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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니삼촌 May 12. 2024

나는 공부하는 노동자입니다. 013

Ego sum operarius studens.<라틴어수업/한동일 지음>

'개구락지' 개굴 대며  지럽히는 창가에 이런저런 념들이 서늘한 바람결을 따라 하얗게  다.   모든 관계들을 끊어내고 낯설고 아무도 모르는 타향 같은 이  까. 그리고  우리를 이렇게 버티 살아가게 하는 걸까.


우리는 보통 나와 같은 또래의 사람이 무언가 큰 성취를 이루었을 때 나는 그동안 뭐 했나 싶은 생각을 하거나 아무것도 이룬 게 없다는 생각에 좌절감과 열등감을 느낍니다.... 그것은 나 스스로를 미워하고 학대하는 것과 같아요.


아우구스티누스가 "자신을 가엾게 여길 줄 모르는 가엾은 인간보다 더 가엾은 것이 무엇이겠습니까?"라고 고백한 글귀에 한참 동안 시선이 머물렀다.

 

나를 힘들게 하는 이 아무도 없는  이곳에서 조차도 습관적으로 스로를 미워하고 학대하는 나 자 잔인함을 선명하게 인식 수 있었다. 가엾은 인생을 살아왔는데 또 그렇게 관성적으로 살아가려 하고 있었다. 더 이상은  자신을 힘들게 하며 살아서는 안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생은 늘 반전이 있다.

 

성공을 향한 무리를 이탈해서 '혼자만의 시간과 공간' 속에 들어선 지 벌써 십 년의 절반을 채워간다. 어둠이 짙어지면 짙어질수록 밤하늘의 별들은 더욱 청아하게 존재감을 드러낸다. 인생시련과 실패라는 현실의 차가운 맨바닥에서 보이고 느껴지는 빛나는 것들을 세심히 따로 준비하고 있었다.


릴케가 쓴  "우리가 완수해야 할 시련이 그 얼마인고!"라는 시구 속 시련이 무엇을 의미하는, "인생은 나에게 한 줌의 평온과 한쪽의 빵, 인생에서 원했던 것 중에 가장 작은 것조차도 거부했다"는 페르난두 페소아의 자조 섞인 쓰디쓴 들이 오히려 위로를 품고 음을 발견하 한 위안을 다.


이전에 읽었던 책들 속에서 밑줄이 그어진 글들의 의 감동이 지금은 전혀 다르게 와닿는다. 책과 글이란 머리가 아닌 몸으로 읽어내고 써내려 가야 함을 게 된다. 내가 살아가는 삶 속에 풀어지고 녹아내리는    좋다. 마도 삶이 녹아있는 들은 모이고 모여 한 권의 책이 된다면 것은 오롯하게 또 하나의 인생이 되어 다른 이들에게 진정한 위로와 힘이 되리라는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내가 이 세상 도처에서 쉴 곳을 찾아보았는데 마침내 찾아낸 책이 있는 구석방보다 더 나은 곳은 없더라. <토마스 아 켐피스/독일의 수도자이자 종교사상가>


택배를 하러 나가기 전 새벽녘이면 슬며시 일어나 책을 읽거나 글을 쓴다. 세상과 동떨어진 외딴 공간 속 구석에 위치한 서재방에서 내면 하게 고인 속삭임을 세심하게 퍼올리며 글을 쓰는 이 순간을 심으로 즐기는 나 자신을 보게 된다. 오직 내 영혼울림과 리듬을 느끼는 '혼자만의 시간' 속에서 난날의 상처  복하는 순간들 만끽한다.


인간도 같은 나이라 해서 모두 같은 일을 하지 않고 같은 방향으로 가지는 않습니다. 한 사람 한 사람 모두 저마다의 걸음걸이가 있고 저마다의 날갯짓이 있어요.


사람들은 나이가 많든 적든 간에 각자 살아온 삶이 있다. 그 과정에서 자신의 깊은 내면 속에 정제되어 쌓인 정체성이 있다. 공부란 그것을 제대로 만나기 위해 시간을 들여 성찰하고 그것을 바른 방향으로 정립시켜 나가는 것이다.


공부를 하고 있다는 글이 위로가 된다. 나는 지금 아직도 정확히 모르는 "내 걸음의 속도와 몸짓"을 파악해 나가는 삶을 사는 중이다. 나는 공부하는 노동자, 택배기사의 삶을 가슴 깊이 수용하고 기로 결심을 했다. 것은 니체가 한 말처럼 "왜 살아야 하는 지를 아는 사람은 그 어떤 상황도 견딜 수 있기" 때문이

리라.




