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객이 '내가 원하는 걸 가져와. 지금 당장!'이라고 말하는 것이고 물류는 그것을 실제로 가져다주는 것이죠. <우버 CEO 트레빅스 캘러닉 / 블룸버그인터뷰>
조금이라도 더 빨리 물건을 받으려는 소비자들의 조바심을 충족시키려 택배시장은 '당일배송 보장', '새벽배송', '주문 후 3시간, 5시간 내 배송' 등 각종 배송속도 경쟁으로 한층 더 가열되고 있다. 'AI'와 로봇의 눈부신 발전과 '드론' 등 다양한 첨단 배송수단들의 출현으로 배송시스템 역시 대량배송을 위해 점차 무인화, 기계화로 부지런히 탈바꿈하려는 중이다.
소비에 대한 욕망과 소유의 간격 차이는 <마우스클릭>을 한번 누를 만큼 좁혀져 간다. 물질만능과 소비지향을 향해 폭주하는 흐름 속에서 택배기사는 소비전쟁의 최전선(라스트마일)에서 언제 대체될지도 모르는 소모품 처지가 되어 위태롭게 서있다. 누군가는 끊임없이 갈망하듯 욕망을 가져야만 하고 다른 누군가는 그것을 해소시키기 위해 소모되어야 하는 소비경제의 실상이 겉은 화려해 보일지 모르지만 참 비인간적이고 잔인하기만 하다.
하지만 우리는 오늘도 어김없이 새벽 녘에 택배길에 올랐다.
"우리 잘살고 있는 거 맞지?" 어디로 향하는지 모를 정도로 택배에 파묻혀 지내다 보면 때로는 마음 한편이 아려오면서 갈증이 생겨난다. 그럴 때면 곁에 있는 아내에게 뜬금없는 질문을 건넨다. 무심히 차창만 응시하던 아내는 자신도 잘 모르겠다며 희미하게 대답한다.
그렇게 우리는 긴 침묵 속에 미궁 속을 헤엄쳐가듯 일터로 향했다.
평상시에는 늘 못 본 척 지나치던 소장이 "형수, 지난달 대리점에서 배송으로 일등 먹었네요." 하며 아내에게 한마디 툭 던지고 간다. 배송 1위를 했다는 사실은 그동안 우리의 수고에 대한 긍정적인 피드백 같아서 흐뭇해졌다. 아내의 표정을 보니 나와 같은가 보다.
대리점에 처음 들어오는 신참들이 의례적으로 거쳐가는 구역들이 있다. 대부분 수입은 적으면서 배송하기는 힘든 구역들이다. 쏟아지는 커다란 몰짐을 정신없이 받고 있는데 그런 내 모습을 보면서 전임자였던 젊은 택배기사들이 서로 쳐다보며 빙그레 웃던 모습이 아직도 생각이 난다.
남들이 외면하는 구역이지만 지금까지 견디면서 추가로 나오는 구역들은 거절 않고 꾸준하게 받아왔다. 큰 몰짐이 많이 나오는 날이나 탑차가 기울 만큼 무거운 절임배추가 쏟아지는 김장철에는 도망가고 싶을 정도로 힘들었지만 우리는 함께 견뎌냈다.
세상에는 수고하는 만큼 대가가 따르는 정직한 일이 불행하게도 그리 많지 않다. 택배는 많이 힘들지만 세상 속에서 몇 안 되는 정직한 일 중에 하나가 아닐까 생각한다. 지켜지지 않는 월급날, 불안한 회사의 미래, 다가오는 정년에 대한 두려움이 상대적으로 덜하기 때문이다.
오직 육체적 피로와 몇몇 유별난 고객의 갑질, 곱지 않은 주변의 시선 정도를 빼고는 일한 만큼 보상이 되돌아오는 지극히 단순할 정도로 정직한 일이라 생각한다. 일이 년이라는 인내가 필요한 마중물 같은 시간들이 요구되지만 그 시기만 잘 적응하고 견디면 안정되게 생활을 유지할 수 있어 만족한다.
배송 1위를 했다는 만족감도 잠시, 그동안 많이 벌었겠구나 하는 주변의 시선이 느껴지면서 이내 불편해졌다. 현실은 통장에 들어오는 수입은 많으면 많은 대로 적으면 적은 대로 늘 부족했다. 대출로 집을 사고 각종 공과금 등을 부담하는 것을 전제했을 때, 저축하고 여유 있게 소비하기는 힘들거라 예상은 했었다. 하지만 많은 월급이라도 입금됨과 동시에 신기루처럼 사라져 버리는 현실 앞에선 허탈하고 허무해지는 마음이 드는 건 어쩔 수가 없다.
