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은 오후 아내와 커피를 나누며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다가 슬그머니 소파구석으로 자리를 옮겨 목소리를 낮추어야 했다. 귀 밝은 막내아들이 들을까 봐 몰래 나눈 대화는 '이 나이가 되도록 왜 이것밖에 못 벌었을까?'라는 주제였다.
아들들이 "엄마아빠 이것 밖에 없어?"라고 물어봤을 때 대답할 타당한 이유를 찾으려 한동안 우리는 과거를 소환하며 되짚어봐야 했다. 분명히 열심히 벌고 살아온 것 같은데 너무나 동떨어진 현실에 허무하고 씁쓸해질 뿐이다.
인천 미추홀구에서 일가족 다섯 명이 안타까운 선택을 했다. 40대인 가장은 병원직원으로 근무하며 경매로 빌라를 구매하고 2층은 찜질방으로 운영하는 등 왕성한 경제활동을 하며 가정도 단란하게 이끌어 왔다고 한다. 하지만 주식투자 실패와 금리폭등으로 경제적으로 힘든 상황에 처하게 되자 끝내 끔찍한 선택을 한 것이다.
평소 가정을 잘 이끌어왔고 열심히 일하고 투자하는 등 계획적이고 의욕적인 가장이었지만 실패라는 상황 앞에서 극단적인 선택을 피할 수 없었던 것 같아 안타깝기만 하다. 사건을 보도하는 기사의 댓글창에는 주제도 모르고 사업을 확장하고 주식투자를 했다며 비난하는 모진 댓글들을 보고 있자니 결코 실패한 인생에겐 죽음 앞에서도 한 톨의 동정도 없이 가혹한 세태의 민낯이 섬뜩하기만 하다.
오래전에 창업에 관심이 있어 알게 된 지인이 있다. 대기업을 나온 후 대학진학을 위한 데이터베이스를 기반으로 한 앱을 출시했으나 실패했다. 다음은 재창업을 위한 무료창업교육과정을 기획했으나 접고 최근에는 50대 중반의 마지막 시도로 3세대 스마트컨테이너팜사업에 수년째 사활을 걸고 올인하고 있었다.
이땅에서 퇴사 후 중년의 홀로서기는 참 힘겹고 암담하다. 오늘날 중년은 어두운 밤하늘의 '반달'같은 처지다. 밤하늘을 꽉 채우며 휘영청 밝았던 보름달 시절은 뒤로한 채 금방이라도 사라질 것 같은 실눈 같은 초승달이 될 운명이라는 사실이 실감 나게 와닿는 시기다.
우리는 단 한 번의 실패만으로도 곧바로 사회적 약자계층으로 전락하는 시대를 살고 있다. 결코 실패가 허용되지 않는 이 땅에서의 삶은 결코 안전하지도 않고 험난하기만 한데 어느덧 중년의 문턱에 들어서니 또 다른 관문이 기다리고 있다. 루저, 실패자가 되지 않으려 안간힘을 쓰며 살아왔지만 오십이 되고 보니 어찌 되었든 반달같이 절반밖에 못 채운 현실이고 빈 절반에는 회한만이 가득하다. 이 모든 게 실패자처럼 살아온 자업자득이라며 인정할 수밖에 없는 결과인 걸까.
미국의 경제학과 교수 '마이클 예이츠'는 경제학과 교수로 32년간 재직 후 은퇴하고 2001년 여름부터 2005년 말까지 5년간 부부가 함께 미국 전역을 여행하며 노동자로서의 삶을 직접 체험한다. 노동을 분석하는 일과 직접 노동하는 것의 차이를 경험하기 위해서였다. 32년간 강단에서 일해왔으나 몸소 호텔프런트데스크 직원등으로 일하며 노동현실을 직접 체험한다.
