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퍼노멀의 숨겨진 아픔.
관계, 공동체가 주는 위로.
2021년 11월 10일. 부산에서 쿠팡배달기사로 일하는 송진욱 씨는 새벽배송 중에 술에 취해 쓰러진 여성을 납치하려는 한 남성을 목격했다. 살려달라고 고함치는 여성의 비명을 듣고는 즉시 경찰을 부르고 그를 막아서자 신원미상의 남성은 어디론가 달아나 버렸다. "배송이고 뭐고 몸이 먼저 반응했어요. 그저 도와야 한다는 생각 외에는 아무 생각도 나지 않았어요"라고 했다. 새벽배송을 하는 다른 택배기사들도 취객이나 어려운 상황에 처한 분들을 돕는 경우가 많다며 자신의 선행이 새삼스레 주목받는 게 부담된다며 겸손해했다. 부산사상경찰서 감전지구대는 송 씨에게 감사장을 전달했다.
2018년 8월 25일. 최동준 택배기사는 남양주시 한 아파트를 배송하던 중 인근 하천에서 물놀이하던 초등학생 2명이 물에 빠져 허우적대는 장면을 발견하고는 배달하던 물건을 내던지고 황급히 수심 3m 깊이의 하천으로 뛰어들어 초등학생 두 명을 구했다. 그리고 의식을 잃은 초등학생들에게 신속히 심폐소생술을 시행하여 위급한 순간을 잘 넘겼다. 택배기사는 "남을 돕는 것이 내 삶을 의미 있게 한다"는 말을 남겨 주변에 잔잔한 감동을 줬다.
택배기사들은 도움이 필요한 누군가를 보았을 뿐이다. 그들은 우연히 마주친 상황에서 고민이나 주저함 없이 도움을 주기로 결심을 했다. '확실성을 가진 선택'은 즉각적인 행동을 불러왔다. 이런 행동에는 한치의 망설임이나 어떠한 동요도 없다. '영웅적인' 반응들은 사람의 변덕스러운 자기 확신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알 수 없는 외부의 강력한 힘에 이끌리듯 순간적으로 튀어나왔다. 마치 유연하게 파도를 타는 서퍼처럼, 들이닥친 상황과 혼연일체가 되어 '몰아(沒我)'의 경지 속에 빠져들어 행동한다.
그들의 영웅적인 행동을 불러온 선택의 '확실성'은 어디에서 생겨난 것일까.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은 "이 세상이 살아가기에 위험한 이유는 악한 사람들 때문이 아니라 방관자들 때문이다."라고 했다. 삶 속에서 마주치는 수많은 상황들은 우리로 하여금 선택을 하도록 요구한다. 주변상황의 요구를 회피하는 방관자들이 많아질수록 우리가 사는 세상은 점점 더 불안해지고 위험해질 것 같다는 생각에, 세상을 구하는 영웅의 반대말은 악당이 아니라 방관자라는 말이 쉽게 공감된다.
혹자는 우리가 삶의 방관자로 전락하는 이유는 강박이나 심취 또는 중독의 노예가 되어 살아가는 탓에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 결정하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행복은 특정한 조건(돈, 권력, 지위, 명예, 성공, 사회적 평판, 외모 등등)에 있다고 믿는 순간부터, 사람들은 그 특정한 조건을 숭배하며 살게 된다. 끊임없이 타인의 인정을 추구하느라 자신의 진정한 삶을 살지 못한다. 내면의 깊은 수렁 속에 빠져버려 주변에서 요청하는 어떠한 요구에도 응답할 겨를이 없다. 자신의 삶을 통제하는 '확실성'과 '선택권'을 상실한 채 인생의 방관자로 살아갈 뿐이다.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은 단 한 번의 실패만으로도 내일 당장 어떤 나락으로 전락할지 알 수 없다. 성공보다는 실패를, 주연보다는 조연의 위치에 서는 상황들에 익숙해야 한다. 처한 상황에서 버텨내려는 시도는 점차 처절하고도 절박한 몸부림으로 변해간다.
평범한 회사원으로 일하다가 택배기사로 살아가는 삶은 내가 원한 인생행로는 아니지만 생존을 위해 수용하고 받아들여야 하는 또 다른 차원의 용기가 필요했다. 하지만 진정으로 두려운 것은 실패나 역경자체보다는 주변 사람들의 무시나 비난이었다. 다른 사람의 인정을 얻고자 갈망하는 중독된 삶을 살아왔던건 아닌지 모르겠다. 실패한 인생으로 물끄러미 바라보는 시선들이 싫어서 악착같이 택배를 했다.