갑자기 S가 생각났다. 우리가 대리점을 옮긴 후 적은 물량으로 힘들었던 시기에 그는 우리 대리점에서 가장 많은 물량을 배송하고 있었다. 그가 부러웠다. 많이 버는데 늘 남는 게 없다던 그의 말은 엄살처럼 여겨져 믿지 않았다. 쿠팡이 매정하게 물량을 걷어가기로 한 시기에 S는 쿠팡으로 이직을 하기로 결정했다. 그도, 쿠팡물량도 홀연히 사라진 아파트를 넘겨받아서 배송을 하게 되었다. 막상 S가 서있던 그 위치에 서고 보니 우리는 그가 한 말이 사실이었음을 깨닫게 되었다. 많이 벌수록 남는 건 없고 더 많이 필요한 상황만 자꾸 발생했다.
<히라카와 가쓰미>는 그의 저서 '소비를 그만두다'에서 우리는 소비를 조장하는 사회를 살아간다고 했다. 이런 소비를 조장하는 풍조는 기업과 시장이 주도한다. 광고를 통해 엘리베이터의 닫힌 공간과 개인적인 스마트폰 공간까지 집요하게 파고들며 소비를 향한 우리의 욕망을 끊임없이 자극해 댄다. 소비를 해야만 행복하고 가치 있는 존재가 된다고 세뇌당하며 살아간다. 그는 그런 삶의 대가는 빚을 지고 그것에 얽매여 살아가는 삶이라고 했다. 레버리지(빚)를 잘 활용하는 것이 현대를 살아가는 현명한 지혜라며 정부조차 빚을 지라고 권유한다. 지금 소비하려고 꿈틀대는 내 욕망의 절반은 스스로가 선택했고 나머지는 기업과 시장이 세뇌시켜 선택하게 만든 결과물이다.
소비행태가 변하지 않은 채 수입만 늘린다는 건 밑 빠진 독에 물 붓는 형국이다.
소비를 줄이려고 시도할 때마다 부딪치는 한계가 있다. 음악과 영화를 좋아하기에 가지고 싶었던 '마샬워번 스피커', 대형 TV를 마음에서 지워내고 아기자기하게 서재를 꾸미고 싶은 마음도 미뤄냈지만 힘들게 늦게까지 택배를 하고 돌아오는 날이면 가족이 함께 외식을 하거나 카페에서 아내와 함께하는 커피 등은 가뭄에 단비 같은 힐링의 순간이라 이마저도 줄여야 하는 리스트에 포함할지 여전히 망설여진다.
바쁜 택배를 하면서 엥겔지수와 관련된 소비 이외에는 자의 반 타의 반으로 할 수가 없지만 기존의 소비습관은 아직 고스란히 남아 있어 간혹 소비욕구가 발동되어 충족하지 못하는 상황에 처하면 괜히 도태된 듯한 불행감이 생겨났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매스컴 속 각종 상품광고 등에 많이 노출되거나, 인간관계에서 스트레스를 받을 때 소비자극이 더 커지는 것 같다.
현대인의 과잉소비는 과잉스트레스에서 오는 공허감을 메우기 위한 <대상행동>이라는 말이 깊이 공감된다. 이미 소비에 물들어 버린 상태라 소비를 끊어내는 결단이 그리 쉽지가 않다. 하지만 변화하지 않으면 수입의 많고 적음에 상관없이 늘 부족하게 지내게 될 것이라는 사실은 분명했다. 어떤 소비가 현명한 소비인지에 대한 고민에 빠졌다.
소로우는 월든호숫가 인근에 사는 사람들을 구경하다가 이상한 점을 발견한다.
그들은 불멸의 영혼을 가지고 있지만 물려받은 토지와 목장 등 유산들을 지키느라 힘든 인생의 길을 걷고 있었다. 소로우는 사람들이 자유로운 이 땅에 살지만 대부분은 부질없는 근심과 과도한 노동에 몸과 마음을 빼앗겨 인생의 아름다운 열매를 즐기지 못하는 사실이 안타까웠다.
돈을 벌려고 너무나 무리를 한 결과 인간에게 주어진 신성(神性)을 상실한 채 병이 들고 말 것이기 때문이다. 뼈가 될만한 성분이 하나도 없어 채소만 먹고는 살 수 없다며 자기 몸에 뼈 성분을 공급해 줄 원료를 생산하느라 꼬박꼬박 하루의 일부분을 바치는 농부처럼 살지 않으려면 인간생활에서 꼭 필요한 '생활필수품'을 구분할 수 있는 혜안(慧眼)이 필요하다.
하지만 우리가 아무리 신중하게 선택을 해도 상당수의 상품들이 사치품처럼 꼭 필요하지 않은 물건들이 포함되었음을 알게 된다. 우리는 세상사람들이 존경하는 무엇인가를 더 염두에 둔 채 소비를 한다. 그리고 우리 스스로가 사람이 지닌 옷과 재산을 보고 판단하는 문명 속에 살고 있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누구나 '가지고 할' 그 무엇을 찾는 것이 아니라 차라리 자기가 '되어야 할' 그 무엇을 찾고 있는 것이다.
