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우를 머금은 일요일 이른 아침, 아내는 나와 함께 구순의 외할머니를 뵈러 집을 나섰다. 택배를 하고 난 후 사는 곳을 벗어난다는 것은 많이 부담스러운 일이 되어버렸다. 하지만 최근 건강이 급격히 나빠지셨다는 고령의 외할머니의 소식에 더 이상 찿아뵙는 것을 미룰 수가 없었다. 아내에게 외할머니는 엄마와 같은 존재였다.
아내는 초등학교 시절의 대부분을 충주에 사시던 외할머니와 함께 보냈다. 딱히 살가우신 성품은 아니었지만 외할머니는 우여곡절이 많은 시기에 어린 아내를 미운 정 고운 정으로 정성껏 양육하셨다. 서울로 다시 전학해야 했던 아내는 외할머니가 보고 싶어 한동안 앓아누웠다. 아직도 아내는 엄마보다도 외할머니가 더 편하고 친근하게 여겨진다고 했다.
유수같이 세월이 흘러 손녀는 50대, 외할머니는 97세 노인이 되어 서로 마주했다. 뵌 지 일 년 만에 몰라보게 많이 야위셨고 청력도 많이 상하셨다. 하루에 간신히 한 끼만 드실 수 있었다. 식사를 더 하시려고 해도 소화가 잘되지 않는다며 힘들어하셨다. 지금 와서 후회되는 것이 먹고 싶은 것이 있었는데 안 먹고 참은 것이 후회된다며 우리에게 젊을 때 먹고 싶은 것 있으면 참지 말고 잘 챙겨 먹으라고 짠한 당부를 하신다.
외할머니는 평생을 아끼며 걱정 속에 사셨다. 백세를 앞둔 지금도 칠순이 다된 자녀들의 안 좋은 건강상태를 속상해하시고 염려하셨다. 많이 배울 형편이 안되었지만 글 쓰는 것을 참 좋아하신다. 고령인 지금도 문자를 보내시는데 소녀 같은 감성이 뚝뚝 묻어났다. 외할머니는 오십이 넘은 손녀를 보며 연신 곱다, 이쁘다 하며 부러움 섞인 칭찬을 하신다. 구순의 미래인생 앞에서 오십의 현재인생은 마냥 앳되고 곱기만 하다. 이제까지 보이지 않던 아내에게 남아있는 젊음과 생기를 발견하게 되는 순간이다.
홀로 계시면 늘 과거를 추억하며 가만히 누워 창밖의 하늘을 바라보시며 새로운 시작을 준비하신다. 백 년 가까운 삶을 되돌아보니 원망도, 맘 졸임도, 살기 위한 몸부림도, 모두 부질없는 한점 먼지처럼 허망하다. 나이가 들수록 행복한 경험의 영향력이 더 커진다고 한다. 나이가 들어갈수록 불쾌한 경험이나 기분 나쁜 사람에 대한 기억을 덜 떠올린다. 나이가 주는 <긍정성의 효과>때문인 걸까. 고령의 어른과 대화를 하노라면 무거운 삶의 굴레들이 자연스레 떨어져 나가고 평온해진다.
헤어질 때가 다가오자 아내는 외할머니와 깊은 포옹을 했다. 인생의 현재와 미래가 부둥켜안았다. 우리도 외할머니처럼 늙어갈 것이다. 안간힘 쓰고 애쓰며 사느라 외면해 온 죽음이란 존재가 실감 나게 느껴진다. <메멘토 모리>. 죽음이란 렌즈 앞에서는 지금까지 집착해 온 것들과 상실감에 휩싸이게 만든 것들의 실체는 허무해질 뿐이다.
