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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 오는 날의 택배랩소디

상상하는 천국, 실재하는 지옥.

by 코나페소아

비가 올 때면 슬며시 감성이 되살아나곤 한다. 차창 위로 빗방울들이 한가득 아롱져 흘러내릴 때면 나의 영혼은 미소를 띠며 잃었던 꿈 꾸는 능력을 되찾는다. 산다는 것은 늘 타인의 의도대로 무언가를 해야 하는 얽매임의 연속이다. 뿌연 하늘에서 빗방울들이 흩날리며 대지를 적시는 순간이면 그런 메마른 일상 속에서 시들어가던 나의 의지는 다시금 생기를 되찾았다.


<페르난두 페소아>는 자신의 인생은 사실 없는 자서전, 삶이 없는 인생이라고 했다. 그는 실제 삶보다는 자신의 감각 속에서 깊은 평온을 찾을 수 있다고 믿었다. 그저 자신의 느낌에 따라 삶의 풍경화를 그려나가고 써 내려갔다. 자주 찾던 카페에 앉아 커피잔 앞에서 담배를 문채 은 상념 속에 빠진 그는 이 땅 위에 자신만의 천국 실현하는 상상을 하고 있으리라.


하지만 카페 밖에서 우리는 길을 잃었다. 시월이지만 비가 자주 내렸다. 숨 가쁘게 택배를 돌리던 우리는 이쁜 전구들이 드리워진 카페의 루프텐트 아래에서 쏟아지는 빗줄기로 인해서 강제로 멈춰 서야만 했다. 그제야 시간의 결핍으로 인한 '터널링'에서 벗어난 우리는 감미로운 음악소리와 향긋한 빵내음이 카페에서 흘러나오고, 우리와는 전혀 무관하게 스쳐 지나며 길가를 오가는 사람들을 인식할 수 있었다.

'우리는 빗물에 젖은 이 거리에서 왜 이방인처럼 우두커니 서 있는 것일까?' 하는 생각과 함께 슬며시 서글픔이 생겨났다.

우리가 겪는 이 모든 상황과 느낌들이 우리에게만 일어나는 것일까? 아니면 이 생을 살아가는 누구에게도 일어날 수 있는 것일까?


우리가 원하지 않는 이 모든 현실과 그로 인해 생겨나는 이 감정들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다독일 수 있을까?


프랑스 철학자인 시몬 베유는 공장노동이 심리에 미치는 영향을 조사하기 위해 오랜 시간 여성노동자들과 일하기도 했다. 그녀는 불꽃에 달려들어 자신을 불태우는 나방처럼 살았다. 그녀의 불꽃은 공장과 전쟁터 속에서 지식인이 아니라 스스로 노동자처럼, 반파쇼 전사처럼 불타올랐다.


런 불꽃같은 시몬 베유가 한다.

"상상적인 천국보다 실재하는 지옥이 더 바람직하다고 생각해야 한다."


삶에는 늘 선과 악이 혼재되었다. 사람들은 자신의 기준에 맞춰 흑, 백을 나누고, 선과 악을 구별한다. 누군가에겐 선이 또 다른 누군가에겐 악이 된다.


그녀는 사랑을 하더라도 "상상을 섞지 말고 사랑하려고 노력하고, 아무런 해석도 덧붙이지 말고 사랑하라"라고 했다. 그때 자기가 사랑하는 것이 정녕 '신(God)'이 된다고 그녀의 노동일기에 적었다.


영혼에 미소를 띠고 비 내리는 을씨년스러운 이 거리와 카페 앞에서 나는 한정된 내 인생을 고요히 받아들이기로 했다. 먹고 마시기에 부족함이 없고 잘 곳이 있고 꿈꾸고 글을 쓸 약간의 시간이 있는데 무엇을 더 <신>에게 요구하며 <운명>에게 바라겠는가.


인생이 나를 어디로 데려가는지 알 수가 없다. 나는 아무것도 모르니깐. 그저 나는 택배 하던 이 거리의 카페 앞에 서서 나에게 주어진 산들바람과 빗줄기를 즐기고 그렇게 즐길 수 있도록 주어진 내 영혼을 즐길 뿐 더 이상 묻지도 찾지도 않겠노라는 <페소아>처럼 계속 나아가기로 했다.


움직이는 것은 살아있고 말해지는 것만 그저 살아남을 뿐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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