택배기사에게 행복이란?

by 코나페소아

한 달간 힘겹게 했던 장마철이 지나간다. 장대같이 쏟아지는 빗속에서의 배송은 두배로 더 힘들다.


택배박스는 젖고 우비 등으로 활동은 제약받는 상황도 상황이지만 무엇보다 심리적 우울감 역시 견디기 힘들다. 배송해야 하는 무거운 짐들은 비가 오나 안 오나 여전히 쏟아져 나온다.


이번 여름 장마철기간 동안에는 옥수수박스들이 유난히 많이 보인다. 우비를 덮어 씌우며 애썼지만 습기에 젖은 옥수수박스들이 힘없이 터져나갔다. 연신 테이프로 다시 포장하며 배송하느라 곤욕을 치렀다.


잠시 장마가 소강상태에 빠진 틈이나 비가 오기 전에 기민하게 배송하느라 우리는 힘을 더 많이 써야 했다. 쏟아지는 비를 고스란히 맞으면 배송하는 순간은 모르지만 배송 후 지독한 오한과 몸살로 고생하게 된다.


아내와 아들이 배송에 신경 쓰느라 잠시 벗어둔 우비를 챙겨 들고 하얗게 쏟아지는 빗속을 뛰어다니다 보면 빗속의 우리 가족 모습이 마치 꿈처럼 여겨진다.


이건 꿈일 거야. 꿈이야. 현실을 부정하는 못난 감정이 또한번 심하게 일렁인다.




언젠가 사무실에 출근해서 반품송장 출력을 기다리다가 나이 든 형님들과 나눈 대화가 생각난다.


택배기사가 가장 행복해하는 순간은 언제일까?.

두둑한 수임료가 나오는 월급날일까?.


아니었다. H형님의 한마디가 가슴에 콕하니 박혔다.

배송을 잘 끝내고 저녁식사를 마치고 물건 안 왔다는 전화 없이 평안하게 쉬는 것이 택배기사에게는 가장 큰행복이라고 했다. 듣는 순간 왜 그리 공감이 되는지 모르겠다.


장대 같은 빗속 배송을 마친 후 집으로 돌아와 샤워를 하며 한숨을 돌린 후 저녁식탁에 둘러앉아 식사를 하며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다 보면 언제 우리가 빗속을 헤치며 전투하듯 택배를 하고 왔나 싶어 진다.


포근한 집안에서 아내와 헤이즐넛향 커피를 마시며 비내리 는 창밖을 바라보는데 모질던 그 빗줄기가 정겹고 운치 있게 와닿는 것이 마냥 신기하기만 하다.


다행스럽게도 가족들이 비를 더 많이 맞지 않고 이렇게 평화롭게 쉬는 순간이 허락된 이 저녁시간이 마냥 감사하고 달콤하고 소중하게 다가온다.




장마철은 비가 그친 날에는 폭염으로 한껏 심술부려댄다. 땡볕은 머리 한쪽이 아플 정도로 강렬하다.


가급적 포터 안은 에어컨을 계속 가동해 냉기를 유지시키고 연신 물과 음료수를 섭취하며 배송한다. 폭염 때는 끼니는 생각나지도 않고 그저 물과 음료수만 찾게 된다.


식사하기 힘들어하는 가족들을 위해 아내는 옥수수밥으로 도시락을 준비했다. 얼음을 넣은 냉수에 말아 <옥수수 물밥>을 단무지무침과 함께 먹었다.


평소 옥수수를 좋아하지 않기도 했고 그동안 무거운 옥수수박스 배송에 질려하던 나였지만 <옥수수 물밥>은 의외로 강렬하게 지친 심신에 생기와 힘을 불어넣었다.


배송하느라 힘들게 하던 옥수수가 시원한 <물밥>으로 변신하여 우리를 위로하는 상황이다. 옥수수의 존재가치 조차 제대로 직시하지 못하는 우리의 인식 한계치를 느낀다.


택배기사인 나에게 배송시 무거운 힘겨움을 주지만 <옥수수 물밥>으로 해갈과 허기를 해결해주는 옥수수의 존재가 슬며시 고마워진다.


사물이 지닌 양가적 의미를 깨닫고 감사할 줄 아는 것. 그것은 무거운 짐이 덜 무거워지게 되는 택배기사만의 비결이자 노하우가 된다.




한동안 연락이 없던 '홀로 외로운 갈매기' 큰아들에게서 연락이 왔다. 그사이 더 큰 핀테크기업으로 옮기고 싶은 열망이 더 커진 것같다.


정체된 회사의 비전이 자꾸만 우리 큰아들을 불안하게 만들었나 보다. 다음 주 월요일에 면접이니 기도해 달라고 부탁한다. 부모에게 기도해 달라고 그러는 걸 보니 그만큼 간절하게 안간힘 쓰는 게 짠하게 느껴진다.


새벽에 택배 하러 출근하는 포터 안에서 아내가 기도한다. 우리가 누리지 못한 인복과 기회의 복을 아들들에게는 허락해 달라는 아내의 간절히 기도하는 모습에서 가난한 부모라도 자식에게 줄 수 있는 축복의 유산이 있음을 새삼 느끼게 된다.


큰아들의 현재 회사도 IT업계에서는 중견의 괜찮은 회사이지만 세상은 늘 새로운 성공을 향해 끊임없는 갈망을 가지게 자극해 댄다. 우리 큰아들도 이젠 안전한 지점을 찿아 끝없이 탈출을 시도하는 그런 인생이 되어가고 있었다.

회사에 출근하기 전 난 늘 구두를 반짝이게 닦았다.

빛나는 구두가 기분을 좋게 하기도 했지만 세상을 향한 말없는 PR이자 자신감의 표출이었다. 아니 그렇게 표현하려는 안간힘의 상징은 아니었을까 싶다.


택배를 하는 지금은 콜롬비아 티셔츠에 반바지, 그리고 운동화차림이 세상을 향한 나의 '페르소나' 전부이다. 장마철인 요즘은 레시가드에 크록스슬리퍼 차림으로 초자유스러움 그 자체다. 겉모습은 볼품없지만 한없는 출근의 자유스러움을 만끽하며 산다.


가끔씩은 하얀 와이셔츠에 넥타이를 매던 시절이 그리워지기도 하지만 맘 졸이며 남들의 시선과 평가 속에서 늘 탈출을 꿈꾸던 순간들을 떠올리면 가차 없이 외면하게 된다.


먹고살기 위해서 돈을 번다는 사실은 구두를 신던 때나 크록스를 신는 지금이나 매 마찬가지다. 존중받는 삶이냐, 아니면 속 편한 삶을 선택하느냐의 선택의 차이일 뿐이다.


택배기사는 사회적 약자 중에 약자에 위치해 있지만 일하는 만큼 버는 그런 단순한 삶을 감사하게 여기며 정직하게 산다. 세상은 현실에 대한 탈출을 늘 꿈꾸게 만들지만 택배기사인 나는, 늘 반복되는 택배레일 곁을 벗어나려고 하지 않는다.


가족들과 함께 맞이하는 바로 오늘 저녁의 평온함이 얼마나 달콤하고 행복한지를 이제는 깨달았기 때문이다.


살면서 지나친 절망도, 낙관도 금물이다. 삶을 그냥 있는 그대로 잔잔한 평정심으로 바라볼 수 있을 때 비로소 시련과 고난은 끝나고 마음의 평화가 찿아온다는 사실을 윙윙거리며 택배박스를 토해내는 휠소터 곁에서 새삼 느끼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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