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바 캐시디가 <아름다운 세상>을 노래한다. 그녀의 노래를 들으면 늘 가슴이 애잔하다. 서른셋의 나이에 요절한 사연도 있지만 그녀의 맑고 청아한 목소리와 함께 애잔한 슬픔도 느껴지기 때문이다. 암스트롱의 <What a wonderful world>와는 또 다른 감동의 결을 느끼게 한다.
그녀를 동경하던 멀루아는 기존의 캐시디의 목소리에 더빙한 듀엣 커버곡을 만들어 또 하나의 아름다운 세상을 표현했다.지금 듣고 있는 이 노래의 가사는 긍정적이고 희망목가적으로 보여 진부해 보이지만 무겁고 아픈 반전의 사연을 품고 있었다.
당시 참혹한 베트남전쟁과 인종차별 등 혼란한 미국의 정치, 사회적 분위기를 배경으로 이 노래는 탄생했다. 1967년 이 노래가 발표된 후 20년 뒤에 로빈 윌리엄스 주연의 영화 <굿모닝 베트남>의 사운드트랙에 담겨 재탄생한다. 베트남 정글을 향해 아파치헬기가 무자비한 네이팜탄을 쏟아내고 절규하는 베트남 사람들과 죽어가는 미국병사들 모습 위로 잔잔하게 흐르며 세상의 아름다움을 노래하던 이 곡이 지닌 양가적 의미가 관객들에게 인상 깊게 각인되었다.
이곡을 처음 취입하던 그날의 상황은 암스트롱에게 그리 아름다워 보이지 않았다. 계약을 체결한 ABC레코드 사장 래리 뉴튼은 느린 템포의 이곡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대중적으로 먹히는 빠른 템포의 빅밴드 스윙노래를 요구했다. 이런 상황 속에 마음을 가다듬고 암스트롱은 아름다운 세상을 노래해야만 했다. 새벽 두 시에 오케스트라 단원들과 시작된 녹음은 오전 6시가 돼서야 끝낼 수 있었다. 고생한 오케스트라 단원들의 야근수당을 후하게 챙겨주기 위해 그는 평소에 받던 개런티 수준에서 턱없이 모자라는 수당에 사인을 했다.그리고 출시된 음반은 레코드사의 홍보부족으로 미국에서 1,000장도 채 팔리지 않았다.
<What a wonderful world>라는 곡은 이렇게 세상에 나왔다.
아내는 배송할 때 아주 작은 가방을 멘다. 그런데 너무 작다 보니 핸드폰이 잘 안 들어갔다. 온라인에 가방을 주문했다. 하지만 상품을 받고 보니 디자인과 색상이 아내취향도 아니고 생각보다 저렴해 보였다. 주문을 취소하고 반품을 요청했다. 휴일연휴임에도 수거해 갔다. 하지만 약속된 날에 결재취소된 금액이 입금이 안 돼서 고객센터에 전화해서 문의했다. 한동안 기다리다 남성상담사와 통화가 되었다. 반품취소 후 환불에 대해서 문의한다고 했더니 카드결제는 취소되었다는 것이다.
아 환불이 아니라 카드거래 취소였구나.
남성상담사는 목소리가 피곤해 보였지만 공손히 응대하며 더 필요한 게 없냐고 물었다. 없다고 했더니 바로 통화 끊지 마시고 상담설문에 응해달라고 요청했다. 바로 기계음으로 상담에 대한 평가와 점수를 물어왔다. 상담사를 이렇게 옥죄여서 친절을 강요하는구나 하는 반감이 들었다. 내가 카드결제 취소만 확인했으면 되었는데 괜히 전화해서 상담사를 피곤하게 만들었구나 싶은 자책감이 슬며시 들면서 가장 후한 상담점수를 꾹꾹 눌렀다.
우리는 욕망에 이끌리는 선택을 하며 사는 것에 익숙해졌다. 그 대가로 누군가는 갇힌 근로환경이나 여건 속에서 고통을 감내한다는 사실을 잊거나 외면하며 산다. 당장 나의 편리함이 우선이다. 욕망이 우선하는 삶에서는 주변을 살피거나 미안함이나 안타까움이란 감정표현 없이 그냥 그리 살아간다. 그렇게 옥죄거나 조임을 받으며 무덤덤하게 메말라가는 우리 현실이, 그렇게 익숙해 가는 모습이 두렵기만 하다.
큰아들이 규모가 큰 핀테크회사로 면접을 본다고 했다. 지금 다니는 회사도 사람들이 좋고 근무여건도 좋지만 더 큰 회사를 향한 열망이 크다고 했다. 아내는 잘 알아서 하겠지만 여건이 좋아질수록 업무강도가 더 힘들 거 아니냐며 걱정한다. 회사가 크고 여건이 좋을수록 그 속에서의 경쟁은 더 치열해진다. 입사 후 3개월만 버티면 소속원으로 인정을 받는다고 한다. 힘들지만 그렇게 해서 근무경력에 남들이 인정하는 회사이름을 새길수 있고 그것은 더 높은 여건으로 나갈 기회를 보장받는 것을 의미하기에 시도하는 것이다. 계속 앞으로 도전하며 나가는 모습이 기특하지만 앞으로 더 옥죄일 상황 속으로 들어서는 아들을 바라보는 마음은 마냥 걱정되고 편하지 않다.