수입(돈)만을 쫓는 삶일 때는 처한 상황에 대한 원망과 증오만이 가슴에 가득 찼다. 내가 직면하는 삶의 시련은 오로지 내 몫이었고 주변의 모든 사람들은 방관자였을 뿐이다. 나 역시 다른 인생들에게는 철저한 방관자였다. 내 인생은 주변과 격리된 채, 무섭고도 위험하게, 외롭고도 불행하게 다가섰다.
무거운 상자들을 택배차에 옮겨 실느라 힘겨웠다. 무거운 박스 위에 한 글귀가 눈에 들어왔다. '경숙이네 양파즙' 박스에 적힌 '성구(聖句)'였다. '모든 일에 감사하라'. 무거운 짐과 감사라는 단어의 부조화처럼, 힘겹고 부당함이 차고 넘치는 택배현장 속에서 정말 어울리지 않은 말처럼 여겨졌다.
하지만 거칠고 힘든 현실 속에서도 남들과 다르게 살아가는 택배기사들이 있었다. 무거운 짐이지만 고객이 원하는 대로 문안까지 배송하는 젊은 택배기사를 보면서 '친절함'을 간직한 그가 신기해 보였다. 크리스마스를 앞둔 어느 날, 한 해 동안 함께 해주신 고객들이 너무 고마워서 어떻게 마음을 표현할까 고민하다가 즐거운 성탄과 새해를 맞이하시라는 글귀를 적은 예쁜 스티커를 준비해서 붙이고 배송하는 어느 택배기사의 '감사함'은 기괴하게 여겨졌다. 늘 여유 없고 힘겨운 택배현실 속에서도 주변의 위급한 상황이라도 기꺼이 뛰어들어 도움을 주는 삶의 '확실성'을 간직한 영웅들은 존재했다.
'감사하기'란 나와 타인에 대한 긍정적인 정보처리를 한꺼번에 처리함으로써 강력한 행복감을 가져다 준다. '감사한다'는 것은 나와 남을 동시에 긍정하는 것이다. 나와 남을 용서하고, 수용하고, 존중함으로써 진정한 행복감을 누릴 수 있어진다. 감사하는 마음으로 힘겨운 택배 현실과 시련들을 잘 헤쳐나가는 그들의 존재는 말 그대로 경이로운 '슈퍼노멀'이었다.
오늘날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은 모순덩어리이고 뾰족한 해결책이 잘 나타나지 않는 특징을 보여 준다. 그래서일까. '회복탄력성'이 많은 주목을 받고 있다. 회복력이란 혼란한 현실 상황 속에서는 다음상황을 예견할 수 없다는 사실을 솔직하게 인정하고, 인식력을 높여 마주친 상황을 잘 수용해 내는 능력을 의미한다. 처하게 된 상황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는 또 다른 종류의 용기가 필요하다. 시련을 이겨내고 평범함의 범주를 넘어선 사람들을 '슈퍼맨', 또는 '슈퍼노멀'이라고 부르며 찬사를 보낸다.
슈퍼노멀(Super normal). 그들은 시련의 밑바닥까지 가본 사람들이다. 시련의 바닥을 치고 다시 튀어 오른 '회복탄력성'이 뛰어난 이들이다. 하지만 임상심리학자이자 교육학자인 '멕 제이'교수는 오랜 상담을 통해서 '슈퍼노멀'들의 숨겨진 어두운 면을 발견했다.
회복탄력성이 좋은 '슈퍼노멀'들이 대부분 내적인 고통을 안고 살아가고 있었다. 시련과 맞서 싸울 줄은 알지만 자기가 생존해 온 과격한 방식 때문에 죄책감을 느끼기도 했다. 또는 어릴 적 학대받은 트라우마 등으로 인해 스스로를 사회적으로 고립시키거나, 다른 사람에게 쓸모없다고 단정 짓고는 관계의 벽을 치고 외롭게 혼자 사는 아픔을 겪고 있었다. 그들은 자신들이 시련을 이겨낸 영웅이 아니라 자기 안에 있는 최선의 모습으로 바라봐 줄 수 있는 사람들 곁에 머무르기를 갈망하고 있었다.
'멕 제이'교수는 삶의 시련들을 헤쳐 나오기에 급급했던 '슈퍼노멀'들이 오랜 세월 동안 방치한 내면의 상처를 치유하기 위해서는 속 시원하게 이야기할 수 있는 친구가 필요하고, 그들과 공동체를 이루어 긍정적인 교류를 지속적으로 유지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마음속 깊은 곳에서 우러나오는 관계 속에 형 성되는 사랑과 유대감이 내면의 상처를 치유한다는 것이다. 삶의 시련들을 굳세게 견뎌온 '슈퍼노멀'에게도 살가운 인간관계는 필요했다. 인간관계란 우리 삶의 의미를 부여하는 원천인 셈이다.
