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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화 진상고객, 또 다른 나.

by 코나페소아

택배초기에는 배송을 마친 후 받는 감사문자는 감동이었다. 이렇게 따스한 마음을 가진 사람들이 많다는 사실이 신기하면서 응원해 주는 팬들이 많이 생긴 것 같아 든든하기까지 했다. 하지만 배송을 할수록 그런 훈훈함은 허망하게 사라져 갔다. 주소를 잘못 쓰고는 끝까지 다시 배송해 달라고 요구하며 힘들게 하던 진상고객이 그동안 무수하게 "감사합니다". "안전 운전하세요."라고 살가운 문자를 보내왔다는 사실에 소름이 돋았다. 나를 도취시킨 문자들의 실체가 아름다운 독버섯처럼 느껴졌다.


주소를 잘 못쓰거나 누락시키고는 미안하다는 말 한마디 없이 어디로 가져다 달라고 하거나, 이사 갔으니 다시 배송해 달라고 우기거나, 욕설을 하며 원하는 배송을 요구하는 고객은 그저 그 상황이 끝나면 모든 것이 종료된다. 정신적으로 힘들게 하는 진상고객들은 따로 있다.


그들의 공통적인 특징은 상냥하고 세련된 말투를 가졌다. 그리고 약점을 잡으면 집요하고 공격적으로 돌변한다는 점이다. 이들은 수많은 평범한 고객들 사이에서 아주 드물게 출현한다. 그들을 겪고 나면 며칠간 우울해지고 의욕감퇴로 일하기가 힘들어진다.


세련된 공격자, 진상고객들의 정체는 뭘까.


표면적으로 우리 주위 사람들은 너무나 공손하고 교양 있게 보인다. 그러나 가면뒤에서는 누구나 어쩔 수 없이 좌절을 견디고 있다. 사람들은 남에게 영향력을 행사하고 싶고 상황을 좌지우지할 수 있는 힘을 갖고 싶은 욕구가 있다. 남들보다 더 큰 욕구를 가진 사람이 있다. 이런 사람들은 특히 공격적인 사람이 된다. 그들은 남을 위협해서 원하는 것을 얻고 못할 일이 없으며 조금도 수 그러 들지 않는다. <인간본성의 법칙/로버트 그린>


택배초기에는 순수한 마음으로 고객을 대하려 했다. 실수도 많았기에 사과하고 공손하게 대하려 애썼다. 진상고객들은 상냥하게 대하면 대할수록 그들의 요구사항은 더 과감해진다. 택배를 하면 할수록 사람을 대하는 순수한 감정이 많이 훼손당해 가는 느낌이 든다. 나름 겉과 속이 다른 많은 사람과 권모술수가 난무하는 상황들에 어느 정도 익숙해져서 택배일에서는 그래도 몸으로 하는 육체노동이라 접하게 되는 사람들이 그나마 순수하지 않을까 싶었는데 착각이었다. 사람은 사람과 부대끼며 살면서도 세상을 등진 자연인을 동경하게 되는 것이 실상인 것처럼 늘 사람과의 관계에서 벗어나고 싶어 졌다. 진상고객이든 아니든 현실은 그들을 감내하며 살아야 하는데 효과적인 대처방법은 없을까. 그들을 만날 때마다 감정적 기복이 많이 생기게 될 텐데 정신건강에도 안 좋고 불행한 인생이 될 것 같아 염려된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주변사람들의 공격성을 관찰하는데 달인이 되는 것이다. 그들이 의지하는 수법은 당신을 감정적으로 두렵게 혹은 화나게 만들어서 당신이 똑바로 생각하지 못하게 만드는 것이다. 그들에게 그런 힘을 주지 마라. 당신의 공격적 에너지를 길들이고 생산적인 목적에 사용하는 법을 배워라. 당신 자신을 위해 일어나라. <인간본성의 법칙/로버트 그린>


진상고객에 대응하는 첫 번째 임무는 그들을 평범한 고객들과 구별해 내는 관찰력을 키우고 달인이 되는 것이다. 그들을 발견하는 순간 머릿속에 빨간 경고등이 작동하고 경계모드로 전환할 수 있어야 한다. 두 번째로는 그들은 집요하고 교활하게 우리의 감정을 흔들어 당황시키려 하기에 최대한 그들의 공격이 우리 가슴속에 뿌리내리게 만들어서는 안 된다. 머리 위로 날아가는 새를 막을 순 없지만 내 머리 위에 둥지를 틀지 못하게 할 수 있다. 같이 화를 내고 공격하거나 당황하면 안 된다. 냉철하고 당당하게 대응할 수 있어야 한다. 소중한 나의 일터가, 가정이, 나의 행복해야 할 마음을 그들로 인해 엉망이 되게 해서는 안된다.



그런데 문제가 있다.

진상고객만큼이나 강렬한 공격성이 내 속에도 있다는 사실이다. 그것은 나 역시도 한계를 지닌 인간이기에 타인에게 영향력을 끼치고 싶은 욕구를 지녔고 그것이 분노 등 공격성으로 언제든 분출될 수 있기에 그것을 제어할 수 있어야 한다.


택배를 하기 전 김치를 택배로 주문을 한 적이 있었다. 택배배송 완료문자를 받았으나 도착상품이 없었다. 뒤늦게 알았지만 주문과정에서 주소입력오류로 이전에 살던 주소로 배송지가 잘못 지정되었던 모양이다. 하지만 나는 생물인 상품을 엉뚱한 곳에 배송하고는 택배기사가 퇴근했다는 사실에 몹시 화가 나서 거칠게 항의하고는 직접 상품을 찾아왔다. 두 번 다시는 그 택배회사를 이용하지 않으리라 결심했다.


나는 진상고객이었다.

그리고 증오하던 그 택배회사에서 일하고 있다.


진상고객은 또 다른 나 자신이었다.

진상고객을 통해서 과거의 나, 또 다른 나를 보게 된다. 자신이 가진 공격성을 다스리지 못하면 그 공격성이 자신에게로 되돌아와 상처가 된다.


인간은 장애물을 만나 그것을 극복하고자 할 때 자신에 대하여 가장 잘 알 수가 있다. 하지만 장애물을 극복하고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혼자의 힘만으로는 불가능하다. 도구라든가 연장이 필요하다. 우리는 서로가 '만나기' 위해서 노력해야 한다. 들판 저 멀리에서 깜박이고 있는 불빛들과 의사소통이 되도록 최선의 노력을 다해야 하는 것이다. <생택쥐페리의 우연한 여행자>

사람은 사람에게 상처받고 사람에게서 치유를 받는다. 고슴도치들이 서로 가시에 찔리지 않는 거리를 두고 모여서 차가운 겨울삭풍을 견뎌내는 것처럼 상처 주는 사람 때문에 사람을 향한 마음이 닫히지 않았으면 한다.


진상고객은 경계의 대상이지만 내가 가진 공격성을 잘 다스려내지 못할 때 나타나는 또 다른 나 일수 있기에 증오로 온통 채우기보다는 마음 한편에 측은지심을 조금이라도 남겨 두었으면 한다.



청년힙합 택배기사 핫네이버후드의 <Hurt>

https://youtu.be/GdTEET2 ext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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