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리베이터는 7,80년대 아파트가 급격히 늘어나면서 쉽게 접할 수 있게 되었다. 가로세로 약 1.4m 폭의 좁은 공간에 성인 11명 정도가 수직의 목적지로 가기 위해 낯선 타인들과 약 20초간 함께 이용하는 공유재이다.
엘리베이터가 없이 계단으로만 이용가능한 한 아파트 내 고층상가동이 SNS에서 건강을 위해 좋은 핫플레이스로 크게 주목을 받았지만 택배기사 입장에서는 그런 상황은 아찔하기만 하다.
최근에 배송하는 아파트단지에 정전이 발생하여 하루종일 엘리베이터가 멈춰 섰다. 배송을 하는 우리도 비상이었지만 우체부아저씨, 고령의 입주민 분들도 난감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우리는 저층의 상품은 계단을 통해 배송하고 부피가 작은 상품은 편지함에 넣고 안내문자를 반복해서 보내야 했다. 무겁거나 부피가 큰 상품은 부득이하게 경비실에 맡길 수밖에 없었다. 경비실에 가보니 다른 택배사 상품들로 이미 가득 차있었고 경비아저씨들도 당혹스러워하셨다. 사정해서 간신히 경비실에 맡긴 후 안내문자를 드린 고객분들에게서 걸려온 항의전화에 해명하느라 배송이 많이 지체되어 버렸다.
"무거운 상품을 거기다가 두시면 어떻게 해요?"
"죄송하지만 정전이라 엘리베이터가 가동이 안 돼서 그러니 경비실에서 상품을 찾아가셔야 할 것 같네요. 양해부탁드려요."
상품이 걱정도 되고, 불편해하는 고객들의 반응도 신경이 쓰이지만 고층으로 무거운 상품들을 부실한 무릎으로 계단으로 배송하기에는 무리한 상황이었다. 그런 난리를 겪은 후 엘리베이터가 온전히 가동되는 아파트단지에서 배송할 때는 저절로 감사해진다. 엘리베이터는 택배기사의 무릎과 관절을 살려주는 참 고맙고 살가운 존재다. 엘리베이터마다 열리고 닫히는 순간이 미세하게 차이나는 특징과 시간차를 지녔다. 숙련된 택배기사는 엘리베이터의 특성들을 잘 파악해서 각기 달리 열리고 닫히는 순간에 맞춰 배송을 하면서 시간을 효율적으로 줄여나간다.
엘리베이터 안에서 약 20초간 형성되는 폐쇄된 공간은 영화나 드라마에서 종종 호러, 공포, 은밀한 색다른 소재로 활용되기도 하지만 실상은 알지 못하는 타인들이 서로 다른 목적으로 잠시 동행하면서 어색하고 불편한 긴장감을 불러오는 묘한 곳이기도 하다. 유난히 커버가 닳은 닫힘 버튼의 상태는 무수히 많은 조바심의 손길들이 난타했음을 짐작하게 한다.
엘리베이터에는 은밀한 차별과 갈등적 상황이 생겨나기도 한다. 언젠가 배송할 짐을 가득 싫은 채 엘리베이터를 타려는 순간 청소미화원이 고압적으로 막아섰다. 입주민이 아닌 택배기사나 배달기사들은 다른 엘리베이터(화물칸 전용)를 타야 한다는 것이다. 엘리베이터가 손상되거나 더러워지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나름 항의를 했지만 막무가내로 관리사무소 방침이라고 했다.
폐쇄된 공간에서의 범죄를 우려해서 1층 로비층의 엘리베이터 버튼 위에 모니터가 설치된 아파트단지도 있다. 엘리베이터 특성상 수많은 이들이 함께 이용을 하기에 모니터에는 그런 모습들이 고스란히 노출된다. 문제는 닫힘 버튼을 난타하던 조급함과 분노가 담긴 시선들이 모니터를 통해 이용자에게 고스란히 쏟아진다는 사실이다. 배송을 마치고 1층에 내려오니 기다리던 배달기사가 급히 탔다. 아내가 근심 어린 표정으로 다가왔다. 배달기사가 모니터를 통해 배송하는 내 모습을 보면서 한참을 욕을 해서 걱정이 돼서 지켜보고 있었다는 것이다. 다들 바쁘고 여유가 없다. 엘리베이터를 사이에 두고 입주민, 택배기사, 배달기사들이 닫힘 버튼과 짜증의 시선들을 주고받는 상황들이 소리 없는 전쟁처럼 매일 벌어진다.
최근 뉴스에서 어느 상가의 엘리베이터의 닫힘 버튼에 압정이 붙여진 사건으로 떠들썩했다. 다들 압정을 붙인 CCTV속 헬멧 쓴 배달기사의 이해할 수 없는 엽기적인 행동에 분노했지만 <닫힘 버튼 위에 붙여진 압정>은 엘리베이터를 둘러싼 이기적인 차별과 갈등이 발생하는 상황을 고스란히 담고 있는 상징이었다.
미국의 법의학자 '마이클 헬러'는 너무나 많은 사람이 이기적으로 자신의 소유권을 주장하며 서로 간의 협력을 외면할 때 모든 사람이 손해를 입고 수많은 소유권은 아무 쓸모가 없어지는 비극적 상황이 초래된다고 경고하며 이를 <반공유재의 비극>이라고 했다.
하지만 엘리베이터의 닫힘 버튼으로 배려가 표현되는 경우도 있다. 같이 탔지만 먼저 내리면서 남아 있는 이를 위해 닫힘 버튼을 슬며시 누르고 내리는 모습에서 따스한 배려가 느껴진다. 엘리베이터가 짧게 열리고 닫히는 순간 급하게 배송할 때 열림버튼을 눌러주며 기다려주는 입주민의 모습에 저절로 감사하다는 말이 입술로 흘러나온다. 서로 배송이 겹쳐진 경우 배달기사에게 계산이 된 것이면 배송해 줄 테니 달라는 나의 말에 웃으며 고마워한다.
택배란 원하는 상품을 문 앞까지 배송받는 편리한 권리이다.
아울러 작게나마 서로를 배려하는 자세는 그러한 권리를 더욱 유용하고 가치 있게 강화시키며 엘리베이터의 닫힘 버튼 위에 붙여진 날카로운 압정이 저절로 사라지게 하는 보이지 않는 손길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