텅 빈 택배차가 가르쳐준 다시 채우는 '비움(zero)'의 미학.
아내와 함께하는 이 새벽, 차창 너머 하얀 가로등이 별처럼 쏟아진다. 우리는 그 빛의 터널을 지나 짙은 어둠 속으로 깊이 빨려 들어간다.
곁에 앉은 아내가 드라마 <응답하라 1988>의 덕선이네가 왜 지하 단칸방에 사는지 사연을 들려주는 동안, 드라마 삽입곡(OST)이자 리메이크곡인 '그대여 아무 걱정 하지 말아요'를 부르는 이적의 목소리가 잔잔하게 흘러나왔다.
평범한 일상을 살아가는 우리와, 다른 가수의 노래를 자신의 목소리로 다시 부르는 '커버(Cover) 가수' 사이에는 의외로 깊은 정서적 공통점이 있다. 모두 이미 주어진 상황(삶과 노래) 안에서 자신만의 의미를 찾아내려 애쓴다는 점이다.
매일 똑같은 구역, 변함없는 배송 루트. 우리의 일상은 어쩌면 바꿀 수 없는 '원곡'과도 같다. 하지만 같은 노래라도 누가 부르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감동을 주듯, 나는 내 삶을 재해석하는 '커버 가수'처럼 살고 싶다.
원곡의 멜로디는 바꿀 수 없지만, 그 안에 담긴 감정과 호흡은 온전히 나의 몫이다. 그렇게 고독이 주는 여백 속에서 '맨몸'으로 주어진 삶 위로 나만의 흔적들을 써 내려간다.
평범함은 경멸의 대상이고 특별함이 드러나야 제대로 살아갈 수 있노라 여기는 세상 속에서, 우리가 부르려는 커버 곡의 주제는 과연 무엇이 되어야 할까?
사람에게 세상은 두 겹이다.
마틴 부버는 우리가 따스한 '당신(You)'과 만나는 인격적인 세상, 그리고 그저 빨리 처리해야 할 '그것(It)'으로만 이루어진 도구적인 세상, 이 두 겹의 관계 속에서 살아간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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