눈앞의 모형토끼를 향해 미친 듯이 질주하는 경견장의 사냥개들처럼 , 나를 정신없이 휘몰아치며 달리게 한 모든 것들이 허망하게 사라졌다. 텅하니 비워진 삶의 터전 비로소   눈동자 속으로 흘러 들어오는 수많삶의 들이 있었다. 그것들은 한결같이 내 곁에 있어왔지만 전혀 인식하지 못한 것들이었다.

  

우리는 아는 만큼, 그만큼만 본다.

Tantum videmus quantum scimus.


상은 원래 '부조리하다'는 사 사람이란 존재는 지극히 '이기적'이라는 것을 인정하지 못했을  그것들을 향한 헛되고 순진한 이상과 야망으로 부풀어 올랐다. 그  언제나 내 바람과는 다른 현실과 결과 펼쳐졌고 연이어 혹독하고도 격한 감정 시달림이었다. 늘 밖에서 쏟아지는 관심과 평가에만 목을 매고 살다 보니 내면은 황폐하게 고갈되고 망 가는 줄은 전식하지 못했다.


오직 "경제적 자유"와 세상사람들의 "인정"만이 매 순간 직면하는 이런 위기들을 뚫어내는 유일한 해법이라 신했을 뿐이다.

 

세상은 원래 '부조리'하며, 사람도 지극히 '이기적인 존재'라 결코 리가 세우는 계획과 체크리스트 속에 고스란히 담아낼 수 는 사실, 가진 돈과 시간과 열정들이 거의 고갈될 시점에서달아졌다. 나에게 남은 유일한 것은 몸뚱이와 그 속에 담겨  격랑 하는 상처받은 마음뿐이었다. 

  

신기하게도 세상은 원래 부조리하다는 사실을 인정하자 불합리한 상황과 불평등한 조건들을 향해 격분하고 절망하던 나의 감정은 오히려 잠잠해졌다. 감정이 잠들자 그 뒤에서 내면 속 지혜가 담긴 세미한  들을 수 있었다. 사람들이 지극히 이기적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이자, 그들을 향한 분노와 원망, 그리고 시기, 질투, 경쟁심에서 벗어나 오히려 평온해짐을 느끼게 되었다.


오직 짐을 쌓으며 때론 거칠고, 가늘게 내뱉는 나의 숨소리와 내 안을 수없이 오가는 감정들만을 선명하게 주시하며 느낄 뿐이다. 나 자신을 가엾게 여긴다는 것은 나에게 제대로 관심을 가진다는 의미다. 이제껏 나는 단 한 번도 나 자신을 사랑하며 따스한 관심조차 준 적이 없었다.

  

새벽 다섯 시에 눈을 뜨는 그 순간부터 나는 내 몸과 그 속에 담긴 감정을 온전히 느껴본다.  몸과 하나가 되어 움직이는 을 알아가니 감정도 점점 평온히 잦아든다. 탑차 안에 크고 작은 짐들을 하나하나씩 쌓아가고 채워가는 동안 어지러운 잡념들은 사라져 간다. 먼지 나는 택배현장 속에서 감사함을 느  당혹해하는 순간의 연속이다.

 

세상에는 박사, 교수, 의사, 변호사, 사장님 등등 화려한 직업과 직함들이 참 많다. 내가 사는 세상 속에는 화려한 관심에서 한참이나 벗어났지만 나름의 생존의지를 품고 최선을 다해 살아가는 또 다른 계층의 세상과 직업이 있음을 전혀 의식하지 못했다.


오늘도 소음과 먼지가  흩날리는 이곳 택배현장에는 상품들이 흘러오는 택배레일을 향해 나란히 한 방향으로 줄지어 선 채로 전직 교장, 선생님, 목사, 보험설계사, 사업가, 형사, 회사원, 온라인마켓터, 노래방주인, 조선족, 탈북자 등등 각양각색의 출신들이 구분 없이 어우러져 땀방울을 흘리며 일한다.


