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배송하는 구역에는 단독ㆍ빌라, 상가, 구축아파트, 신축아파트 등 여러 형태의 주거지가 혼재되어 있다.
다양한 주거공간만큼이나 사는 사람들도 각기 다른 삶의 모습을 보여준다.
골목길이 자연스레 형성되는 단독과 빌라에는 아기자기한 정겨움이, 신축 아파트단지는 잘 조성된 조경부터 주민시설까지 세련되고 편리함이 느껴진다.
개인적으로 골목이 있는 단독주택에 살고 싶은 바람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택배를 하는 입장에선 계단이나 잠긴 대문 등으로 배송하기 힘든 단독주택보다는 상대적으로 편하고 물량도 많은 아파트를 선호할 수밖에 없다.
배송구역 내 한 단독주택을 배송하던 중 문이 잠겨있어 한동안 고민하다가 까치발로 간신히 담장 안으로 상품을 던져 넣을 수밖에 없었다.
잠시 후 장문의 항의문자가 왔다. 아파트가 아닌 단독주택에 산다고 상품을 이런 식으로 배송하냐며 다그쳐왔다.
고객이 바닥에 떨어진 상품을 보고서 차별배송을 당했다고 오해하며 속상했던 것 같다. 사과하면서 전혀 그런 의도는 없었다고 설명하느라 진땀을 흘렸다.
사람들은 아기자기하고 정감이 넘치는 공간과는 상관없이 무언가 알 수 없는 비교 속에서 상처를 받으며 살아가고 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후로 단독주택은 배송 후 상황설명 문자나 전화를 반드시 하며 신경을 더 써야 했다.
고급아파트단지에 들어서면 주민들의 옷차림부터 다르다. 배송해야 하는 상품도 홈쇼핑 위주의 상품들로 대부분 가볍고 깔끔하다.
배송 중에 아내는 하늘거리는 우아한 원피스를 입은 중년여성과 함께 엘리베이터를 탔다. 그녀가 잠시 살피더니 먼저 인사를 했다.
택배를 하셔서 그런지 몸매가 좋으시다며, 돈도 벌고 운동도 되고 자기도 택배를 해야겠다고 말했다.
아내는 '아. 네'하고 대답했지만 씁쓸해졌다.
택배는 먹고살기 위해 힘들게 하는 업인데 취미로 하는 운동처럼 여기는 결 다른 말에 은근한 반발감이 생겨났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힘든 택배를 하려고 한다면 <화물운송자격증>이 있어야 한다. 요즘 이 자격증을 따려는 사람들이 많다는 뉴스기사를 봤다.
택배기사 소통카페에도 자격증 응시대기시간이 한 달은 족히 걸린다는 글들이 올라오는 걸 보니 보도내용이 사실인가 보다.
택배는 힘든 일이지만 사람들이 관심을 가지고 몰린다는 것은 그만큼 우리 사회가 먹고사는 문제가 점점 더 심각해지고 있음을 느끼게 된다.
요즘은 먹고살기 위해 일하는 환경이 점차 등산이 아니라 사막을 횡단하는 것처럼 변해간다는 생각도 든다.
등산은 정상을 바라보며 계획을 세우고 최정상에 서는 순간을 그리며 설렘으로 출발을 하지만 사막여행은 어떠한 계획도, 예측도 할 수 없다.
모래폭풍으로 수시로 바뀌는 환경이기에 나침반이 제시하는 방향을 향해서 앞이 보이지 않아도 오직 참고 견디며 나아갈 수밖에 없다.
이렇게 시시각각 변화하는 사막과 같은 일터의 상황들은 우리를 늘 불안하게 만든다.
불안할수록 사람들은 돈에 더 집착하고 의지하려 한다. 경제학자 <앵거스 디턴>은 오늘날 세상은 '더 부유할수록 더 탐욕스럽게 된다'라고 했다.
자본주의 시스템은 백만장자라도 억만장자를 추종하게 만든다.
신자유주의적 자본주의 시대에 태어났기에 죽는 순간까지 끝없는 <자기 착취>에 시달리며 살아가야 한다고 생각하면 끔찍하기만 하다.
되돌아보면 내 인생의 대부분도 나보다 더 많이 소유한 사람들의 그늘에서 그들이 가진 자본을 바탕으로 내가 상상 속에 설정한 정상을 향하는 계획을 세우고 그것을 성취하려 애써왔다.
인생은 원래 사막인데 등산할 준비만 한 채 덤벼들었다가 갑작스레 덮쳐오는 모래폭풍에 꼼짝없이 갇혀서 당황 속에 멈추어서곤 했다.
