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이 구역을 담당하던 타 택배사 부부가 어느 날인가부터 따로 차를 몰며 배송하길래 물어보니 성격이 안 맞아 '택배이혼'했단다.
아내와 나의 성향은 전혀 다르다.
그래서 우리는 서로를 '시소부부'라 부른다. 한쪽이 올라가면 다른 쪽은 늘 내려가있다. 성격상 공감하기 참 힘들다. 문제적 상황이 생기면 아내는 '안전'중심, 나는 '리스크'를 감당하더라도 과감히 '도전'중심의 선택을 선호한다. 늘 갈등이 생긴다. 결혼초 이런 아내의 성향을 이해할 수 없어 '에니어그램'강좌를 신청해 들었다.
사람은 성격적으로 아홉 종족으로 나뉜다고 한다. 아내와 나는 서로 부족이 달랐다. 이성적 아내와 감정적 남편. 화성인 남자와 금성인 여자. 서로 다른 두 사람이 지금까지 살아온 걸 되짚어보면 서로의 영역(회사와 집)을 잘 구분하고 상호침범하지 않았던 '상호불가침원칙'을 잘 준수한 성실함 때문 아닐까 추측해 본다.
서로 다른 우리가 어느 순간부터 24시간 같은 공간(특히 좁은 포터 안), 같은 전선에서 택배를 함께한다는 것은 이미 문제발생이 예견된 거다.
여자와 달리 남자는 '멀티플레이'가 잘 안 된다. 느리고 더듬 된다고, 운전이 왜 이리 험하냐는 타박이 다반사다. 참 여러 차례 고비를 넘기고 넘어가고 있다. 혼자보다 빨리 일을 끝낸다는 장점 한 가지 빼곤 감당해야 할 감정적 몰짐이 너무 커서 홀로 택배 하는 기사들이 부럽기까지 했다.
그런데 무엇보다 힘든 게 있었다.
부부가 함께 온전히 택배를 하려면 남편, 가장의 자존심과 권위를 포기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닫곤 참 많이 힘들었다.
가족에게서 나는 '금그릇'아니면 최소'은그릇'수준까지는 양보가능하다 생각했다. 그런 맹신에서 나오는 '카리스마'는 가족에게 상처를 주고 '부부팀워크'를 깨뜨리고 힘든 택배를 더 암울하게 했다.
부부택배는 나에게 금그릇, 은그릇이 아닌 '막사발'이 될 것을 요구했다.
막사발은 사용용도가 딱히 정해져 있지 않다.
국을 담으면 국사발, 밥을 담으면 밥사발, 반찬을 담으면 찬그릇,약을 담으면 약사발, 술을 담으면 술사발이 된다.
막사발의 장점은 첫째로 사용하는 이가 쓰고자 하는 의도대로 편히 쓸 수 있고 두 번째로 마구 사용해도 되는 만큼 부담감이 없다.
막사발은 누구나 부담감 없이 편하게 대해주는 것이 가장 큰 매력이다. 그런데 막사발은 푸대접을 받기에 요긴하게 쓰인다는 사실이 재미있다.
제대로 대접받는 것보다 삶의 본질에 더 집중하고 현실 속의 다양한 관계 속에 주어지는 요구들에 잘 대응해 내는 막사발 같은 역할은 지혜 없이는 불가능하다.
부부택배를 하며 <막사발수업>을 뒤늦게 힘들게 받는 중이다. 부부택배를 생각하신다면 미리 선행학습을 하실 것을 권한다.
아내와 택배를 같이 하며 자연스레 서로 많은 대화를 나눴다. 거의 아내가 말하고 나는 듣는 편이지만 어린 시절, 청소년기, 청년기, 결혼초기의 아내고충을 듣다 보니 저절로 공감되고 측은한 감정이 생겨났다. 서로 들어주는 것에서 강한 연대감이 생겨났다. 가정에서 중간에 끼인 둘째인 아내는 늘 본인감정을 억누르고 숨기는 것에 익숙했다. 측은함에 아내에게 이젠 참고 살지 말라고 했다. 다음날 택배박스가 얼굴로 날아오는 부작용이 있었지만 한결 가까워짐을 느꼈다. 부부는 같은 눈높이와 같은 방향을 바라볼 때 서로 큰 힘과 시너지가 된다.
나 스스로 막사발로 자처하는 겸손함이 사라지는 순간 부부택배도 없다. 이래서 택배는 힘들다. 하지만, 고맙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