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울어진 경사면에서 멈춰 선 '구슬'의 불편한 진실
휴일 아침에 단지 내 식자재 마트에서 장을 봤다. 놀이터 벤치에서 영수증을 살피던 아내가 가벼이 한숨을 내쉰다.
"산 것도 별거 없는데 8만 원이네. 우리가 새벽 다섯에 일어나 오후 1시까지 택배를 백개 배송해야 버는 돈인데 이렇게 몇십 분 만에 사라졌네."
빈곤이 공포와 비슷한 냄새를 풍기며 다가선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가난이란 일종의 범죄인 것처럼 느끼게 만든다. 아니 이제는 가난은 범죄가 되어버렸기에 소름마저 돋는다.
1993년 택배산업이 생긴 이래로 택배비는 꾸준히 하락 중이다. 택배 한건을 배송해서 택배기사가 받는 금액은 대략 600~800원 수준이다. 그마저도 더 떨어지는 추세다. 단 며칠 먹을 일상용품과 식비를 위해서 일해야만 하는 배송시간은 점점 더 늘어만 간다. 시간이 갈수록 우리가 하는 택배노동의 가치는 하락하는 중이다.
문득, 배송하다가 본 엘리베이터 광고판에 뜬 뉴스가 생각났다. 133년 전 난파된 호화유람선 타이타닉에서 함께 죽음을 선택한 노부부의 금시계가 경매에서 34억에, 1939년 출간된 슈퍼맨 만화책 초판본이 139억에 각각 낙찰되었다는 뉴스였다.
금융자본주의가 보여주는 돈의 가치기준이 지나치게 편향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돈을 가진 자본가들(기업주, 금융가 등)에게는 한없이 후덕하지만, 특히 가난한 육체노동자에게는 참 가혹하고 박하기만 하다. 이런 현실은 저임금 노동자를 허무하게 만든다. 우리가 매일 일하는 노동이 제대로 가치를 인정을 받을 수 있을까. 그에 대한 대답은 이미 이십 년도(2000년 초반 노동현실) 훨씬 이전에 '바버라 에런라이크'가 <노동의 배반/2012>이라는 책에서 명확하게 언급했다.
그녀는 하루 8시간 이상을 아무리 열심히 일하고 노력해도 생활이 나아지지 않는 '워킹푸어(주로 육체노동자들)'의 암울한 현실을 금융자본주의의 위선과 숨겨진 착취문제와 함께 섬세하게 드러냈다. 청소부와 대형마트 계산원 등 저임금노동 현장에 직접 잠입해서 취재하며 그녀가 발견한 몇 가지 놀라운 사실들이 있었다.
수많은 사람들이 살아가는데 필요한 액수에 훨씬 미치지 못하는 돈을 받고 일하고 있었다.-그녀는 취재 후 10년 뒤 이런 상황은 더욱 악화되었다고 했다.- 낮은 저임금은 노동자를 최대한 일을 많이 하도록 바쁘게 움직이게 만들었다. 그리고 저임금의 일자리는 지원하는 사람들을 늘 겸손하게 만들었다. 노동자들은 낯설고, 혐오스럽고 굽실거리는 어떤 것에 감염되어 있었다. 불공정하고 부당함에 대한 초연함을 익히는 연속적인 삶이라고 그녀는 썼다.
그렇게 그들은 사람들에게 아무것도 아닌 , 청소부나 그저 이름 없는 저임금 노동자로 살아갈 뿐이었다. 그녀는 질문을 던진다. 경사면에 놓인 구슬처럼 임금을 더 많이 주는 직장을 선택해서 아래로 움직이리라는 상식과도 같은 질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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