인생이란 계획하고 상상하는 대로 결코 흘러가지 않는다.
누구나 인생이라는 사막에서 주기적으로 발생하는 모래폭풍 같은 시련들을 반드시 완수하듯 살아가야 하는 숙명적인 운명을 안고 태어났다.
사람들은 직장을 잃거나 이혼을 하거나 중년의 위기를 맞거나 금전적인 걱정거리가 있을 때 또는 퇴직 후의 급격한 변화에 적응하려 할 때 각자 자신만의 사막에 매몰되어 그 속에서 헤어 나오려 애쓰며 산다.
<사막을 건너는 여섯 가지의 방법>의 저자 '스티브 도나휴'는 현재 처해 있는 사막에 맞는 숨겨진 '오아시스'를 찾으라고 조언한다.
"하루 종일 어린아이들과 씨름하느라 힘들다면 말이 통하는 사람과 대화를 할 시간이 필요하다.
거의 하루 종일 혼자서 보내는 사람이라면 밖에 나가서 사회적 교류를 하는 것이 오아시스이다.
하루종일 컴퓨터 스크린을 쳐다보고 있는 것은 디지털 사막이다. 이럴 때는 화단의 비옥한 토양에 손을 담그고 꽃의 화려함에 취해 보는 것이 바로 오아시스가 될 수 있다."
그는 자신만의 사막을 건너는 일에 몰두하게 되면 다른 사람과의 관계가 소원해진다고 지적한다.
사막에 있다면 그 무엇보다도 오아시스에 우선순위를 두어야 한다.
그리고 오아시스에서 해야 할 일은 다른 사람과 만나는 것이라고 강조한다.
하지만 인생이라는 사막에서 겪어야 하는 시련의 고통보다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받는 상처가 더 힘들고 고통스러운 경우가 더 많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임상심리학자인 <맥 제이>는 시련을 이겨내고 <슈퍼노멀>이라 칭송받는 강인하지만 평범한 수많은 이들을 상담한 결과, 이들이 공통적으로 어릴 적 입은 상처로 인해 가슴속 깊이 자신은 다른 사람들과 어울릴 수 없는 쓸모없는 존재라고 여기고 스스로를 고립시키고 외롭게 살아간다고 지적한다.
시련은 사람을 강하게 연단시킬 수 있지만 마음속 깊은 상처를 남긴다.
수많은 시련을 이겨낸 <슈퍼노멀>이지만 마음속 아픔을 견뎌내지 못해서 외로움을 선택한다는 것이다.
택배는 늘 같은 동선을 반복해서 돌아다니는 외로운 직업이다.
한참 택배를 돌리다 보면 문득 어제 내가 돌리던 그곳에서 똑같은 행동을 하며 무한반복하는 듯한 착각이 들 때가 있다.
어제와 엊그제 똑같은 그 장소와 그 풍경을 대하며 택배를 하다 보니 마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의 시공간을 동시에 관통하듯 유영하며 사는 것 같은 비현실적인 생각도 든다.
인간인 주제에 신의 영역을 함부로 침범한 대가로 산 정상을 향해 무거운 바위를 올렸다가 내리기를 무한반복하는 <시시포스>처럼 택배기사인 나는 신에게 어떤 발칙한 도전을 했기에 이처럼 홀로 맴도는 시련을 겪어야만 하는 걸까.
사실 이런 시련은 나 스스로가 자초한 면이 있다.
이리저리 얽히는 사람 간의 이해관계가 싫어져서 오롯하게 혼자의 몸뚱이로 먹고살고 싶어 홀로 일하는 택배를 선택한 이유도 있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서로에게 달처럼 늘 한쪽 면만을 보여준다. 화려하게 꾸미고 치장된 모습만을 보이고 자신의 진짜 모습은 감추며 산다.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돈으로 스스로를 우아하게 포장하려 애쓴다. 나보다 더 많은 자본을 가진 우아한 사람들의 숨겨진 진의를 파악해서 그것에 맞추며 사느라 먹던 밥숟가락도 내려놓고 달려 나가야 하는 것을 사람들은 <처세술>이라고 말한다.
우아함을 상실한 이들은 이해관계에서는 늘 고달프고 상처받는 위치에 설 수밖에 없다.
가식적인 우아함을 보여주려 할수록 돈에 더욱 옥죄여 살수 밖에 없다.
<소로우>가 인생을 사랑하기에 세상을 거슬러 외로운 숲 속을 선택한 것처럼, 매서운 인간관계가 주는 상처가 싫어서 차라리 사막의 시련을 자초하듯 선택하는 <슈퍼노멀>들이 많고 자연인이 많은 이유이다.
