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고 마시고 택배 하다.

by 코나페소아

무엇인가를 시도하려는 순간마다 의지력은 반드시 필요하다. 의지력은 정신적으로 에너지를 소모하는 행위이다. 의지력, 즉 두뇌를 많이 쓸수록 혈당수치가 현저히 떨어졌다는 의학적 실험결과가 있다. 결국 의지력도 소모성이라는 의미인데, 그래서일까. 사람의 의지가 늘 한결같을 수 없었나 보다. 의지력을 회복시키는 것은 음식이다. 우리가 늘 먹는 행위에 집착하는 이유는 있었다. 개인적으로 의지가 에너지를 소모한다는 사실보다 '먹는다'라는 행위 속에 단순히 음식을 섭취하는 것 이외에 정신적인 재충전이라는 의미도 포함된다는 사실이 더 놀랍게 와닿는다.




먹는다

택배를 하기 전에 우리 부부는 종종 지하철노선을 따라 소박한 맛집투어를 즐겼다. 서로의 대화에 집중하고, 곁을 오가는 사람들의 모습과 거리의 풍경을 여유롭게 구경하다가 맛있는 한 끼의 식사를 즐길 작정이었다.

또한 부족한 운동량을 걸음으로 충족시키려는 나름 건강한 의도도 있었다. 다행히 음식이 만족스럽고 에피소드가 있는 상황을 경험하는 날이면 아주 만족하고 행복했다. 최대한 여유 속에 음식을 즐기는 순간들이었다.


하지만 택배를 하는 중에는 식사시간을 여유롭게 가질 수가 없다. 대부분의 택배기사는 배송 중에는 식사를 하지 않는다. 시간에 쫏기기도 하지만 배송리듬이 끊겼다가 다시 시작할 때 더 힘들다는 점 등으로 식사를 거른 채 배송을 한다. 새벽에 일찍 나와 레일 앞에 서는 순간부터 배송이 끝나는 시간까지 공식적인 휴식시간은 없다. 물량이 많은 화요일 같은 경우에는 레일이 돌아가는 중에 컵라면이나 빵등으로 간편하게 먹는다.


택배초기에는 물건을 받아내는 와중에 식사를 한다는 건 엄두가 나지 않았고 음식도 넘어가지 않았다. 하지만 물량이 많은 날에는 따로 점심시간을 가지기도 어려울 수가 있어 신속한 배송을 위해 까데기(상품하차와 적재) 시간에 짬짬이 먹어둔다.


일을 도우러 나오는 아들이 급히 나오느라 아침을 먹지도 않고 나오면 맘이 편하지 않다. 편의점에 들러 아들이 좋아할 만한 도시락이나 컵라면류, 햄버거 등을 고른다. 아내와 아들이 배송을 하는 동안 점심준비는 내 몫이다. 아들과 아내가 좋아할 만한 점심거리를 선택하고 전자레인지에 데우거나 뜨거운 물을 담아 준비해서 탑차로 가지고 온다. 잠시 마음에 점찍듯 간단한 점심식사를 하지만 배송하고 온 아내와 아들이 맛있다며 먹을 땐 괜히 기분이 흐뭇해지곤 했다.


우리가 배송하는 아파트단지에는 매주 화요일에 장이 들어선다. 편의점 음식이 질릴만하면 고기만두, 야채만두, 잔치국수를 사 와서 가족들과 함께 나누어 먹는다. 택배를 하면서 자연스레 내 차지가 된 식사당번이지만 전혀 번거롭거나 싫지 않다. 비록 편의점에서 사 오는 것이지만 가족 각각의 식기호를 알 수 있고 선택한 메뉴에 대한 가족의 반응을 살펴보는 것 또한 소소한 즐거움이다.


아내가 말하기도 했지만 일하고 먹는 맛과 집에서 쉴 때 먹는 음식맛이 다른 것 같다. 음식 맛과 일과의 사이에는 깊은 연관성이 있을 거라고 우리는 강하게 추측한다. 힘든 배송을 마친 후 저녁식사는 가급적 잘 차려 먹거나 가끔씩은 풍성한 외식을 하고 들어간다. 택배는 육체노동이기에 육류 섭취는 필수적이다. 집에서 고기를 구워 먹거나 외식으로 추어탕, 삼계탕 등으로 몸보신을 하기도 한다.




마시다

스타벅스, 투썸 등 카페를 우리 부부는 참 좋아한다. 아마 커피나 조각케이크의 특색 있는 맛, 향기도 좋지만 이런 분위기 속에서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는 자체가 힐링이고 휴식이 된다.


대화주제는 아이들이 어릴 땐 진로문제, 양육갈등이 주였다면 지금은 다른 사람, 드라마, 경제 등등 특별할 것 없는 주제로 나름 서로의 속생각을 자연스레 나누는 그 자체가 좋았다. 택배 하는 지금은 자주는 아니지만 휴일 한 번씩 집 근처 카페에 나가거나 집에서 커피를 마시며 대화를 나눈다. 그런데 커피가 맛있는 또 다른 순간을 경험했다.


힘든 배송 중에 마시는 믹스커피 한잔의 달달함이 어찌나 큰 위로가 되는지를 말이다. 때로는 짠한 마음에 때로는 애처로운 느낌에 아무 말 없이 주고받은 종이컵 한잔에도 지친 심신이 위로받는 이 충분함의 정체는 도대체 뭘까.




택배 하다

택배를 하며 우리 가족의 일상이 참 많이 바뀌었다. 우리가 아들과 택배를 주제로 같이 웃고 떠들고, 같이 공분하고 식사하고, 함께 일한다.


사회적으로 열등할 수 있는 음식과 커피이지만 가족 간 충분한 교감과 공감이 함께 한다면 잠시의 식사시간과 믹스커피로도 지친 심신에 활기찬 생기를 불어넣기에 충분했다.


택배 하기 이전과 이후의 큰 차이는 음식과 커피의 질은 단순하게 밀키트와 믹스커피로 대체되었지만 소비적인 먹고 마시기에서 생산적인 먹고 마시기로 바뀌었다고나 할까. 택배를 하면서 소비적인 시간을 못 내는 상황도 한몫하지만 여하튼 미래를 향한 의지와 열망은 더욱 강해진 느낌이다.


먼 훗날 우리가 어떤 모습으로 어떻게 이 순간을 그리고 회상하게 될지는 알 수 없지만 분명 짠하게 와닿고 의미 있었던 순간이라고 웃으며 서로 대화나누리라 생각한다. 오늘 우리는 함께 먹고 마시는 와중에 험난한 세상을 헤치고 나가게 해 줄 의지력이 새롭게 재충전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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