근대의 작업장은 노동자들이 집중적으로 일하지 않을 수 없도록 만들고 자신의 시간을 회사에 제공할 수밖에 없도록 만드는 방식으로 완성되었다. 자유가 없고 통제받는 근무시간이 너무 길었다...날이 저물면 나는 자유로웠지만 너무 지쳐서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7시 무렵의 이른 저녁부터 잠에 빠지는 날이 많았다. 가르치는 일은 많은 불안을 느끼게 만들었지만 현재의 일은 육체와 정신을 동시에 쇠약하게 만들었다. 이런 일은 32년 동안 상상도 못 해본 일이었다...사람들은 가난한 사람들이 자력으로 성공하지 못하는 이유를 궁금해한다. 그들도 깨끗한 물과 공기를 마시고 품위 있고 건강에 좋은 음식을 먹는다면 가난하지 않은 사람들과 똑같이 성공할 수 있을 것이다.
20년 전 최강국 미국에서의 노동자들이 처한 현실도 보잘것없는 급여 수준과 저축할 수 없는 상황으로 내몰리는 불평등한 상황들이 점차 증가하고 있었으며 소득의 양극화는 심해져 가고 있다고 그의 저서 <싸구려모텔에서 미국을 만나다>를 통해 고발했다.
코로나 3년간 대부분의 자영업자들의 수익은 꾸준히 감소했지만 은행 등 폭리를 취하는 계층은 나날이 새롭게 등장한다. 세상의 이치는 돈이 돈을 부르고 자본을 움켜쥔 계층을 위해서만 유리한 룰은 나날이 견고해지고 금융자본주의 게임은 그렇게 특정계층만을 위해 일방적으로 진행되어 간다.
아내는 나에게 루저인생인데 변명하지 말라고 냉정하게 조언했다. 자본주의 게임논리가 지배하는 사회에선 실패자가 맞다. 하지만 실패한 인생은 없다. 인생의 성공여부는 철저하게 주관적인 행복관에 좌우되기 때문이다. 이것은 인생이 우리에게 허락해 준 선물이고 특혜라고 생각한다.
번듯한 중앙지 기자생활을 버리고 지리산자락에서 밤하늘의 은하수와 야생화를 쫓아다니며 사는 이원규 시인은 스스로 루저, 실패자라고 인정하고 나니 맘이 편해졌다고 했다. 얽매인 삶의 굴레를 벗어나 자신이 원하는 삶을 누리기 때문이다. 용기 있는 사람은 포기가 가능하다. 밤하늘의 은하수를 위해 지혜로운 시인은 기꺼이 소유를 포기했다. 나는 용기 없어 일방적인 룰이 지배하는 세상 속에서 아직도 치열하게 경쟁하며 산다.
생계를 잇기 위해 어려운 상황 속에서 억지로 규모를 키우려 애쓰지만 노력에 상응하는 결과를 얻기는 힘들기만 하다. <코끼리와 벼룩>을 저술한 영감적인 작가 '찰스핸디'는 평생의 시간을 미리 회사에 담보로 팔아넘기고 그 대신 고용을 통해 안전을 보장받아 왔지만 이제는 은퇴 이후의 20년간의 삶은 지금까지 살아왔던 방식과는 전혀 다르게 살아가야 하는 제2의 인생을 겪게 된다고 예견했다.
50대 인생은 반달이다. 이대로 스러져갈 것인지 아니면 반쪽을 채울 새로운 변화가 절실하게 필요한 제2의 인생시기이다. 지금까지와는 다르게 나의 제2의 인생을 도둑맞지 않고 일하며 살아가는 새로운 해결방안은 없는 걸까?
중년에 택배로 전업하면서 바뀐 시각은 일에 대한 고정관념이다. 대부분의 사람은 남들 이목에 좋고 한 가지 일만 직업으로 가져야 한다는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다. 이런 고정관념은 극심한 경쟁을 초래하고 먹고살기 위해 억지로 규모를 키워나갈 수밖에 없는데 문제는 그런 수고에 상응한 결과가 보장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남들이 괜찮은 사무실에서 하얀 와이셔츠에 넥타이를 매고 근무하던 오래전 그 시기에 택배를 하며 시장통을 누리던 택배기사가 지금은 외제 RV승용차를 몰며 더 여유롭게 사는 모습을 보면서 직업에 대한 가치는 결코 보기 좋은 이목에 좌우되는 것이 아님을 느끼게 된다.