언젠가 산속에 곱게 핀 들꽃을 보았다.
이뻐서 보는 내내 마음이 편안했다.
하지만 인적이 끊긴 이 깊은 산속에서 홀로 피고 지다 외로이 사라지는 처지라고 생각되니 이내 가엽다 못해 처량하게 느껴졌다.
들꽃처럼 평범한 내 인생도 그러하진 않을까?하는 우울감이 생겨났다.
하지만 오랜 시간이 지난 후에 산속에서 마주친 이름 모를 그 들꽃은 자신이 머문 자리에서 잠시 스치듯 지나간 나에게도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아낌없이 나누어 주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수년이 흐른 지금도 난 아직도 그 들꽃의 아름다움을 잊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누군가와의 관계에서 내가 그때의 산속의 들꽃과 같은 존재가 될 수만 있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생겨났다.
어느새 나는 처량하고 가련하게 여기던 그때 그 들꽃을 마냥 부러워하고 그리워하고 있었다.
산속에 핀 들꽃처럼 있는 그대로의 내 삶이 아름답고 다른 사람의 삶은 아닌 거다.
우아함이란 부유함이나 화려한 치장이 아니라 천박하지 않음에 있다.
우아함은 언제나 자연스럽게 보여야 한다.
Keep It Real.
래퍼인 우리 아들이 열광하는 힙합정신은 진짜를 추구하는 것에 있다.
꾸미고 거짓된 모습은 구리다고 쏘아붙인다. 살면서 진짜가짜를 구별하는 유일한 기준은 당당한 <자아>뿐이다.
그래서 <스웩> 넘치는 삶을 그렇게 추구한다.
그런데 세상은 진짜가짜보다는 세태와 타협하고 순응하기만을 강요한다.
사람들은 그렇게 살아왔기에 본연의 자신을 잃어버린 채 살다가 결국은 지독한 허무감의 수렁 속에 점차 빠지고 만다.
아마도 상위 1%를 제외한 사람들은 점점 더 가난해질 것 같다.
그럴수록 돈이 없어도 우아하게 살려고 시도하는 사람들도 점점 많아질 것 같다.
모든 사람이 가난해지는 상황에서는 돈 없이도 우아하고 침착하게 대처하는 법을 빨리 터득할수록 더욱 근심 걱정 없는 삶을 누리게 된다.
돈으로 해결할 수 없는 욕구를 품을 수 있는 사람들만이 진정한 부자로 우아하게 살 수 있을 거라 여기기 때문이다.
나날이 은행의 잔고가 줄어든다는 사실은 자살할 만큼 절망스러운 상황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는 순간 수많은 <슈퍼노멀>들이 진정으로 우아하게 재탄생한다고 생각한다.
삶을 보람 있게 해주는 것들은 수중의 돈이 감소했다고 해서 줄어들지 않는다.
정중함, 친절함, 다정함, 도우려는 마음은 삶의 무한한 자원들이다.
<우아하게 가난해지는 법/ 알렉산더 폰쇤부르크>
'돈이 많은 삶도 좋지만 고민 없는 삶도 바라고 난 원하고 있어'.
아들이 만든 노래가사말이 마음에 와닿는다.
늘 가족을 위해 돈을 가지고 싶어서 열심히 부모님을 도와 택배 하는 아들이지만 돈보다 진정으로 소중한 것이 우리 주변에 아직 많다는 사실을 이미 느끼는 듯 싶다.
택배 하기 이전에는
성공의 영감을 얻기 위해 새벽을 깨웠지만,
지금은 탑차에 짐을 채우기 위해서 새벽을 나선다.
이전에는 사색하고 운동을 위해 만보를 걸었다면
지금은 부지런히 택배를 돌리며 만보, 이만보를 걷는다.
이전에는 불어나는 살을 빼기 위해 단식을 하며 애썼지만 지금은 무수한 움직임 속 노동과 땀으로 군살들을 태운다.
이전에는 하늘의 존재를 잊고 살았지만
지금은 비바람을 품고 하늘을 살피며 순응하는 법을 배우며 산다.
택배를 하며 남들에게 젊잖은 양반이 왜 손수레를 끌고 다니냐며 동정 섞인 핀잔 투의 말을 듣기도 하지만
겉치레로 포장만 하던 나를 버리고 진짜인 나와 함께 힙합처럼 솔직하게, 글 쓰듯 우아하게 택배 하며 사랑하는 가족들과 함께 세상을 거슬러 살아가는 중이다.
힙합이야기. 핫네이버후드의 <S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