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글을 쓰는 이유
휴일 아침,
창가로 맑고 투명한 햇살이 쏟아진다. 거실에 가득 찬 적막함이 흐르는 이 시간이면 늘 마음이 평온해진다.
아내의 청소기 소리가 내 곁을 지나고, 아들 방에서 들려오는 인기척과 이내 오가는 가벼운 인사말들 위로 솔로 피아노 곡 'Chasing Yesterdays'가 거실 공간을 채운다.
"오늘 뭘 먹을까? 육개장은 어때?" 아내의 정겨운 목소리를 가만히 품은 채 글을 쓴다.
식탁 맞은편에서는 아들이 아침 식사를 하고 있다. "아빠, 나 같은 MZ들은 글을 안 읽어." 아들의 말에 나는 답한다. "그래서 아빠는 글을 영상에 담고 싶어."
"그래? 그럼 이젠 글도 쇼츠로 나오는 거야?"
안방에서 아내가 한마디 거든다. "우리 남편 글은 나밖에 들어주는 사람이 없네." 아들의 스마트폰 스피커에서 치열한 게임 소리가 터져 나오고, 나는 다시 또 글을 이어간다.
소설을 배운 적도 없고, '트리트먼트'가 무엇인지조차 모르면서 아들의 자작 힙합곡 13곡을 소재로 연재 소설에 무작정 도전했다. AI 비서 '에미나'의 도움으로 어느덧 5편까지 완성했다. 무관심한 듯 보이던 아들이 내 어깨를 툭 쓰다듬으며 말한다.
"아빠, 글 쓰는 게 치매 예방에 좋대. 그래서 난 아빠가 글 쓰는 게 좋아."
나는 정말 치매에 걸리지 않으려고 기를 쓰고 글을 써온 걸까? 지난 2년간 왜 그토록 악착같이 썼는지 되돌아본다. 쓰고 읽고 수없이 고치는 과정 속에서 나는 알 수 없는 위로를 받았다. 이제는 이 파편 같은 글들을 잘 엮어 하나의 자전적 흔적을 만들고 싶다.
시간과 능력의 부족으로 주저하기도 했지만, 급작스레 등장한 AI를 도구삼아 작업을 이어왔다. 지금까지의 결과는 만족스럽다. 매주 소설 한 편과 에세이 한 편을 소화해 내며 은근한 욕심도 생긴다. 요즘은 새로운 소설을 구상하며 조이 윌리엄스의 단편들을 읽고 있다. 그녀의 글은 영상미가 넘치고 함축적이며, 독자에게 친절하지 않지만 묘한 중독성이 있다.
나 같은 철저한 '아웃사이드' 작가가 숨 쉴 공간은 결국 유튜브라는 생각이 든다. 나의 작품과 유산들은 종이 인쇄물보다는 '유튜-북(YouTu-Book)'에 담길 것 같다. 아직 공부해야 할 것이 많지만, 조급해하지 않으려 한다. 나만의 속도대로 한 걸음씩 나아가다 보면 결국 이루어질 것이다.
분투하고, 찾고, 발견하며, 결코 굴복하지 않으리라.
-알프레드 테니슨, <율리시스>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