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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화 인생, 걷고 또 걷다.

by 코나페소아

논픽션소설 와일드에서 주인공 스무 살의 셰릴은 사랑하는 어머니의 죽음으로 살아갈 의미를 잃어버리고 알코올중독, 매춘, 마약 등으로 인생의 나락으로 떨어진다.


인생의 모든 것을 송두리째 잃어버린 그녀가 선택한 것은 수천 킬로미터에 이르는 퍼시픽 크레스트 트레일 <PCT>을 홀로 걷는 것이다. 모하비사막을 시작으로 오리건주와 워싱턴 주 경계를 가로지르는 컬럼비아 강을 가로지르는 '신들의 다리'를 향해 걷는다. 배낭을 멘 그녀의 유일한 선택 그냥 계속해서 길을 걷는 것뿐이다.

아무런 특별한 이유 없이 그저 나무들이 쌓여 있는 모습, 풀밭, 산, 사막, 바위, 개천, 강, 잡초, 일출, 일몰을 보기 위해 몇 킬로미터고 계속해서 걷는 것은 과연 어떤 의미일까.


마침내 '신들의 다리'에 도착한 셰릴은 대장정을 다음과 같이 결론 내린다.


이제는 더 이상 텅 빈 손을 휘저을 필요가 없다는 사실을 믿게 되었고 저 수면아래를 헤엄치는 물고기를 그저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는 사실 또한 알게 되었다. 그것으로 충분했다. p549 <와일드 / 셰릴 스트레이드>


인생이란 얼마나 예측불허인가.

그러니 흘러가는 그대로를 지켜보고 받아들이는 것이 정답인 걸까. 사람이 할 수 있는 거라곤 포기하지 않고 걷고 또 걷으며 인생이 펼쳐놓은 상황들을 경험하는 게 최선인 걸까.


언젠가 커피를 내린 포트에 커피가 남았다. 버리기 아까워 그 위에 다시 내렸다가 전부 미지근한 커피를 만들어 버렸다.


인생이 내린 커피에 뭔가를 추가하려는 시도는 부질없다. 깨끗이 비워진 빈 잔으로 인생이 내리는 커피를 담아내야 한다. 아까워 비워내지 못한 삶에 대한 집착들 때문에 얼마나 수많은 달콤했을 삶의 커피잔들을 버려야만 했던가.

생일날 가족들이 케이크 주변에 모였다.

평생 아빠에게 듬직한 아들이 되겠다는 막내의 문자에 코끝이 시큰해져 왔다.


아들.

아빠가 뭐가 그리 좋아 형처럼 멀리 날아가려 하지 않니?


내가 힘닿는 데까지 울타리가 되어줄게.

그런데 아빠에게 너도 든든하게 와닿는 게 아마도 우리는 서로를 이미 의지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이젠 네가 만든 랩에서

흥겨운 리듬을 느끼고 있는 나 자신이 신기하다.

힙합은 이해 못 할 영역이라 생각했는데

네가 만든 음악은 왜 이리 감미롭고 좋아지는 거니?

끝까지 서로 격려하고 즐기며 끝까지 가보자꾸나.


아들아 사랑해.

빨리 날지 못해도 괜찮아.

천천히, 천천히 날고 싶어질 때 그때 힘차게 날아가거라.

엄마아빠는 힘든 세상을 향한 작은 버팀목이 되어줄게.


그리고 힘겨운 파도와 싸우는 갈매기 같은 큰아들.

힘내라.

치열한 삶의 전쟁터에서 상처받고 힘들 땐 언제든 찾아오렴.

엄마아빠가 네가 힘들 때 쉬어가는 편안한 쉼터가 되어줄게.


내가 인생이 삭막하고 힘겨워도 멈출 수 없는 이유다.

걷고 또 걸을 것이다.



청년힙합 택배기사 핫네이버후드의 <Louder>

https://youtu.be/A8 UQi6-l9y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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