집으로 되돌아오는 길은 한 치의 앞도 볼 수 없는 폭우로 뒤덮였다. 현실은 과거에 쌓인 스트레스와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이 격렬하게 교차하며 우리의 시야를 가린다. 비상등을 켜고 돌아오는 내내 곁에 앉은 아내는 불안해했다. 그런 아내의 모습을 놀리며 무사히 집으로 되돌아왔지만 전국에서 폭우로 많은 인명피해가 났다는 뉴스를 보면서 죽음이란 늘 우리 곁을 스치듯 지나치고 있다는 사실을 실감했다.
매섭게 쏟아지는 폭우에 무너지는 집안에서 약봉지만 급히 챙겨 나왔다는 한 노인의 사연에서 허무한 인생이지만 이생에 대한 사람의 본능적인 집착을 보게 된다. 중년들에게 인기가 많은 자연인 관련 방송에 출연한 한 부부가 폭우로 인한 재난에 변고를 당했다는 소식에 우리는 안타까워했다. 사나운 세파를 피해 산속에 숨어들었는데 폭우재해에 그만 생을 달리했다는 사연이 너무나 기구하다. 하지만 산사태 같은 재난보다도 인심이 더 무섭다는 사실을 알기에 그래도 자연인을 꿈꾸는 열망은 결코 줄어들지 않으리라는 것이 우리들의 대화의 결론이었다.
재난보다 더 무서운 인심, 그러나 사람은 늘 그 인심을 그리워하며 그 곁을 쉽게 떠나지 못한다. 그것은 아마도 "자기 안에 있는 최선의 모습으로 바라봐 줄 수 있는 사람들" 곁에 머무르는 권리를 쉽게 포기할 수 없기 때문은 아닐까.
까뮈의 소설 <이방인>에서 사람들 곁에 머무르는 권리를 지키려 안간힘을 쓸수록 고된 인생의 모순과 죽음의 의미를 읽었다.
주인공 뫼르소는 거짓을 싫어하는 순수한 영혼이다. 자신이 느끼는 감정과 생각을 감추는 것을 불편해하는 성격이다. 그래서 솔직하게 표현하며 산다. 어머니의 장례식에서 그는 슬퍼하지 않았다. 장례식을 참석하기 위해 회사사장과의 날 선 신경전, 머나먼 장례식장까지 오는 급한 여정으로 지쳐버린 심신, 그리고 무미건조했던 모자관계에서 오는 메마른 감정 등으로 뫼르소는 그날은 슬픔보다 그저 피곤하고 지루하기만 할 뿐이었다.
사람들 곁에 머무르며 살려면 개인의 감정과 생각을 솔직하게 표현하기 어렵다. 사회가 요구하는 통념의 틀에 맞춰진 거짓된 모습으로 순응할 수 있어야 함께 살아갈 자격이 주어진다. 사람들 속에서 나의 생각을 솔직하게 표현하는 순간 차가운 시선 속에 그들과는 다른 <이방인>으로 전락하고 만다.
우발적인 살인으로 법정에 선 뫼르소는 어머니의 장례식장에서 그가 눈물을 흘리지 않았다는 사실이 살인죄보다 더 용납받지 못할 중죄로 비판당한다. 자신의 재판이지만 변호사와 검사만이 그를 대신해 의견을 주고받을 수 있고그는 오직 재판결과에 대해서 책임을 지는 것만 허용된다.
까뮈는 죽음이라는 코드를 거짓된 삶을 강요하는 부조리한 세상을 향한 저항이자 탈출구로 표현했다. 사형선고를 받은 뫼르소는 죽음 앞에서야 비로소 어머니의 죽음을 회상한다.
참으로 오래간만에 처음으로 나는 엄마를 생각했다. 엄마가 왜 한 생애가 다 끝나갈 때 '약혼자'를 만들어 가졌는지, 왜 다시 시작해 보는 놀음을 했는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거기, 뭇 생명들이 꺼져가는 그 양로원 근처 거기에서도, 저녁은 우수가 깃든 휴식시간 같았다. 그토록 죽음이 가까운 시간에 그곳에서 엄마는 마침내 해방되어 모든 것을 다시 살아볼 준비가 되었다고 느꼈던 것 같다. 아무도 엄마의 죽음을 슬퍼할 권리는 없는 것이다.
