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이 진짜일까.
구정연휴가 시작되는 주말, 마지막 배송구역에서 한참을 택배를 챙기며 배송을 시작하려는데 아주머니 한분이 멀리서 나를 부른다.
"택배기사님. 택배기사님."
나는 아무 생각 없이 고개를 돌렸다.
명절선물을 들고 아주머니 세 분이 어디론가 가는 중인가 보다.
"택배기사님. 한 해 동안 고생 많으셨어요. 감사합니다."
"아.. 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엉겁결에 나는 인사를 하고는 '택배기사님 참 고생이 많으셔.' 하면서 자신들끼리 대화를 주고받으며 지나가는 모습을 바라보다가 잠시 생각에 빠졌다.
사람들은 서로에게 복을 빌어주며 새해를 맞이할 준비로 들떠있었다.
그러고 보니 세상은 신년에 대한 기대감, 오랫동안 보지 못한 인연들의 재회에 대한 설렘으로 물들어 있었다.
아들이 선물꾸러미를 하나 들고 왔다.
"아빠, 고객이 이렇게 선물을 챙겨도 주시는 거야?"
작고 속이 빨간 종이 백안에 이쁘게 포장된 초콜릿과 과자들, 그리고 손글씨 편지가 있었다.
이전에 잘못 수거된 반품문제로 한동안 통화하면서 알게 된 앳된 여성고객이었다. 내가 아들과 함께 택배 하는지 어떻게 알았을까? 아들 몫까지 꼼꼼히 챙긴 선물을 보면서, 나는 그날이 밸런타인데이와 겹쳤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았다.
감동이란 늘 내가 예상하지 못한 순간에 배려심이 깃든 말과 손길에서 진하게 느껴지곤 한다. 그리고 여운이 오래 남는다.
아무도 관심이 없다고 생각했는데, 늘 내 곁을 떠나가는 것들만 생각하며 살아왔는데.
이럴 때면 나는 사람이 다시 그리워진다.
진짜로 한 해가 간다.
잘 가라 나를 떠나가는 것들
그것은 젊음, 자유, 사랑 같은 것들.
그렇게 믿고 다치더라도
나는 또 누굴 믿게 되겠지.
그러니 잘 가라.
인사 같은 건 해야겠지. 무섭고 또 아파도
매일이 이별의 연습이지만 여전히 난 익숙하지 않아.
난 아파하겠지 그래야.
보낼 수 있을 테니 모든 걸.
보내야 오겠지. 내일이 그렇듯. <최백호가 노래한 "나를 떠나가는 것들">
무엇이 진짜일까.
나는 매일 무언가를 기대하고 체념한다.
오랫동안 쓰다멈추다를 반복해 온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
내가 아닌 다른 존재 속에 투영된 또 다른 나 자신을 조심스레 그려보며
나는 무엇을 떠나보내고 무엇을 다시 잡으려 하는지 깊이 생각하게 된다.
책상 앞에 앉은 나는 지금 내 삶의 흔적을 뒤적이며 어떤 선물꾸러미를 준비하는 걸까.
얼마나 더 아파야 모든 걸 보낼 수 있을까.
"그러니 잘 가라." 하며 담담히 인사할 수 있을까.
늦었지만 새해 복 많이들 받으세요.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