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제12화 택배기사, 미래형 근로자로 산다.

by 코나페소아

2023년은 '경기침체'라는 안갯속에서 시작된 것 같다. 작년에 중견 IT업체에 취직한 큰아들이 첫 연봉협상을 두고 기대감에 부풀었는데 거의 동결 수준으로 통보를 받아 심란해한다. 선두기업인 네이버의 경우도 이익감소로 작년대비 20~40%로 성과급을 줄여서 지급한다고 하니 IT업계가 전반적 분위기가 어둡다.


지방대에서 수도권대학으로 편입하면서 취업에 성공하기까지 악착같이 준비해 왔던 큰 아들은 취업 후 자존감이 한껏 고취되었다. 대화를 나눠보면 '하면 된다. 변명이 필요 없다.'란 자신감이 풀풀 느껴진다. 준비하기에 따라 자신의 미래가 달라진다라는 큰아들의 믿음이 대견하면서도 한편 염려가 되기도 했다.


우리는 이미 예측가능하지도 않고, 노력해서 상황을 바꿀 수 없는 그런 세상을 살아가기 때문이다.


요즘은 현명하게 휘어질 수 있는 '유연함, 유연성(Flex)'을 미덕으로 삼는다. 사전에 아무리 철저히 준비를 해도 정확히 예측하기 불가능한 시대가 되었기에 끊임없이 궤도수정을 요구받는다.


'유연함'은 시련을 전제로 한다. 애플신화 역시 1986년에 본인회사에서 해고된 후 12년 후 화려하게 복귀한 스티브잡스의 시련극복을 바탕으로 탄생했다.


시련을 전제하는 유연성이 '노동'과 연결되면서 일터를 무한경쟁으로, 근로자는 고용불안정으로 내몰았다. 유명학자들은 '10년 후 세계인구의 절반이 프리랜서로 살게 될 것이다.'라고 전망한다.


택배기사는 장래 보편적인 고용형태가 될 '특수고용직 노동자'로 이미 살고 있다. 겉모습은 독립성, 유연성, 자유로움을 가진 개인사업자이지만 실체는 사업의 모든 리스크를 부담 지는 임시고용노동자다.


택배기사는 택배와 관련해서 발생되는 모든 문제와 비용에서 보호받지 못한다. 손실에 대한 1차적 책임대상이다. 믿을 수 있는 건 오로지 나 자신뿐이다. 스스로가 모든 문제와 상황을 대비해야 한다.


이쯤이면 택배기사는 미래형 프리랜서이지 않을까. 택배기사 처지에서 바라본다면 긱경제가 만들어낸 유연한 근로환경은 근로자들을 불확실성과 리스크에 대한 부담으로 늘 조심스럽고 움츠러든 채 살아가게 할 것 같다.


마치 구름바다를 비행하는 조종사와 비슷하지 않을까.

비행을 하며

항로를 벗어나서

불시착하거나

연료가 떨어져

추락하는 위험에 늘 노출된다.


구름바다 상태에선

오로지 계기판의 눈금과

기체에서 전달되어 오는 진동과

경험만으로 희망과 빛을 그리며

목적지로 향할 수밖에 없다.


유연함을 전제한 냉혹한 시장경제 속에서 추락하지 않고 목적지까지 안전하게 날아갈 수 있을까?


불확실성과 위험에 웅크리고 살기보다는 이 세상에서 살아가기 위한 새로운 방식을 찾으리란 희망으로 이 새벽, 나는 또다시 나의 애마 '포리'의 심장에 시동을 건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제11화 인생, 걷고 또 걷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