택배가족의 나우토피아.
가족공동체를 향한 꿈.
'토니 셰이'는 혁신적인 기업가였다. 미국 최대 인터넷 신발쇼핑몰 '자포스'(ZAPOS)의 CEO였던 그는 '고객에게 행복을 배달한다(delivering happiness)'는 독특한 기업문화와 '포춘(Fortune)'에서 '일하기 좋은 100대 기업'에 선정될 정도로 세인의 관심을 한 몸에 받았다.
결국 2009년 7월, '아마존'에 12억 달러(약 1조)에 '자포스'를 매각하며 그의 성공적인 스토리에 정점을 찍는다. 그는 실리콘밸리를 대표하는 살아있는 신화적 존재가 되었다.
그런 그가 NYU캠퍼스에서 영감을 받아 '도시 같은 일터'를 만들고 싶은 자신만의 유토피아를 꿈꾼다. 평소 "도시를 살리는 것은 이 세상을 살리는 것이나 다름없다."라고 말해온 그는 벌어들인 천문학적인 수익금(1조 원)을 바탕으로 낙후된 라스베이거스 구도심'다운타운'에 새롭고도 혁신적인 기업공동체를 건설하겠다며 '다운타운 프로젝트(Downtown Project, 이하 DTP)'를 선포한다.
문 닫은 카지노가 즐비한 라스베이거스의 구도심을 사업대상지로 선정하고 3억 5천만 달러(약 3,600억 원)를 들여 카페와 레스토랑, 학교와 병원을 연이어 지었다. 그는 낙후한 도심을 사들 인후 거리를 단장하고 공원과 공연장, 학교, 예쁜 아이스크림가게를 만든다.
젊은 창업자들을 불러 모아 사업자금과 일하고 생활할 공간을 제공한다. 무료로 제공하는 레스토랑과 바도 있다. 원주민에게는 무이자로 돈을 빌려줘 작은 가게를 차릴 수 있도록 했다. 새로 온 창업가들과 원주민들이 어울려서 삶의 공동체를 만들 수 있도록 배려했다.
그는 '세상을 뒤집는 혁신적인 DTP'를 5년 안에 실현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고 사람들에게 약속했다. 그 순간 각자의 삶에서 무언가를 찾아 헤매던 많은 사람들이 '토니 셰이'에게서 답을 찾고자 DTP에 동참했다.
그러나 DTP의 황금기는 고작 1년에 불과했다. 일반적으로 20년이라는 시간이 걸리는 도시계획을 단 5년 내에 이루겠다는 실리콘밸리의 전통적인 지혜는 현실적으로 한계에 봉착했고, 혁신의 그늘 뒤에서 밀린 임대료를 걱정하거나 집세를 내고 가족을 먹여 살려야 하는 부담에 시달리다가, 결국 그를 따르던 상당수의 추종자들은 환멸을 느낀 채 이곳을 떠나버렸다.
그가 제시한 '행복을 파는 유토피아'는 허상이었다.
'에이미 그로스'는 DTP에 대한 냉정한 보고서 <자포스는 왜 버려진 도시로 갔는가>에서 두 가지의 중요한 사실을 지적한다.
첫째로, 사람들이 기발한 아이디어로 세상을 바꾸는 사람들, 기존 전통의 틀에서 벗어나 자유분방한 사고를 지닌 사람들, 혁신적인 방법으로 엄청난 수익을 올리는 사람들로 상징되는 실리콘밸리의 집단들에게 지나치게 호의적인 평가를 해왔다고 지적한다.
그들의 실상은 지나치게 '자기 과신'과 자기중심적인 리더십에 빠져 인간의 가치와 도덕률을 쉽게 무시하는 경향이 있어 종종 윤리적 위기에 빠지곤 했다.
이제는 그러한 평가에 의문을 제기해야 된다는 것이다. 토니가 추진한 DTP는 겉으로는 '벤처기업이 지역의 혁신과 재생을 이끄는 주체가 되는 사례'라고 홍보했지만 실상은 더 많은 신발을 팔려는 <자포스>의 홍보행사에 불과했을 뿐이었다.
프로젝트 참가자 1명과 테크펀드로부터 투자를 받은 2명의 기업가가 자살을 하는 비극을 초래했다.
두 번째로는 토니가 '앨프리드 린(Alfred Lin)'같은 평형추 같은 파트너가 곁에 없었기에 DTP의 원대한 비전을 실현시키지 못했다고 지적한다.
토니는 타고난 모험가이고 앨프리드는 토니가 감수하려던 위험을 완화시켜 주는 역할을 해왔다.
앨프리드는 토니가 DTP를 시작할 즈음에 자포스를 떠났다. 성공한 비전가 뒤에는 반드시 늘 훌륭한 경영자가 함께하고 있었다.
실패의 확률이 높은 기업생태계에서는 독단적이고 컬트적인 '나 홀로' 리더십보다는 상호보완적인 '공동체적인' 파트너십이 더 적합하다는 것이다.
시장의 실패에서 수많은 사회적 문제가 발생한다. 그러한 사회적 문제를 기업가는 시장의 논리로 해결하려 시도한다. 실패한 방법으로 문제를 해결하려는 모순에 빠져 실패의 수렁을 벗어날 수 없다.
