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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니삼촌 May 14. 2023

001. 사람은 너무나 이기적인 존재이다.

도덕감정론 1

여느 날보다 일찍 택배를 마친 늦은 오후에 산책을 나섰다. 어둠이 서서히 내려앉는 하늘은 마냥 좋아하는 코발트블루로 변해갔다.


힘겨운 노동 후에 누리는 자유로운 이 순간이 한없이 편안하고 감미롭다. 산책길 모퉁이의 가로등은 하나씩 켜지고 주위는 고요해졌다. 홀로 걷는 쓸쓸함과 이름 모를 산새의 정겨운 울음소리가 어우러지며 원두커피처럼 씁쓸하지만 구수하게 가슴을 시원하게 씻기 운다.

살기 위해 일하는 것인지 일하기 위해 사는 것인지 모를 정도로 하루를 살아내지만 우리의 머리 위로 새하얗게 서리가 내려앉는 순간에야 비로소 이런 삶의 굴레에서 풀어줄 심산인 인생은 참 잔인하기만 하다.


이번주 들어서 며칠간 배송물량이 늘어나면서 가족들이 힘들었다. 하지만 이런 육체의 고단함도 사업실패 후 겪어야 했던 힘들었던 과거의 기억들을 떠올리면 이내 감사하게 역전되는 상황이 우습고도 서글프다.




내 삶이 힘겹게 헤쳐나가는 자본주의 경제체제를 만들었고 '자본주의의 아버지'로 불리는 애덤 스미스가 쓴 <도덕감정론>을 집어든 건 의외의 호기심 때문이다.       


자본주의를 추구하고 이기심을 키우는 데 일조한 애덤 스미스는 돈을 따르는 삶이 얼마나 헛된지에 대해 역설했다. 그리고 차가운 이성을 더 선호할 것 같은 경제학자가 <감정>이 지닌 의미를 깊이 있게 통찰했다. 잘 통제된 감정을 바탕으로 사람관계가 올바로 형성되며 이를 토대로 세워진 국가경제시스템이 정상적으로 작동한다고 설득한다.


그를 유명하게 만든 <국부론>보다  <도덕감정론>을 그가 죽는 순간까지 수정하며 가장 깊은 애착을 가진 저서로 여겼다는 사실 또한 의외로 와닿았다.


인생을 살면서 수많은 벽 앞에 멈춰 서야 하는 순간이 있었다. 그때마다 나를 심하게 아프게 하고 고통스럽게 만든 것은  그런 현실이 아니라 내 안의 일렁이는 감정들이었다.


자책감, 후회, 조급함, 분노, 모멸감, 원망, 절망감, 우울함, 슬픔.


내 안의 고삐 풀린 코끼리처럼 폭주하는 감정 앞에서 나 자신은 한없이 초라하고 무기력했다. 앞으로 내 인생의 행복여부는 감정을 어떻게 통제하느냐에 달려있음을 깨달았다.


인생은 끊임없는 선택의 연속이다.

그는 훌륭한 선택을 하기 위해서는 먼저 자신의 감정과 주변사람들을 이해해야 한다고 말한다.

인간이 아무리 이기적인 존재라고 하더라도 연민(pity)과 동정심(compassion) 같은 천성으로 인하여 타인의 운명에 관심을 가지게 되며 타인의 행복을 필요로 한다. 이것은 타인의 고통을 보거나 또는 그것을 아주 생생하게 느낄 때 우리가 느끼는 감정이다.


애덤 스미스는 <도덕감정론>의 첫 장에서 가장 먼저 인간은 이기적인 존재라고 말한다.


인간은 자신의 몸과 사고의 범위를 벗어날 수 없다는 태생적 한계를 지녔다. 이기심은 그것을 상징하는 감정이다. 그는 이기심을 인간의 근원적 감정이라고 규정했다. 여기서 그가 말한 이기심은 자기 자신 외에는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는 단순한 그런 의미가 아니다. 타인과 서로 원하는 것을 주고받는 관계 속에서 각자의 가슴속에 내재된 자기애를 의미한다.


마치 우리의 식탁 위에 올려지는 고기와 빵은 정육점과 빵가게주인이 베푼 관용 때문이 아니라 그저 그들의 이기적인 행위의 결과물일 뿐이다. 그는 이런 이기적인 사람들의 교역은 자본주의 경제를 격렬하게 작동하게 만드는 경쟁의 근원을 이룬다고 설명한다.  


사람은 자신과 상관없는 대상에겐 냉혹할 만큼 매정하다. 자신에게 이익이 되는 대상에게만 주목하는 인간은 모순이 가득한 부조리한 세상을 만들었다. 알베르토 까뮈는 부조리한 삶을 영위하기보다는 저항하기를 열망했고 니체는 새로운 창조를 위해 파괴하고 뒤엎으려고 했다.   




애덤 스미스는 그보다 현실적인 제안을 한다.

상상을 통해 고통을 받는 자와 입장을 바꿔봄으로써 우리는 고통을 받는 자가 느끼는 것을 느낄 수 있거나 또는 그가 느끼는 것에 의해 영향을 받을 수 있다.


이기적인 인간은 상상하는 능력을 통해서 다른 이와 공감하고 감정적 일체감을 경험하며 이타적인 존재로 변화할 수 있다는 것이다.  태생적으로 이기적인 인간은 타인을 이해하는 방식도 내 몸과 감정을 통해서 접근할 수밖에 없다. 고통스러운 상황에 처한 타인을 바라보며 내가 처한 입장으로 상상하며 그와 똑같은 감정을 생생하게 느끼며 공유하게 된다.


타인의 슬픔에 대해 우리가 공감하고 함께 느끼는 감정을 연민과 동정으로 표현한다. 그는 우리가 다른 사람과 일체적으로 느끼는 감정을 모두 모아서 '동감(同感, sympathy)'이라 정의한다.


동감은 단순히 지켜보는 것에서 생겨나는 감정인 연민이나 동정심과 다르다.


동감은 모종의 격정을 목격함으로써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 그 격정을 야기한 상황을 목격함으로써 발생한다.


동감은 고통을 받는 사람의 처한 상황을 정확히 이해를 하고 우리 자신을 그가 처한 동일한 상황에 놓였다고 상상했을 때 생겨난다. 상황에 대한 충분한 이해와 상상을 통해 생성되는 것이기에 동감은 단순한 감정이라기보다는 인간의 역지사지하는 능력으로 이해된다.  


애덤 스미스는 타인의 입장을 이해하고 상상하는 <관계하는 능력>을 상실한 인간은 광인(狂人)이 되는 것이며 이것은 가장 큰 재난이며 비참한 존재가 되는 것이라고 했다.


바이올린의 연주자가 미세한 감정을 손끝을 통해 현으로 온전히 전달하기 위해 손끝이 갈라지는 무수히 반복하는 연습은 인고의 과정이다. 신영복 선생은 변화는 가슴에서 시작되지만 인간관계는 발로 완성된다고 했다.


이기적인 너무나 이기적인 인간은 상상하고 이해하기를 포기한 채 상대의 이기심을 비난하고 미워하며 상처받고 힘겨워하며 하루 또 하루를 살아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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