사막의 짙은 어둠 속에서 거대한 조형물이 강렬한 붉은 불길에 휩싸이고 사람들의 환호성이 터져 나온다. 곧이어 음악과 춤으로 모든 사람이 하나로 어우러진다. 공동체 프로젝트 <버닝맨 BurningMan>은 1986년 '래리 하비'가 편견 없는 공동체를 꿈꾸며 창조, 자유, 무소유 등을 슬로건으로 시작된다.
매년 미국 네바다주 사막에 단 9일 간만 존재하는 '블랙 록 시티(Black Rock City)'에서 7만 명 이상이 참여하는데 실험적인 아이디어, 자유로운 예술공연, 춤 등으로 교류한다. 자발적으로 모여 원칙을 지키며 실험적인 공동체생활을 한다. 인상적인 원칙 중 한 가지는 화폐를 사용할 수 없고 재능이나 물물교환으로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이다. 행사 후에는 모든 것을 불사르고 다시 무의 상태로 되돌아가고 새로운 탄생을 기다린다.
재미있는 건 신자유주의 상징인 구글 , 테슬라의 일론머스크, 메타의 주커버그 등이 열렬한 '버닝맨'추종자라는 사실이다. 물질만능적이고 철저한 개인주의 신봉자라고 해도 거부할 수 없는 어떠한 매력이 공동체 속에 있다는 의미는 아닐까.
택배를 하고부터는 가족과 늘 함께 한다. 1톤 탑차에 실리는 사오백 개의 택배물량을 두세 명이 함께 하니 배송이 많이 수월하다. 택배는 보기와는 다르게 단순하지 않다. 상품이 고객 문 앞에 놓이더라도 오배송이나 파손, 이사 등 다양하게 발생된 변수가 제대로 처리되지 않으면 배송은 무한히 연장된다.
배송될 상품이 지닌 다양한 변수들이 잘 처리되고 정확하게 고객문 앞에 도착해야 비로소 배송이 끝난다. 가족이 상품적재, 운전, 고객응대 및 처리, 분류 및 배송 등 다양한 업무를 나누어 분담하니 그만큼 심신이 편안하다. 하지만 함께 한다는 사실이 마냥 편한 것은 아니다. 두 사람 이상만 모이면 사람들은 갈등상황이 조성된다. 자기중심적인 자아들 간의 지속적인 충돌이 시작된다. 피를 나눈 혈연관계라 해도 양보와 희생하는 마음이 없다면 함께 하기 어렵다. 관계가 형성되면 누군가는 늘 희생되어야 한다. 그래서 함께 한다는 사실이 주는 유익함 여부를 떠나 관계는 늘 구속이고 속박이라고 여겨져서 공동체를 향한 사람들의 시각은 부정적일 수밖에 없다.
관계가 싫어 홀로 하는 택배를 선택했지만 싫든 좋든 간에 가족이라는 관계 속에 사는 게 현실이 되었다. 택배과정에서 발생하는 많은 인력투입이 요구되는 측면이야 서로 분담하면 해결되지만 함께 일하 면서 발생하는 서로 다른 성향과 소소한 의견충돌 등은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는 새로운 과제로 떠올랐다.
사회학자 <어빙 고프만>은 개인이 일상생활을 하며 타인과 함께 있는 동안의 상호작용을 연구했다. 그는 일상에서 개인자아 간에 소통하는 관계에 성스러움이 부여되며 그것을 지키는 것이 <의례>라고 보았다. 그 의례의 뼈대는 '존대'와 '처신'이라고 여겼다. 일상적인 인간관계를 잘 유지하기 위해서는 <상호존중의례>가 필요하다고 결론 내렸다. 그것은 상대방에게 해야 할 것과 하지 말아야 할 말과 행동을 잘 선택할 수 있어야 한다는 의미였다.
하지만 우리의 현실은 공동체의 유익함을 잘 알고 그 힘을 원하지만 상호존중하는 법에는 서툴고 별 관심이 없어 보인다. 택배를 하면서 형성된 작은 가족공동체이지만 잘 이루어서 건전한 관계망을 확장시켜 나가고 싶다. 험난한 이 세상을 헤쳐나가기 위해서는 한 사람의 영웅보다 관계의 힘이 더 필요하다는 것을, 그리고 삶의 방관자가 아닌 공동체의 힘이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을 더 아름답고 안전하게 만들 것이라는 믿음이 있기에 우리 가족만의 <상호존중하는 방식>을 고민하고 가족공동체를 통해 이룰 꿈을 그려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