그리고 나 또한 모든 것을 다시 살아볼 수 있을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뫼르소는 세상을 향한 마지막 저항을 꿈꾼다.
내게 남은 소원은 다만, 내가 처형되는 날 많은 구경꾼들이 모여들어 증오의 함성으로 나를 맞아주었으면 하는 것뿐이었다.
하지만 오늘날 현실 속 이방인들은 부조리한 세상을 향해 저항하는 영웅들이 아니라 튤립이면서 장미가 되려는 절박한 노력을 기울이다 지치고 병든 영혼들일뿐이다.
당신이 튤립이라면 장미가 되려 애쓰지 마세요. 대신 튤립 정원을 찾아가세요.
현실 속 이방인들이 선택할 수 있는 가장 현명한 저항은 스스로를 위한 정원을 찿아나서거나 자신만의 그것을 가꾸어 나가는 것이다.
물량이 가장 많은 화요일인데 비가 억수같이 내린다. 다들 평소와는 다르게 레일 곁 분위기가 차분히 가라앉았다.
택배기사는 바람에 내맡긴 돛단배처럼 비가 오든, 태풍이 불든 상황에 몸을 내맡기고 배송한다. 체념반 습관반의 무념무상한 상태로 택배박스를 움켜쥐고 빗속을 내달린다. 몸을 덮으려 착용한 우비는 너무 덥고 행동을 더디게 한다. 우비를 벗어서 택배박스에게 양보하고 비를 맞으며 배송한다. 비를 맞으며 배송한 그다음 날 오한과 감기몸살로 고생한 적이 있어 체온을 유지시켜 줄 레시가드를 챙겨 입는 기지를 발휘하지만 빗속에 맨 몸뚱이로 달려야 하는 것은 택배기사의 피할 수 없는 숙명이다.
장마철에는 옥수수, 양파 등 채소들을 담은 박스는 겉은 빗물에 젖고 박스 안은 채소들이 뿜어내는 열기와 습기로 인해 쉽게 찢어지거나 터져나간다. 쏟아지는 장대빗속에 터진 박스를 수습해서 재포장하고 배송하다 보면 평상시보다 배는 더 힘들다. 먹고살려고 택배를 했는데 무겁디 무거운 먹거리 농산물박스와 죽도록 씨름하며 살아가야 하는 현실이 인식되는 순간 갑자기 우울해진다. 장마철에는 택배박스는 비에 젖고, 택배기사는 우울감에 젖어들어서 마냥 힘들기만 하다.
하지만 삶이란 나이가 들수록 쉽게 포기할 수 없게 만들었다. 내 얼굴빛이 조금이라도 어두워지면 금세 근심스레 살피는 아내와 아들 때문에 난 마음껏 좌절할 수도 없다. 죽음을 앞둔 뫼르소처럼 평정심을 되찾게 해주는 그런 저녁을 꿈꾼다. 그때에는 먹고살기 위한 무거운 택배박스와의 힘겨운 싸움도 끝이 나리라.
이른 새벽에 창밖으로 비치는 동트는 파르스름한 하늘을 보면서 나와 가족이 견뎌내고 있는 현실의 의미를 깨달았다.
우리는 자유로운 이방인을 꿈꾸며 우리만의 정원을 가꾸고 만들려 애쓰는 중이다. 그때와 그 시기를 알 수는 없지만 우리들만의 정원 속에 나날이 풍성하게 맺힐 결실을 꿈꾸며 우리는 지금 우리의 정원을 열심히 가꾸고 일구며 저항하며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고는 이내 마음이 평온해졌다.
Ps. 아들은 <메멘토 모리>를 염두에 둔 해골을 앨범재킷으로 삼았나 보다. 아들 역시 나만큼 치열하게 우리의 정원을 일군다는 사실을 <Tree>를 들으며 뒤늦게 깨달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