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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픔이 기쁨을 굶주려하다.

고통과 기쁨의 관계

by 코나페소아

짐을 쌓다가 잠시 밖으로 나왔다. 오늘은 흐리다고 했는데 하늘이 눈부시게 화창하다. 소한 횡재처럼 느껴지는 또 다른 하루가 길 것 같아 기분이 좋아진다. 10월인 요즘은 농수산물 수확철이라서 그런지 무거운 짐이 나 많다. 쌀, 감, 고구마, 감자 등이 기존의 무거운 짐들(세제, 고양이모래, 캠핑이나 운동용품, 대형장난감, 탕용기 등)과 더해진다. 11월부터는 김장철을 앞두고 '절인 배추(쩔배)'가 본격 모습을 드러낼 것이다.

물량이 적었던 7,8월에는 수입이 줄어 걱정하고 물량이 늘어나는 10월 들어서는 무거운 '똥 짐'으로 인해 택배기사들은 고통스러워한다. 노동하는 철학자 시몬 베유는 "고통과 기쁨의 관계는 배고픔과 음식의 관계와도 같다."라고 말했다.

수입이 느는 즐거움과 몸의 고통을 동시에 느끼는 상황이면 '기쁨과 고통은 대립하는 관계가 아니라 불가분의 짝'이었음을 새삼 깨닫는다. 슬픔과 기쁨의 경계는 뭘까. 우리 삶 속에서 진정한 기쁨과 행복이란 무엇일까.

사람들은 고통을 '악'으로 규정하고 피하려고 지만 상은 기쁨과 슬픔은 같은 거라고 시몬 베유는 말한다. 그녀의 말대로 우리의 삶에는 '지옥과 같은 기쁨과 고통', '천국과 같은 기쁨과 고통'이 경계 없이 섞여 존재했다.


탑차내에 짐을 쌓을 때면 가장 신경 쓰는 부분이 있다. 차량운행 중에 짐들이 무너지지 않도록 잘 쌓는 것이다. 짐을 잘 쌓는 요령을 터득했다. 무거운 짐은 가장 아래에 두고 가벼운 짐을 그 위에 차곡 쌓아나가는 것이다. 무거운 '똥 짐'들이 맨 아래에서 든든하게 무게중심을 잡아주고 그 위에 크고 작은 짐들을 촘촘히 쌓다가 천장 부근에는 가장 작고 가벼운 택배박스로 잘 끼워 맞춰 고정하는 순간 결코 짐들이 무너지지 않았다.

인생 속에서 고통과 슬픔은 '똥 짐'처럼 삶의 맨 밑바닥에서 중심을 잡아고, 그 위로 소소한 크고 작은 삶의 기쁨들이 켜켜이 쌓여 더 이상 무너지지 않은 채 서 있는 모습들을 탑차 뒷문을 열 때마다 켜보던 나는 늘 감탄하곤 했다.

지옥과 같은 기쁨과 고통.

천국과 같은 기쁨과 고통.

음식과 배고픔의 관계처럼 기쁨과 고통은 늘 우리 삶 속에 렇게 공존했다.


나는 슬픔은 슬픔만이 위로할 수 있다는 사실을 <페소아>의 불안한 글을 읽으면서, 아픔을 노래하는 슬픈 음악들을 으면서 깨달았다. 블랙커피의 쓰디쓴 맛 뒤에 숨겨진 깊고 구수한 단 맛 더욱더 강한 중독성을 발하며 혓끝을 맴돈다. 픔 속에 담긴 기쁨의 실체란 이런 것이 아닐까.


'상상하는 천국'보다, '실재하는 지옥'이 우리에게 더 바람직하다는 글귀의 의미가 하게 닿는다.


화사하고 이쁜 꽃다발이었다. 큰아들이 결혼을 염두에 둔 여자친구를 데리고 왔다. 얼마나 긴장되고 신경이 쓰였을까. 그 모든 것이 담긴 꽃송이라서 그런지 더 이쁘고 고마웠다.

우리는 외딴 이곳까지 날아든 젊은 방문객들을 편안하게 대해주려 노력했다. 시간이 갈수록 밝고 젊은 아이들에게서 불안하고, 고통스러운 ' 사연'들이 자연스레 흘러나왔다. 첫 직장생활의 힘겨움과 고통, 그리고 현재 머무는 직장 내에서 느끼는 불안과 긴장감을 조심스레 말하는 아이들을 통해서 나는 삶의 실체를 또다시 확인할 수 있었다.


인생이란 실상은 슬픔이라는 커다란 바위덩어리 위에 듬성듬성 흩뿌려진 채 화사하게 피워 오른 야생화 같은 가녀린 기쁨들로 이루어졌음을, 그리고 인생이란 꽃이 활짝 피는 화려한 순간만큼이나 꽃이 지는 고통스러운 순간 역시 중하고 큰 의미 부여된다는 사실을 말이다.


하지만 이 모든 진실을 아이들에게 부작용 없이 자연스레 이해시킬 능력이 없는 우리는 그 모든 것을 흘러가는 시간에게 양보한 채 그저 희망의 가면을 쓰고 어른의 덕담으로 다독이고 위로할 뿐이다.

인생이라는 무대 위에서 우리는 기쁨과 슬픔이라는 양극단을 쉴 새 없이 오가다가 결국은 지쳐 쓰러지곤 한다. 그저, '황금의 중용' 또는 '회색지대'로 표현하는 중간지대에 가만히 주저앉아, 쉴 새 없이 오가는 슬픔과 기쁨들을 거리낌 없이 받아들이고 포옹하며 살아가는 것이 현명할 수도 있겠다.


사람은 불완전하기에, 늘 불안한 기쁨과 행복을 추구한다. 차라리 다가서는 고통과 슬픔을 안아보자. 한결 삶을 살아낼 의지가 생겨난다. 똥 짐을 피하지 못하고 날라야 하는 택배기사가 견딜 수 있는 비결이기도 하다.


그리고 또 한 가지. 깊이 있고 위로가 되는 글들은 늘 진한 슬픔 속에서 나왔다. 그 후로는 나는 슬픔이 배고파하는 기쁨을 찾으려 애쓰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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