소로우는 월든호숫가 숲 속에서의 2년 동안의 경험에서 배운 것은, 첫째로는 이처럼 외딴곳에서도 사람이 필요한 식량을 얻는 데에는 믿을 수 없을 만큼 적은 노력밖에 들지 않았다는 점과, 둘째로는 사람이 동물처럼 단순한 식사를 하더라도 체력과 건강을 유지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콩밭에서 캐낸 '쇠비름'을 끓여서 소금을 친 것만 가지고도 충분히 만족스러운 식사가 가능했다. 소로우는 단순한 경제적 관점에서의 절제를 주장하는 것이 아니었다. 빵을 직접 만드는 과정에서 맛있게 만드는 요령을 터득하고 구워내는 과정의 즐거움을 알리려고 했다. 그렇게 직접 만든 빵들은 스스로가 성숙시킨 진정한 '곡식의 과일'로 변신하여 다른 고귀한 과일들 못지않은 향기를 지녔다고 했다. 그 향기를 가급적 오래 보전하기 위하여 그는 빵들을 헝겊에 싸서 소중하게 보관했다.
내가 무엇보다 소중하게 여기는 것은 얽매임이 없는 자유이고 경제적으로 풍족하지 않더라도 나는 행복하게 살아나갈 수 있으므로 값비싼 양탄자나 다른 호화로운 가구들, 맛있는 요리, 또는 새로운 양식의 고급 주택 등을 살 돈을 마련하는 데에 내 시간을 허비하고 싶지 않다.
소로우에게는 다음과 같은 확신이 있었다. 우리가 소박하고 현명하게 생활한다면 이 세상에서 생계를 유지하는 것은 힘든 일이 아니라 오히려 즐거운 일이라는 것을. 땀을 쉽게 흘리는 사람이 아니라면 구태여 이마에 땀을 흐려가며 밥벌이를 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자연처럼 소박하고 건강하게 살아가자고 권했다.
중년에 택배로 전업하면서 일을 바라보는 시각이 바뀌었다. 많이 일하고 많이 벌어가는 방식보다 스스로 할 수 있는 만큼만 일을 하면서 꾸준하게 늘려가는 것이 더 현명하다는 사실을 체감했다. 많이 할수록 많이 번다고 무리하며 욕심내다가는 금방 몸이 망가져 택배현장을 떠나거나 병원치료를 받는 모습들을 곁에서 지켜보며 물 한 방울이 모이고 모여 옹달샘이 되고 강물이 된다는 사실이 진부하지만 진리라는 사실을 택배일을 하면서 새삼 절실하게 깨달았다.
가족과 함께 택배를 끝내고 돌아와 서재에서 책을 읽고 음악을 들으며 이렇게 글을 쓰는 동안 옆방에선 막내 녀석의 낄낄거리는 웃음소리와 아내가 몰입해서 시청하는 거실의 TV드라마 소리가 간간이 들려오는 이 순간이 마냥 행복하고 기분이 좋다.
보잘것없는 평범한 일상이지만 이 모든 게 내가 살아가는 이유이고 감사히 지키고 싶은 행복의 실체라는 생각이 더욱 선명해진다. 무조건 많이 벌려고 했던 과거와 달리 돈을 벌어야 하는 이유와 의미가 분명해졌다.
레일 위로 전날 홈쇼핑에서 방송했던 상품들이 무수하게 흘러간다.
날마다 방송매체에 자극받아 사람들은 소비하고 다시 반품하는 소비행태를 번복하며 살아간다. 택배기사인 나는 그런 소비욕망이 소용돌이치는 최전선에 서서 위태롭게 땀 흘리며 살아간다. 소비사회는 택배기사인 나를 <소비욕구 해소>를 위한 소모품처럼 여기더라도 나는 나만의 소중한 존재가치를 저항하며 지켜내고 싶다. 소비를 거부한다는 것은 사회에서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소비를 조장하려는 외부의 시도를 내 삶에서 차단시키고 나만의 인생을 온전히 누리며 자유롭게 살고자 저항하는 것이다. 현명하게 소비한다는 것은 외면할 수 없는 내 인생의 또 다른 숙명적인 과제가 되었다.
아들은 남의 말과 늘 눈앞에 써져 있는 표지판을 볼 때마다 반하는 자유로운 삶을 외치듯 노래한다. 인생은 눈앞에 차려진 뷔페 같다. 스스로 먹고 싶은 것을 골라먹는 자유를 잃어버릴 필요는 없다. 이 새벽에 난 아들의 랩과 함께 다시 일상의 소용돌이 속으로 들어갈 준비를 한다. 기꺼이 '악'으로 '깡'으로 말이다.
힙합이야기. 핫네이버후드의 <LIVING MY LIF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