택배기사에게 글이란?

기적이 일어나기 2초 전.

by 코나페소아

스무 살짜리 '줄리'는 슈퍼마켓 계산원이다. 그녀에게는 세 살 난 아들이 있어 생계를 책임져야 한다.


먹고살기 위해 어떻게 하든 비위를 맞추며 살아내야 했다. 하지만 그녀는 자신이 '계산원'에 불과하다는 현실을 철저하게 인식시켜 주는 사람들로 인해 고통을 받았다.


그들에게서 자신을 보호하고 지켜내려 애썼다. 맞대응하거나 때론 침묵하기도 했다. 그러면서 자신에게 모질게 대하는 인생들에게 통쾌하게 복수할 꿈을 꾸기도 다. 간혹 그녀에게 친절하게 대하는 이들도 있었지만 경계심만 앞설 뿐이다.

그런 그녀가 어느 날 계산대 앞에서 눈물을 흘릴 수밖에 없었다. 자동차 구동벨트가 끊어져 지각하고 밀린 집세에 대한 집주인의 독촉과 마트에서는 돈을 횡령했다는 누명까지 쓰는 등 동시다발적으로 들이치는 연이은 불행들 앞에서 허우적거리는 자신의 처지가 너무나 서러웠다.


그런 그녀의 모습을 우연히 보게 된 '폴'은 사연이 궁금해졌고 동정심이 생겨났다. 그는 평생을 자신과 자신의 일 외에는 무관심하게 살아온 쉰한 살의 항공엔지니어였다. 아내에게 버림받듯 이혼한 후 마트에서 혼자 장을 보면서 그동안 성가셨던 아내의 잔소리가 그리워지며 그녀의 빈자리를 느끼던 중이었다.




작가 '아녜스 르디그'는 상처 입은 여린 사람들이 서로 접촉하며 함께 돕는 과정들을 통해서 각자의 존재가치를 발견하게 된다고 믿었다.


별안간 들이치는 삶의 고통은 홀로 견디며 버티는 것 외에는 선택할 여지가 없다.


작가는 이런 불행한 상황들을 잘 버티는 방법으로 사람 간의 친밀감으로 단단하게 결속된 연대, 즉 새로운 의미의 <융합>을 제안한다.


서로를 향한 사소한 관심은 서로 간의 '융합'을 불러오는 계기가 되고 그것은 우리 삶에 닥친 힘겨운 상황들을 더 잘 견뎌낼 수 있게 하는 힘이 된다고 말한다.

작가는 아들을 백혈병으로 잃었다.


아들이 투병하는 동안 지인들에게 투병상황을 알리는 메일을 작성해서 보냈다. 매주 일요일마다 발송했던 이메일은 그녀에게 감정적 배출구가 되었고 다른 사람들에게는 위안을 주었다.


나아가 '글을 쓰고 싶다'라는 욕망이 움트는 계기가 되었다. 사랑하는 아들을 잃은 슬픔을 버텨내려 그녀는 글을 썼고 그녀의 글을 통해 많은 사람들은 감동과 위로를 얻었다.


그런 모습들을 보면서 인생은 살아내고 버텨내야 할 의미와 가치를 발견하게 하는 <융합>이 가진 선순환적인 힘을 느끼게 된다.


아랍속담에 인생의 매 순간은 새로운 기적이 탄생하는 2초 전이기에 결코 포기해서는 안된다는 말이 있다.


작가는 다르게 강조한다.


사람이 서로에게 관심을 가지고 감싸 안을 때가 바로 "기적이 일어나기 2초 전"과 같다고 말이다.



"사는 게 고역일 때가 있어요.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을 때가요."


소설 <기적이 일어나기 2초 전>에서 의사인 '제롬'은 줄리에게 오랫동안 쌓여있던 감정을 해변에서 쏟아내며 눈물을 흘리는 장면이 나온다.


줄리는 위로하는 과정에서 자신의 계산원이라는 직업이 너무나 고달프다고 여겨왔는데 의사 제롬의 고백을 통해 생명을 취급하는 극심한 스트레스를 이해하고는 자신의 직업도 그리 나쁘지 않다는 사실을 느끼게 된다.


