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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니삼촌 Oct 20. 2023

003. 구독경제 플랫폼에서 글쓰기.

<돈으로 살수 없는 것들./마이클 샌델.>

새벽 다섯 시에 일어나는 일은 늘 고역스럽다.

식사 후 커피 한잔으로 잠시 마음을 달랜다.

하지만 상품들이 쏟아지는 레일 앞에 서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생기가 되살아난다.


택배든 뭐든 돈 버는 일은 그리 유쾌하지 못하다.

 

30년 가까이 크고 작은 직장에서 근무하는 동안 늘 '해고'나 '실직'의 두려운 그늘에서 벗어나지 못했던 것 같다. 연초마다 경영진들로부터 올해 수주전망이나 경기가 불안하니 경각심을 가지자는 말만 들어왔던 것 같다.

     

택배를 하는 지금도 마찬가지다. 늘 배송률, 본사 지시사항 등에 대한 실적이 저조하면 계약연장이 안될 수 있다는 위협적인 전달사항을 듣곤 한다. 라우트 폐쇄, 구역 회수 등은 택배기사의 미래가 안정적이지 않다는 사실을 늘 일깨워준다.  

  

돈 버는 일터에서의 '해고'란 늘 죽음 같은 두려움이고 경영상 최고의 위협적인 무기가 된다.

 

이태겸 감독이 만든 영화 <나는 나를 해고하지 않는다.>(유다인, 오정세 주연)가 생각난다.

KT본사 정직원인 정은(유다인 분)은 권고사직을 거부해서 지방하청업체로 전보발령 당한다. 송전철탑을 타야 하는 일이지만 일 년을 버티면 다시 본사로 복귀하리라는 정은과 하청업체 직원들 간에 충돌이 생긴다.


유일하게 그녀를 도와주던 막내(오정세 분)가 말한다.

"송전공은 감전으로 한번 죽고 떨어져서 두 번 죽어요. 하지만 사람들에게 죽음보다 더 무서운 건 해고예요."


그녀는 해고를 당하지 않으려 송전탑을 타는 현장에 왔지만 이곳에는 죽음도 불사하고 사는 사람들이 있었다. 돈을 벌기 위해서 사람들 시야를 벗어난 높디높은 고공 송전탑에서 죽음도 불사하고 버티는 모진 상황이 늘 일어나고 있는 현실이다.


브런치에서 글쓰기를 경영하듯 하라는 글을 읽었다. 구독자수를 늘리는 현실적 조언이었고 '구독경제'로 흘러가는 분위기에 적합해 보여 충분히 수긍이 되었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경영이라는 의미는 모질고 힘겹다는 의미로 와닿는다.

경영은 늘 신경을 곤두세워야 한다. 수시로 변하는 주변환경의 반응에 즉각 대처해야 하는 상황이다.


삼사십 명의 직원을 두고 회사를 지속적으로 성장시켜 온 사장과 저녁을 함께 한 적이 있었다. 그는 사업을 하는 동안 자신은 늘 고객사에게 초점이 맞춰진 삶을 살았다고 했다. 가족과 저녁을 먹다가도 고객사의 연락을 받으면 숟가락을 내려놓고 달려가야 했다고 한다. 비록  힘겹지만  작은 회사 지금까지 버텨오게 했다며 앞으로도 자신은 그럴 각오로 경영임한다고 했다.

     

아들이 집 근처에 생긴 BHC치킨을 갔다 와서 놀랍다는 듯이 말을 했다. 직원은 주방에서 치킨을 튀기고 여사장이 오토바이를 타고 배달하고 서빙하며 참 열심히 살더라며 감탄한다.

 

사장의 경영에는 자신의 삶이 없다. 자신의 전부를 갈아 넣어서 주변의 요구와 변화에 맞출 수 있어야 한다.


글쓰기가 그럴 필요가 있을까.

나에겐 경영의 수고스러움은 택배로 족하다.




스타트 업에 관심이 많다. 왜냐하면 돈을 버는 모습에서 역동적이고 진취적인 생동감이 느껴지기 때문이다. 오래전부터 구독경제 스타트업 '와이즐리'를 즐겁게 지켜보고 있다.


처음에는 면도기를 주로 취급했는데 지금은 건강식품, 일상생활용품까지 영역을 크게 확장시켰다. 원가를 공개하는 가격의 정직함, 그리고 지속적인 가격인하 정책을 유지하는 창업주들의 경영방식이 참 신선하고 도전적이라 줄곧 상품들을 애용하고 있다.

 

최근 들어 쿠팡처럼 유료구독자 가입을 요청해 왔다. 유료구독자가 되면 전제품을 노마진원가로 구매할 수 있다고 한다. 유료구독자의 확보가 단순히 상품을 파는 것보다 이익이 되나 보다.

  

확보된 유료구독자들을 바탕으로 거대한 공룡기업들을 위협하는 쿠팡의 모습을 보니 이해는 된다. 그래서일까 브런치도 이러한 구독경제의 흐름을 타는 것일까.


구독경제를 대하면 늘 마음 한구석에 불편함을 느끼곤 한다.

구독경제 : 정기적으로 비용을 지불하고 제품이나 서비스 따위를 사용하는 경제 활동 방식.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에서 마이클 샌델교수는 이 사회에는 돈으로 구매할 수 있는 것과 없는 것이 존재한다고 주장한다.


인간의 삶 속에서 나타나는 좋은 것들이 상품화될 때 변질되거나 저평가된다는 것이다.  마치, 어린이집 부모들이 늦게 아이를 데리러 오면 부과하는 벌금을 요금으로 인식하는 순간 미안한 마음이 사라지는 것처럼 말이다.


<돈의 잠식효과>이다. 내적으로 가치 있다고 생각하는 활동에 참여하는 사람에게 돈을 지급하면 그들의 내재적 흥미나 헌신을 밀어내거나 그 가치를 떨어뜨려 동기유발을 약화시킬지 모르기 때문이다.




이 땅 위에 살아가는 모든 존재들은 한 가지, 꼭 같은 일을 한다.

각자의 안에 살고 있는 존재를 나눠주며 자신을 말하고 또 쓴다.


삶이란 관계 맺음이지 역할을 수행하는 것이 아니다.

글을 쓰는 동안에는 모든 역할에서 자유스러워진다. 자신을 말하고 또 쓰며 존재를 나눠주는 과정에 돈이 과연 필요한 걸까? 하는 의문이, 불편함이 든다.


돈을 벌기 위해 경영하고 수고하는 세상과 삶의 놀이가 되고 영감을 다듬고 야생성을 회복하는 스크래처 같은 공간은 자연스레 구분되어야 하지 않을까.

 

모든 것을 사고팔 수 있는 브런치에 글을 읽고 쓰고 싶은가?


아니면 돈으로 살 수 없는 도덕적 시민적 영감이 존재하는 브런치에서 읽고 쓰고 싶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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