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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니삼촌 Jul 08. 2024

아내는 지금 남편을 AI로봇으로 개조 중이랍니다.

남자의 '카리스마'는 막사발이다.

남자란 모름지기 '카리스마'가 있어야 한다.

상대를 제압하는 권위, 위세, 심지어 없던 '초능력'을 총동원해서라도 무조건 가지고 있어야 한다.

"나에게는 제대로 벼린 '칼'이 있다"라는 사실을 주변에 확실하게 드러낼 수 있어야 무시당하지 않고 남자다움을 지켜낼 수 있다는 이 땅 위의 사내 가진 초적인 마초  때문이리라. 


"못하겠습니다."

"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죽기보다 입에 담기 싫은 말들이다.

쓰러지고 자빠지는 한이 있더라'오기'앞세워서라도 주어진 일은 무조건 다.

  

람들의 마음을 주무르는 노회 한 '리더십'이나

주변을 주눅 들게 할 만한 '스펙'이나 '재력' 또한 없기에

그저 계획을 치밀하게 세우고 죽기 살기로 '뚝심'있게 밀어붙치는 추진만이

 위한 유일한 경쟁력라 여겼다.


라는 울타리를 벗어나

이라는 높은 성채 속으로 홀로 들어서는 순간부터

머리부터 발끝까지 '카리스마'를 존을 위한 부적처럼 서 붙이 

리도 필사적으로 강한 척 애쓰며 살아왔다.


하지만 직장이라는 높디높은 성채를 벗어나

가족과 함께 택배를 하면서 남자의 '카리스마' 내와 자식 앞에서는 '녹슨 부엌칼'처럼 무용지물이고 거의 아무짝에 쓸모가 는 사실을 뒤늦게서 깨달았다.


남편의 카리스마는 아내 앞에서는 '삼식이'의  불과했,

아비의 카리스마는 아들 앞에서는 '꼰대짓'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현실임을 험하 

뼛속  현타를 며 한동안 혼러웠다.


러는 와중에도 얄팍한 나의 존재감을 확인하려고 

내면 어딘가에 남겨진 한 줌의 '카리스마'라도 찾아내어 신히 쥐어짜 내려는 순간이면

아내는 여지없이 내 가슴팍을 손가락으로 버튼을 누르듯 쿡쿡 찔러댄다.


"또 또 못된 성깔 나온다. 꺼져라. 꺼져라."

"아빠는 또 왜 저래."


족이란 조직사회도 아니고 위계가 잡힌 군대도 아니다. 그냥 가족일 뿐이다.

'카리스마'가 있든 없든 나는 그들에게 영원히 남편이고 아빠다.

럼에도 나는 그것들을 위해 관적으로 애를 쓰며  시도하고 있었다.

남편이고 아빠이기 위해서 장에서처럼 관성적으로 '카리스마'드러 다.

 

가족게는 위세를 드러내며 존재감을 발산하는 남편과 아버지란 전혀 필요하지 않는데도 말이다.


아내가 말했다.

"난 당신이 못된 성깔('카리스마'를 의미하는 것으로 해석됨)을 부리는 일 없는 그 AI남편이면 좋겠어."

"오늘부터 이렇게 버튼을 누르면 작동해. AI남편로봇으로 말이야."


힘들게 택배를 마치고 돌아온 저녁이면

사준비를 하는 아내 곁에서 함께 도와주고,

식사 후에는 아내의 입맛에 맞는 커피와 다과를 준비하는 바리스타가 되,

아내와의 대화에서 운 말동무가 되어주고,

아내가 쉬는 동안 설거지하며 뒷마무리를 하,

드라마를 시청하는 아내를 두고 조용히 서재방으로 피신하는 AI남편로봇의 일정 속

생존을 위한 남자의 '카리스마'가  여 눈곱만큼도 없다.


"아빠. 이것 좀 해줘."

"아빠가 하면 되지. 그걸 내가 왜 해?"


가족서열 중에 가 밑바닥으로 내쳐졌다는 생각도 들었다.

아들 녀석까지 너무 막대하는 것 같아 때론 속이 상하기도 했다.


하지만 아내와 아들에게 남편이자 아빠라는 나의 존재가 나 소지를 나는 누구보다 더 잘 안다.

단지 내가 가정과 직장이라는 조직의 차이를, 그리고 남편과 아빠라는 역할을 직장에서의 책과 혼동하고 착겪었던 혼란임간이 지난 후에야 깨달았다.


조직생활에서는 성과를 내기 위해 계획을 세우고 구성원을 리드하기  '카리스마' 요했만 가족에게는 혀 다른 유형의 리더십요구되었다.


'막사발(막그릇)'같은 유형의  말이다.

 

밥을 담으면 밥그릇, 국을 담으면 국그릇, 술을 담으면 술잔이 되는 막그릇처럼

때론 마구 푸대접당하는 것 같지만 어느 순간에도 곁에 없어서는 안 될 정겹고 편안한 그런 존재 말이다.

  

가족이 원하는 것들을 언제든 담아내려 어떠한 푸대접도 기꺼이 감하려는 또 다른 차원의 근한 '카리스마'를 아내와 아들들은 하고 있었다.

  

융통성이 부족한 날 보며 언젠가 아들이 쿨하게 껴앉으며 말했다.

"내 아버지인걸 어떡해. 나도 아버지 자식인걸 어떡해. 죽일 거야 살릴 거야."

"그냥 이대로 생긴 대로 부둥켜 앉고 끝까지 가는 거야. 응? 응?"


오랜 생존습관을 못 버리고 가족을 위해 이런저런 계획을 세우는 나를 보고 아내는 극구 만류한다.

"제발 계획을 세우지 마. 그냥 살자고. 인생이 계획대로 된 거 하나도 없잖아. 맘 편하게 살자고."


계획 속에 모든 것을 담아내려 안달복달하며 살다가 제풀에 고꾸라진 적이 그 얼마나 많았던가.

가족이란 계획 속에 담을 수 있는 그런 존재들이 아니다. 그냥 있는 그대로를 받아주고 제 각기 흔들어대는 몸동작에 맞추어 함께 장단을 맞춰 추임새를 춰줄 때 흥이 나고 능률이 생기는 그런 공동체가 가 것을 왜 그리도 몰랐을까.


내가 계획대로 일이 안 풀려 열을 올리려 할 때마다,

직장이라 착각하고 습관적으로 카리스마를 발산하려 할 때마다,

멋진 아빠로, 남편으로 인정받으려는 욕구가 과하게 넘치려 할 때마다,

아내는 부지런히 AI남편로봇 버튼을 눌러댄다.


아. 남자여.

그대는 가정이라는 무대에서는

나 역시 가족 구성원의 평범한 원임을,

그리고 생존을 위해 시퍼렇게 벼리고 벼린 가슴속 칼날은,

이제는 무뎌지게 다듬고  저 멀리 등뒤로 내던져야 하는 것을

아직도 인정을 못하는가.


남자의 가슴속 '카리스마'는

어쩌면 생존을 위한 육탄전으로 인해 생겨난 지워지지 않는 상흔인지도 모르겠다.

이제는 아무짝에 쓸모없이 무뎌진 '카리스마'를 부여 쥐고

작별을 고하고자 낑낑거리는 나를 보면서

아내는 혹시나 해서 영문도 모른 채 또다시 버튼을 쿡쿡 눌러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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