위로하던 줄리는 자신이 처한 상황과 직업의 의미가 새롭게 와닿는 경험을 하게 된다.


문득, 오래전 방송에서 시청했던 조그만 만두가게 사장님의 사연이 생각난다.


그는 여덟 평 남짓한 가게에서 열심히 만두와 꽈배기를 만들어 판다. 그에게서 만두가게의 성공이란 돈을 많이 버는 것이 아니다.


만두가게가 성공한다는 것은 밀가루의 점도와 숙성도 그리고 반죽 시 느껴지는 감도 등을 충분히 잘 익혀서 능숙하게 맛있는 만두를 만드는 것 그리고 손님들을 잘 응대하는 것이다.


이는 그가 겪어왔던 인생역경을 통해서 얻게 된 깨달음 때문이다. 그의 지난 어린 시절은 지독한 가난, 친구들의 따돌림, 알코올중독자인 아버지의 습관적인 폭력으로 얼룩졌다.


견디다 못한 그는 가출을 했고 먹고살기 위해 배달일을 죽기 살기로 했다. 하지만 배움을 포기하지 않고 틈틈이 검정고시를 준비했다.


검정고시 합격, 결혼, 그리고 조그만 가게도 하는 기쁨이 찾아왔다. 그러나 기쁨도 잠시, 부모님의 죽음, 형의 투옥, 가게실패로 이어지는 연이은 불행에 결국 그는 자살을 시도하지만 실패한다.


잠시도 되뇌기 싫은 자신의 과거를 돌아보다가 만두가 새삼 자신의 인생과 많이 닮아 있음을 발견한다.


여러 가지 재료들이 으깨지고 다져져서 만두소가 되고 그것을 만두피가 오롯하게 감싸 안을 때에야 비로소 만두가 완성된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이다.


그런 만두가 자신에게 위로가 되었다. 그때부터 그에게 만두를 만드는 일이 행복해지고 감사해졌다. (kbs 강연 100도씨 중에서)



택배를 하면서 '사는 게 고역처럼 여겨지는 순간'마다 <택배기사소통 카페>에 글을 써서 올렸다.


아무런 생각 없이 쓴 글들에 달리는 택배기사들의 수많은 댓글들을 보면서 위로를 받았다. 나처럼 힘겨워하고 외로워하는 이들이 많다는 사실과 위로를 받았다는 댓글들은 내속에 떨리는 감동으로 와닿았다.


얼굴도 이름도 알지 못하는 수많은 이들의 관심과 응원들이 오랫동안 중단한 채, 엄두도 내지 못했던 나를 재촉하듯 다시 책을 잡게 하고 글을 쓰게 했다.


작은 관심과 응원의 힘이 가공할 힘을 가졌다는 작가 '아녜스 르디그'의 말을 나는 이제 부인할 수가 없어졌다.


브런치 구독자수도, 출판사의 출판 제안도, 구독자의 후원도, 글 쓰는 나에게 가장 소중한 의미가 될 수는 없다.


만두가 자신과 꼭 닮았다는 사실을 깨달은 만두가게 사장님처럼, 돈보다 가치 있는 가족의 의미를, 삶의 빛나는 많은 것들을 발견하게 해 준 나의 택배인생을 고스란히 녹여내고 차곡차곡 담아낸 나와 꼭 닮은 글들을 쓰고 싶을 뿐이다.


글은 인생을, 삶을 앞지를 수 없다.


그저 그것들을 고스란히 담아내는 막그릇일 뿐이라고 믿는다.


바람이 있다면 그 속에 담기울 맹물 같은 내 삶들이, 뜨거운 땡볕이 내리쬐는 인생거리를 오가는 수많은 사람들 중 누군가의 갈증을 덜어내는 시원한 냉수가 되었으면 할 뿐이다.


어쩌면 글을 통한 새로운 <융합>이 일어나는 또 다른 <기적>을 은근슬쩍 기대하는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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