

무능 때문이라는 질책도 너 때문이라는 비난도 다 부질없다.

그냥 그렇게 체념하듯이 받아들이고 인내하며 산다.


이것이 오늘 내가 살아가는 인생의 한 방식이다.


가슴 한편이 스산하다가 어느새 따스해지고

깊은 상실감에 몸을 떨다가 전신을 휘감는 행복의 전율에 이내 무너지는 그대는 그래서 사람인 거다.


참 많이 아프고 힘들어도 오늘 내가 걸어야 할 거리만큼 다시 걸어가 보자.

그 끝에 무엇이 있을는지 무엇이 기다리고 있는지 알 수 없지만 그래도 한번 가보자.

무지함.

너무 아는 척, 모든 것을 알려는 안간힘을 버리고 그냥 편하게 내 길을 가보자.

그렇게.... 

<2018. 3. 13. 어느 날. >

매거진의 이전글 004. 절반이나 채워진 물 잔.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