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미쉬'처럼 극단적이고도 보수적인 개신교공동체로 현대사회의 문명을 철저히 거부한 채 자신들의 신앙의 순수성을 지키기 위해 네덜란드 선교사가 전해준 19세기의 생활양식을 고수하며 산다.
그들은 마차를 타고 다니며 학교에서는 오직 독일어로 된 성경만을 가르친다. 그들은 철저하게 외부 사회와의 격리를 통한자급자족으로 자신들의 신앙적 순수성을 지킬 수 있다고 굳게 믿는다.
하지만 이곳에도 외부에서 불어오는 변화의 바람을 피할 수는 없었다.
전직 의사였던 '빌헤름'은 <핸드폰>을 소유했다는 사실로 파문을 당했다. 위급한 환자를 돌보던 그는 외부 사회의 발달된 의학적 도움이 필요함을 절실하게 느꼈다. 사람들을 살리는 게 우선이라 여긴 그는 그 결과 '사회적 매장'이나 다름없는 '종교적 파문'을 무릅쓰고 핸드폰 사용을 선택했다.
하지만 독실한 메노나이트인 '아브람'같은 또 다른 부류의 사람들은 외부문화에 점차 물들어가는 공동체사회의 요즘분위기에커다란위기의식을 느꼈다. 신앙의 순수성을 지키기 위해 그는 가족과 함께 수천 킬로 떨어진 페루의 아마존 깊은 정글 속으로 이주하기로 결심한다.
그들은 정든 삶의 터전을 떠나 비행기와 배를 번갈아 타며뜻을 같이하는 신앙공동체가 터 잡고 있는 머나먼아마존 열대우림 속으로 두려움을희망으로 애써억누르며 길을떠났다.
사람들은 자신의 신념을 위해 어떠한 고통이나 희생의 대가도 기꺼이 치르려 한다. 그리고 땅끝 까지라도 그것을 안전히 보전해 줄'둥지(Home)'를찾아부지런히헤엄치고날아가고 있었다.
어찌 보면 탈출과도 흡사한 이런 움직임들이 지구상에서 가장 부유하고 문명이 발달된 미국에서도 예외 없이 발견할 수 있었다.
최근미국에서는 80만 명의 이주행렬이낙원과도 같은캘리포니아를등지고 떠나 사막같이 황량한 네바다, 텍사스 등으로 향했다.세계 5위안에 드는 경제력과 세계 24위안에 드는 유수의 대학중 네 개의 대학을 보유한 천국의 땅이 지옥으로 탈바꿈하는 믿기 힘든 상황이 벌어졌다.
급격하게 무너진 치안문제 등으로 더 이상 안전하고 살기 좋은환경을 상실해 버렸기 때문이다. 경찰들은 실적이 되는 강력범죄에만 집중할 뿐 단순 도난이나 강도사건은 무관심했다. 밤 9시 이후에는 한 블록 떨어진 곳에 주차된 차량까지 걸어가는 것조차 위협을 느끼고 소상공인은 잦은 상가 약탈로 사업을 안정되게제대로 운영할 수 없었다.
주정부가 운영하는 교육과 세금 시스템은 '특정계층'(교육노조, 소송전문변호사 등)을 위해서만 유리하게 작동했고 결국 학교교육은 붕괴되고 기업은 과도한 세금과 소송에 시달리다 폐업하거나 생존을 위해 다른 주로 이전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캘리포니아를 넘어 미국 전체사회를 강타한 높은 인플레이션은 노년층들에게 직격탄을 날렸다.높은 물가와 세금으로 인해 퇴직연금과 개인연금 등 각종 연금소득으로는 나날이 높아지는 세금과 생활비를 감당할 수 없어 살던 집들을 팔고 캠핑카를 거처할 공간으로 삼거나 무료음식 나눔 센터에서 끼니를 연명하는 노년층이 급격하게 늘어났다.
지구상에서 가장 부유한 미국에서조차도 정부와 사회보장제도는시민의 삶이 붕괴되는위협으로부터어떠한 보호도 해주지 못했다.
지구상에서 최강국이자 가장 부유한 나라의 사람들도살아남기 위해성공의 상징과도 같은 자신의 집과 정든삶의 터전을 버리고 낯설지만 안전한 곳(Home)을 찾아 기약 없이 유랑길에 오르는 기가 막힌 상황을겪으며 살아가고 있었다.
이 땅과 삶 위에서 우리가 머무를 마지막 집은 과연 어디일까?
존재하기는 하는 걸까?
최근 급격하게 노인인구가 급증한 일본사회에서 잔잔한 파문이 일어났다.
혼자 사는 노인인구들이 늘어나면서 '고독사'가 심각한 사회문제가 된 지 오래다.
70대 후반의 고령노인이면서 노인사회학자이기도 한 '우에노 치즈코' 교수는 '고독사'의 이면을 이렇게 분석했다.
'고독사'라는 표현 뒤에는 '노인'과 '늙음'이라는 것에 대한 부정적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고 지적한다. 그 결과 노인이 되면 삶의 선택권을 자식이나 사회에 자연스레 빼앗기고 박탈당한다. 그리고 생의 마지막 순간을 내가 살던 일상과 삶의 터전이 아니라 요양원이나 병원에서 마감해야 하는 부당함을 수용할 수밖에 없게 된다.
'우에노 치즈코' 교수는 노인이 집에서 죽을 수 있는 권리, 즉 <1인 재택사>를 주장한다.
그녀는 이를 위해 일본사회가 의료 및 간병시스템, 노인에 대한 인식이 바뀌어야 한다는 패러다임 전환을 시도하기 위한 적극적인 사회운동을 전개하고 있다.
내가 살던 정든 집에서, 익숙한 일상 속에서 내 생의 마지막 순간을 마감할 수 있게 해 달라는 처절한 몸부림이 일본사회의 노년층을 중심으로 일어나고 있었다.
생의 마지막 순간까지 안전한 집을 찾아 헤매는 인생의 실상이 참 깊은 우울감을 부른다.
나의 마지막 집은 과연 어디일까.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새벽빛 와닿으면
스러지는 이슬 더불어 손에 손을 잡고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노을빛 함께 단 둘이서
기슭 놀다가 구름 손짓하면은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내는 날
가서, 아름다웠다고 말하리라. <귀천/천상병>
아무도 지켜주지 않는 고달픈 인생이다.
우리의 생이 이땅에서 이렇게 마감이 된다면 무지하게 억울할 것 같다.
시인이 말하는 돌아갈 '하늘'이 있기에 그래서 오늘힘겨워 놓고 싶은이유랑하는삶의 밧줄을 다시금 부여잡을 힘을, 의지를 얻을 수 있는 건 아닐까.
시인처럼 인생을 소풍처럼 유희하는 경지까지 오르려면
우리는 이 땅에 대한 집착을 앞으로 얼마나 더 많이 내려놓아야 할까.
하늘에 가서 벅찬 감동으로 아름다웠다고 말하려면
우리는 앞으로 얼마나 더 많은 시련과 견디고 싸워야 할까.
아파서 그래서 더 살갑고 아름다워지는 게 인생인 걸까.인생 참 모질다.
어머니가, 아버지가 돌아가신 그날의 하늘이 생각난다.
짙고 굵은 회색 구름으로 뒤덮인 하늘이, 알 수 없이깊고 힘겨웠던 굵은설움을쏟아내리던 그 하늘이 자꾸만 생각이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