MZ세대들의 공무원 퇴사율이 높다고 한다. 요즘 공무원응시율도 역대최저라고 한다. 사유가 궁금해 알아보니 연봉보다 <워라밸>을 더 중시하는 경향 때문이라고 한다. 상명하복식의 수직적 조직문화에 대한 거부감도 크다고 한다. 자신을 위한 삶을 중시하는 요즘 MZ세대들은 확실히 이전 세대보다 영악해 보인다. 아들도 이들처럼 영악하게 선택하고 살아가리라 생각하니 나름 안심이 되면서도 철저히 자기 위주의 성향으로 휩쓸려 갈거라 생각하니 씁쓸해진다.
택배센터에 강아지가 한 마리 있다. 아침이면 사람들은 본척만척 서로 지나치는데 강아지는 마냥 격하게 꼬리를 흔들며 반긴다. 다들 좋아한다.
새로 젊은 택배기사가 들어왔다. 건장하고 잘생겼지만 대리점 내 기존 젊은 기사들과는 다르게 주변사람들에게 적대적으로 행동했다. 유일하게 소장 말만 듣고 관계의 벽을 쳤다. 다들 사회부적응자라며 외면했다. 택배를 하기 전 사업을 하다가 실패했다고 하는데 젊은 나이에 스스로 벽을 치고 적대적으로 사는 모습이 안타깝기도 했다. 하지만 그는 강아지한테는 살가웠다. 그가 또래동료기사한테 처음으로 건넨 질문이 강아지가 사고 난 날 괜찮은 거냐는 물음이었다.
센터에는 소수의 흑인, 조선족, 탈북자부부도 일한다. 그들은 목숨을 걸거나 익숙한 삶의 터전을 떠나 낯설고 머나먼 이곳까지 와서 살기 위해서 일하고 있다. 이 땅에서 나고 생활해 온 우리에겐 보이지 않는 차별과 차가운 시선들을 견디며 곁에서 묵묵히 살아내고 있었다.
무엇이 세상을 향해 젊은이들의 마음을 굳게 닫히게 만든 걸까. 어쩌다가 세상 속의 사람들보다 말 못 하는 강아지가 더 편하게 와닿는 세상이 되었을까. 주변 사람과의 관계를 맺기보다 '관계단절'이나 '은둔'을 선택하는 편이 훨씬 더 수월해진 걸까.
오랜 은둔생활을 하던 23세의 젊은 여성이 토막살인을 했다. 경찰조사에 통화나 문자내역도 없을 정도로 은둔생활을 하다가 우발적인 살인욕구에 일을 저질렀다고 한다. 저지른 사건에 대한 죄책감이나 당혹감도 없이 담담하게 수감 중이라는 소식에 더 이상 뉴스 보기가 힘들다.
같은 23살 막내아들이 배송실수를 했다. 엄마아빠를 걱정 안 시키려 혼자 상황을 수습하느라 애먹었다. 자신이 실수한 상황을 고객에게 설명하려 했으나 전혀 관심 없는 고객의 반응에 순진한 아들은 당황해했다. 아내는 눈앞에서 자식의 그런 모습을 보니 마냥 속상해한다. 사람들은 자기 입장 외에는 관심이 전혀 없으며 선의를 베푸는 고객을 만나는 건 극히 드문 일이라고, 세상은 매정한 게 현실이라고 그것을 모르는 건 순진하다고 말하고 나니 문득 우리가 부모로서 아들에게 세상을 올바르게 가르치는 걸까 싶어졌다.
세상은 오래 사는 건 축복이 아니라 더 많은 돈과 관리가 요구되는 저주 아닌 저주가 되어버렸다. 실손보험료가 점점 비싸진다며 4세대로 변경해야겠다며 보험사와 통화하는 아내모습을 지켜보면서, 상위 텐프로인생 이외는 그냥 오래 살아봐야 이리저리 짐 되는 삶인데 왜 이리 집착하며 애쓰는 걸까라는 심통이 든다.
어디선가 암스트롱의 <What a wonderful world>가 들려온다. 그가 부르는 노래는 세상을 향한 자조 섞인 비꼼일까, 아니면 힘 붙여 살아 내보자는 격려인 걸까.
죽기 살기로 한평생 경쟁하다 사라져 가고, 차별과 불평등이 난무하는 이 세상은 그리 아름다워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암스트롱은 흑인가수로 살면서 늘 차별과 반대에 부딪치는 상황 속에 살았지만 마음을 가다듬고 <What a wonderful world>를 노래했다. 33살의 짧은 생을 살다 간 캐시디는 이어서 삶에 대한 열망을 담아 불렀다. 멀루아는 그런 그녀에 대한 동경을 담아 세상은 아름답다며 이 노래를 커버했다.
그들의 노래는 아름다워서 아름답기도 하지만,
선택할 수 없어도 살아가야 하고, 원하는 만큼 오래 살지 못해도, 영원히 함께 할 수 없는 안타까운 상황 속에 놓였지만, 그래도 그것을 수용하며 살아내는 삶이 처절하지만 나름의 아름다움을 간직하고 있다는 또 다른 미학적 해석을 담아내고 있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세상은 아름답다.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어야 감사할 수 있다. 감사란 자신의 내면에 몰입된 채 살아가는 사람은 느낄 수 없는 감정이다. 자신의 생각에 자갈을 물리고 주변의 모든 상황과 존재들에게 마음이 열려고 시도할 때만 온전히 감사할수 있다.
험난한 세상 속에 숨겨진 경이로운 순간들을 찾아내고 느끼는 순간 비로소 우리의 존재는 빛난다.
따라서 우리의 통제를 벗어나서 바람직한 일들이 벌어졌을 때 그것을 바로 알아보는 것, 그리고 이런 상황들과 마주쳤을 때 경이와 감사의 마음을 키우는 것, 이것들 모두가 잘 사는 삶을 위해서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