나는 그 모습을 지켜보며 직업적 편견이 가득한 저열한 시선 너머로 사회적 평등이 구현된 세상의 한 단 언뜻  다. 이곳나이, 계층, 스펙 등 그동안 살아온 과정은 중요하지 않다. 오직 생존하기 위해 일한 만 벌어가는 원칙만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는 세상을 넓게 다니지도 못했고 많은 사람들을 만나지도 못했지만 그런 편협한 나의 일상 속에서 마주치는 사람들 존재조차도 제대로 알지 못하는 게  많다는 사실을 새삼 깨달았다.

 

 현장이 이기심으로 짙게 난무할수록 범한 청소부, 경비원, 할머니, 커피숍 자영업자, 이름 모를 고객들을 통해서 흘러나오는 다른 사람을 향한 "배려심", "겸손함", "존중심", "절제심" 등이 얼마나 보석같이 빛나고 소중한 가치를 지녔는지를 가슴 절절하게 느끼곤 했다. 그저 돈 벌고 성공하고 남들보다 돋보이게 사는 것이 전부인 줄 알았던 삶 속에서는 각조차 할 수 없던 것들이다.


이런 람들이 추구하는 공, 지위, 돈, 명예와는 상관이 없다. 이 세상에서 많이 배우고 성공하고 부유한 이들조차도 가지지 못한 것들이 존재한다는 사실 앞에서 인생이란 마냥 불평하지는 않다는 생각을 슬며시 가질 수밖에 없었다.


세상은 아는 만큼만 보인다. 이는 늘 자기 자신에 대해서 깨어 있어야 함을 의미한다. 그리고 바깥을 향해서도 늘 열려있어야 한다.  꾸준하게 자신을 어르며 공부해야 하는 또 하나의 이유이다.



 

모든 사람은 상처만 주다가 종국에는 죽는다.

Vulnerant omnes, ultima necat.

 

부모님은 '재'가 되어 저에게 기억으로 남았고 나의 죽음을 바라보게 하셨다. 사람이란 이렇게 죽음을 목전에 두고 "오늘은 내가, 내일은 네가"하며 함께 한 이들에게 기억을 물려주는 존재이다.

 

하지만 지난날을 회상해 보면 나는 내 곁에서 늘 함께한 아내와 아들들에게 많은 상처를 주며 살아온 것 같다. 가족을 위해 일한다는 구실로 아내와 함께하는 즐거움을, 아들들과 친밀감을 나누는 시간들은 늘 후순위로 미 살아왔다. 그로 인해 가족들은 많은 상처를 입었다는 사실이 내 가슴을 많이 아프게 한다.

   

나의 부모님들이 그랬듯이 '상처'만 남긴 채 나의 생을 마감할 수도 있다는 생각 너무 하고 두렵다. 우여곡절 끝에 힘겨운 택배를 선택하면서 가족'이 없었다면 과연 여기까지 올 수 있었을까 싶어 지면서 가족의 의미를 새롭게 깨닫는다. 반면에 가족이 실제로 하나가 되기 위한 실습하는 과정은 결코 쉽지 않은 갈등과 인내를 요구받는 고통스러운 시간의 연속이었다.

 

이 과정에서 아내와 늘 대화하고 가사부터 택배일까지 모든 일을 분담하는 과정 속에서 움트는 진한 부부애를 맛볼 수 있었다. 대화 중에 환하게 웃는 아내의 모습이 참 좋다. 서로가 만들어주는 커피와 반찬을 맛있다며 감탄하며 산다. 그리고 덤으로 엄마, 아빠가 죽으면 자신도 따라 죽을 거라는 아들의 존재는 가족이 함께하는 즐거움이 고통을 충분히 덮어내는 또 다른 이유가 되어준다.

      

바람이 있다면 한 번뿐인 인생, 나쁜 기억을 품고 사라지기보다는 가족이 함께 서로 하고 싶은 것을 충실히 했다는 추억을 남기고 싶다.

   

사랑하라, 그리고 네가 하고 싶은 것을 하라.

Dilige et fac quod vis.


아들들의 등 뒤에서 늘 이런 말을 들려주는 부모로 남은 생을 마감하고 싶다. 그리고 한날한시에 아내와 함께 자식들에게 좋은 추억을 남긴 채 눈을 감았으면 하는 바람뿐이다.

 


P.s '혼자가 되는 시간'과 함께 '혼자보다 하나가 되는 게 좋다'라는 가삿말이 좋아 요즘 즐겨 듣는 노래랍니다. 가사만큼이나 싱어의 출신과 삶의 이력도 참 재미있네요.


    https://youtu.be/b3dXhYDycSE?si=fBD93vU6sGFGovh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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