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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오클래식처럼 인생은

by 코나페소아

택배를 하면서 늘 새벽 5시면 눈을 뜬다. 요즘은 아내가 지출을 줄이고 건강도 챙기자며 김밥을 준비한다. 택배 하는 바쁜 와중에 김밥은 간편하게 요기할 수 있는 음식 중 하나다. 마실 물과 간식거리 등을 사각캠핑가방에 챙겨 넣고 아내와 함께 집을 나선다.


쉬이 잉. 쉬이 잉.

휠소터가 가동되는 소리와 함께 레일이 힘차게 돈다. 높은 천장 위에 달린 하얀 전등불빛 아래로 젊은 택배기사들이 열심히 짐을 정리해서 분류하는 모습이 활기가 넘친다. 내 앞으로 분류되어 나오는 박스를 잡아서 건네주면 아내는 배송 때 알아보기 쉽게 매직펜으로 동호수를 크게 써준다. 가지런히 짐들을 구역별로 정리한 후 탑차 안으로 차례로 쌓아 올린다. 서너 시간의 상품분류 및 상차작업을 하는 동안 나에게로 흘러오는 상품들을 하나하나 바라보며 집중하는 동안은 이 순간이 나의 전부가 된다. 아내는 간혹 동료기사들과 대화를 나누거나 간식거리를 주고받기도 한다. 드문드문 나오던 상품들이 막차 때가 다가오면 클라이맥스에 도달한 듯 상품들이 마구 쏟아져 온다. 다들 바쁘게 상품을 정리해서 탑차 안에 마무리해서 넣느라 정신이 없다.


탑차에 짐이 가득 실릴 때는 배송할 걱정에, 짐이 적게 나오면 적게 나오는 대로 맘은 늘 무겁다. 하지만 우리는 늘 삼총사처럼 하나라는 사실이 든든하다. 배송지에 도착하면 다양한 변수가 기다린다. 비가 오거나 정전 또는 점검 등으로 엘리베이터를 쓸 수 없거나 주차할 자리가 없다든지 하는 예상치 못하는 일들은 늘 발생한다. 그때마다 요동치려 하는 감정코끼리를 진정시키고 상황에 맞는 방법을 빨리 선택해야 한다. 도로, 주차장, 엘리베이터 등 택배를 위해 사용해야 하는 시설들은 모두 함께 쓰는 공공재이기에 그만큼 마음의 여유가 필요하다. 자칫하면 이런 시설들을 사용하는 중에 갈등이나 다툼이 많이 발생하기에 각별히 마음을 편안하게 유지해야 한다.


지금은 우리 가족들이 서로의 역할에 익숙해져 포터에서 내려 배송하는 순간부터는 서로의 얼굴을 볼 틈도 없이 민첩하게 움직인다. 크고 무거운 짐은 도맡아 하려는 아들이 참 고맙고 짠하다. 그냥 이렇게 엄마아빠 곁에만 있는 게 옳은 걸까 하며 혼자 갈등을 하면서도 그렇지만 우리와 함께하는 게 마음이 더 편하고 좋은 걸 어떡하냐는 아들이다. 자기가 원하는 음악을 하면서 먹고사는 문제로 인해 힘들어하며 살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지만 아들의 인생을 참견할 수는 없다. 선택은 다 큰 자식의 몫이기에 그 선택에 따라줘야 하지만 그래도 부모와 함께 하는 이런 단조로운 삶에 잘 맞춰주는 듯싶어 감사할 뿐이다.




우연히 <네오클래식> 다큐를 시청하면서 피아니스트 <윱베빙>이 자신이 사는 마을의 한적한 거리에서 연주하는 장면을 보았다. 굴다리 밑에 놓인 야외피아노에서 그가 잔잔히 피아노를 연주하고 길을 지나던 행인들 몇몇이 발걸음을 멈추고 그의 연주에 귀를 기울였다. 클래식이 일상의 길거리로 찾아와 마주하는 모습이 너무도 편안하게 와닿았다. 광고카피라이터로 일하다가 피아니스트로 활동하게 된 윱베빙은 <네오클래식>을 대표하는 피아니스트 중 한 사람이다.


뿌리는 클래식음악에 두고 있지만 동시대 청중의 감각과 맞닿은 '신(新) 클래식'을 추구하는 <네오클래식 Neo Classic> 음악은 형식이 간결하고 편안하다. 마치 불멍을 하듯 듣고 있으면 마음이 편안해진다. 자극적이지 않고 꾸밈없이 잔잔하게 흐르는 시냇물에 낙엽 하나가 흘러가듯 편안하다.


피아노의 선율에 자신의 감정을 녹여내어 삶의 방향을 잃어 지친 스스로를 위로하고 주변의 많은 청중들의 마음을 편안하게 어루만지는 공감친화적인 네오클래식처럼 반복적이고 딱딱한 인생의 틀을 벗어날 순 없지만 글과 음악, 그리고 가족애로 함께 살아가는 많은 이들에게 편안함을 선사하고 친근한 공감을 되받으며 살아갈 순 없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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