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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임배추 속에 담긴 사랑

그 사랑은 상처일까요, 아님 기다림일까요?

by 코나페소아

택배기사에게 11월은 "쩔배(절임배추)"의 계절이다.

임말 배가 힘겨움이 한껏 버무려져 "쩔배"가 된다. 새벽이면 눈을 뜨자마자 가장 먼저 절임배추 수량을 체크할 때면 절로 탄식이 나온다. 택배레일 위로 흘러가고 다가오는 <이 세계 속에서 가장 무거운 것들>을 받아 정리하느라 택배기사들은 힘겹다. 한아름 쌓인 배추상자들로 인해 한쪽으로 기울어진 택배차량을 바라보니 배송하기도 전에 마음마저 평정을 잃고 이리저리 어수선해진다.


무거운 중량에 비해 코 공정하지 못한 저렴한 택배기사의 배송운임과 덤으로 쏟아지는 고객들의 독촉전화 때문에 대부분의 택배기사들이 "쩔배"를 몹시도 싫어한다. 하지만 김장김치에는 자녀들을 향한 부모의 사랑이 담다. 나이 지긋한 부모들이 힘겹지만 배추 한 포기 한 포기 정성을 다해 다듬고 양념을 재운다. 힘겹게 배송을 할 때 모여있던 가족들이 환호성을 지르며 반겨하는 모습을 보면 나름 보람도 느낀다. 5060 세대 이상인 노년의 부모가 자녀들에게 베푸는 사랑의 표현이 가득 담있기에 "쩔배"는 그래서 한없이 무운가 보다.


그것을 날라야 하는 택배기사인 나에게도 택배 하는 소중한 이십 대 아들이 있다. 아버지인 택배기사가 자식에게 베풀 수 있는 사랑이란 <쩔배>를 나르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 무겁기도 하지만 무수한 독촉전화에 행여나 아직 서툰 아들이 운전이나 배송 중에 사고가 날까 봐 염려가 되어서이다. 아들이 배송하는 구역에서 <쩔배>를 고스란히 빼어냈다. 아들이 버럭 화를 낸다. 허리도 아프면서 왜 그러냐며 배송하겠다고 떼를 쓴다. 한동안 옥신각신하다 나의 으름장에 그만 아들은 불만 가득한 표정으로 물러났다.


"요즘 애들은 순종적이지 못하고 자기 생각만 옳은 줄 아는가 봐."

조언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아들에게 그만 속이 상한 나는 아내에게 푸념을 털어놓았다. 아들이 아버지의 속마음을 몰라다는 점이, 또는 아버지의 권위에 순종적이지 않아서까. 왠지 모를 서운함 하나 가득 끌어안으니 기분이 착 가라앉는다. 부모의 사랑이란 조건적인 걸까. 내가 이만큼 너에게 베푸니, 너는 부모의 권위에 순종하라는 대가의 논리 은연중에 드러내는 나는 속 얕은 꼰대 같은 아버지 된 것 같아 더 속상하다.

자식에게 하나라도 더 먹이고 베풀려는지 노년의 부부가 택배가 언제 오냐며 채근하다가 직접 찾으러 왔다. 조금만 기다려 달라는 부탁에도 같이 김장하려고 부른 지인들에게 피해를 줄 수 없다며 굳이 찾으러 오겠다고 한다. 늦어도 오 분이면 배송이 될 지점까지 도착했는데 끝내 찾아와 자신의 짐들을 승용차에 옮겨 실는다. 배송을 멈춘 채 짐을 찾아 옮겨주고 그들이 떠난 후 독촉전화와 물건을 찾아주느라 시달리다 배송흐름이 끊긴 후유증으로 멍하니 숨을 가다듬은 채 한동안 배송을 멈추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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택배하며 몸글을 쓰며 삽니다. 평범한 삶 속에서 엮이다 남겨진 감정을 재료삼아 글을 쓰다보면, 새롭게 발견하는 숨겨진 의미들. 그래서 오늘 하루를 또 살아가나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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