택배센터에서 아르바이트로 분류지원하는 중년남자 한분이 쿠팡에서 새벽배송 후 우리 센타로 와서 상품분류를 한다고 했다. 심지어 일과 후에는 청소일까지 소화하면서 꽤 많은 수입을 올린다는 말에 참 열심히 사는구나 하며 놀랐다. 이처럼 생활 속의 작고 다양한 일들을 잘 조합해서 열심히 살아가는 이들을 우리 곁에서 심심하지 않게 발견할 수 있다.
하지만 일을 하면서도 내 몸과 시간을 모두 갈아 넣듯이 치열하게 사는 삶은 먹고사는 문제에 너무 지나치게 편중되어 건강한 삶처럼 여겨지지 않아 우려된다. 일을 하지만 내 시간을 도둑맞지 않고 삶의 이로움을 지키며 살아갈 수는 없을까.
'이토 히로시'는 <생업>이란 혼자서도 시작할 수 있고 돈 때문에 내 시간과 건강을 해치지 않으면서 하면 할수록 머리와 몸이 단련되고 기술이 늘어나는 일, 즉 삶과 일이 잘 조화된 상태라고 정의했다. <생업>의 주목표는 소중한 인생과 맞바꾸며 스트레스를 받아가며 한 곳에 매여서 일하기보다 작은 규모로 여러 가지 일을 몸에 무리가 가지 않도록 하며 머리와 몸을 단련하며 나아가서 함께 일하는 동료가 늘어가는 일을 만드는 것이라고 했다.
<생업>은 시장경제를 완전히 벗어나는 자급자족을 목표로 삼는 것이 아니라 시장경제 속에서 경제적 도전을 준비하는 기반이 되어 재도약의 기회로 만드는 것이다.
막내아들이 음악으로 먹고사는 건 어렵다고 판단한 듯하다. 부모가 택배 하며 먹고살아내는 모습을 곁에서 보니 자신도 할 수 있겠다는 판단이 서는지 독립적으로 택배를 하고 싶다고 했다. 우리는 아들에게 택배를 주업으로 하지 말고 <생업> 삼아 일하며 뮤지션의 길을 가라고 조언했다.
무리하지 않고 택배생업으로 다음단계로 나아가는 교두보를 만드는 것을 목표로 삼으라고 했다. 이렇게 우리 가족의 택배생업의 가능성을 타진하는 일은 시작되었다. 생업의 시작은 내가 생활하는 곳에서의 불편한 문제점을 개선하려는 것에서 시작이 된다.
택배의 불편한 부분은 무엇일까. 택배는 늘 사람의 품이 많이 요구되는 직업이다. 항상 매여서 일하니 장례식, 결혼식 등 경조사나 젊은 택배기사들 같은 경우 동원예비군 소집통보를 받을 때면 참 난감해진다. 이러한 지점에서 서로 상생하는 생업이 생겨날 가능성이 충분해 보인다.
문득 우리는 지금 브리콜라주(bricolage, 안 쓰는 물건을 활용해 쓸모 있는 도구를 만드는 기술)하는 것처럼 우리가 가진 쓰지 않았던 자원들을 최대한 활용해서 새로운 생활방식을 만들어 가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면서 새로운 가능성에 대한 기대감도 생겨났다. 가족관계를 바탕으로 하는 택배생업이 소비사회를 저항하는 또 하나의 작은 대안이 될 수 있을지 궁금해졌다.
50대 중년에 새로운 형태의 가족경영체가 참여하는 나만의 생업으로 택배를 바라보며 그 가능성을 탐구하는 여정이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