사회적 기업, CSR(기업의 사회적 책임)에 대한 기대치와 성과가 낮은 이유이다. 하지만 세상은 혁신적인 방법으로 부를 축척하는 기업가와 자본가에게서 해답을 얻으려는 기대를 여전히 거두지 못하고 있다.
그들은 원하는 물건을 새벽이든 밤이든 배송하는 물류산업 '총알택배'부터, 원하는 사람을 화성까지 배송하는 우주산업 '스페이스 X'까지 돈이 되는 일이라면 시간과 장소를 불문하고 새로운 '돈벌이 기회'를 만들어낸다.
문제는 이러한 혁신적이고 창의적이라 칭하는 생산과정에서 인간 존엄성과 노동자들의 희생은 한낱 소모품처럼 사소하게 취급당한다는 점이다.
매스컴을 통해 새벽배송 등 '편의성'을 위한 배송경쟁은 물류근로자들을 야간노동 등 강도 높고 열악한 작업환경으로 점차 내몰고 있고, '유연함(Flexible)'을 유지하기 위한 은행과 첨단 IT기업들의 잦은 해고는 고용불안을 가중시키고 있다는 뉴스를 심심치 않게 접하게 된다.
'일런 머스크'의 농담처럼 내뱉는 말 한마디에도 출렁이는 주식과 코인시장을 바라보면서 우리가 사는 세상은 혁신적이고 창의적으로 부를 축적하는 기업가들에게 기꺼이 목줄을 내어주며 사는 것 같아 씁쓸해진다.
대리점을 옮기고 난 후 배송물량이 너무 적어 한동안 고민에 빠졌다. 몇 차례 대리점 소장에게 사정을 말해봤지만 기약 없이 기다리기만 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마냥 이대로만 있을 수는 없었다. 마침 쿠팡에서 자체 배송망을 갖추기 위해 기존의 택배회사와 같은 형태의 '쿠팡 cls대리점'을 모집하며 대대적으로 홍보를 시작하던 중이었다.
인센티브 지원금과 원하는 구역을 선점하라는 홍보내용은 당시 적은 배송물량으로 고민에 빠진 나에게는 천금과 같은 기회처럼 여겨졌다.
택배시장에서 쿠팡은 기존의 택배회사들을 '로켓배송'과 대규모 물류시설 투자 등으로 무섭게 위협하며 급성장 중이었다.
막대한 자본력과 편의성이 돋보이는 서비스로 무장한 쿠팡의 성장세는 경이로웠다. 수많은 택배기사들이 열린 새로운 기회를 찾아 '쿠팡퀵플렉서'로 자리를 옮겨갔다.
미래의 잠재적 가치와 수익성을 고려할 때 기회의 문이 닫히기 전에 빨리 결정을 해야 했다.
가족들과 상의를 했다.
기회를 선점하자는 나의 의견과 불안한 도전은 싫다는 가족들의 의견으로 나뉘었다.
깊은 고민 끝에 가족공동체의 뜻을 받아들이기로 결정했다. 좋은 선택을 하기보다는 옳은 선택을 하기로 한 것이다.
수익성보다는 가족들이 원하는 것을 함께 하는 것이 옳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당시에는 많이 아쉬웠지만 시간이 지난 지금, 개인적으로 당시의 선택과 결과에 만족한다.
당시 부족했던 수익성은 쿠팡으로 옮겨간 동료의 구역을 추가로 받으면서 자연스레 해결이 되었고, 가족공동체의 결속은 그 일을 계기로 더 단단해졌기 때문이다.
그리고 개인적으로 혁신적인 기업들의 특징인 각종 수치(당일배송률, 반품수거율, 각종 수행지표 등)를 토대로 한 철저한 조직관리와 유연하게 자주 바뀌는 근무조건은 너무나 비인간적이라 여겨져 거부감이 컸다.
수익이 낮고 짐이 무겁고 크지만 택배기사에 대한 구속성이 상대적으로 낮고, 공권력의 보호를 기대할 수 있는 현 근로환경을 우리 가족들이 더 선호한 것 같다.
사실은 어쩌면, 가족들과 택배를 하면서 나의 가슴속에 무의식적으로 '함께한다면 어떤 상황이라도 헤쳐나갈 수 있겠다.'라는 믿음이 강하게 뿌리내린 건 아닐까 싶어지기도 하다.
불안감, 두려움은 늘 사람을 모이고, 함께 하게 만든다.
힘겨운 삶의 문제들을 직면할 때마다 사람들은 본능적으로 '함께하기'를 선택한다. 지진으로 수많은 사람들이 삶의 터전을 잃어버렸을 때, 지인들과 가족들의 집에 함께 살면서 <공유주택>, <셰어하우스>라는 새로운 주거스타일을 탄생시켰다.
<공유주택>이란 주방, 거실 등 함께 공유하는 공간과 개인공간으로 구성하여 다수의 입주자가 효율적으로 사용하도록 설계된 주택을 말한다.
한 공간에 여러 사람들이 모여산다는 물리적인 의미보다도, 지진 등 천재지변이나 급변하는 사회 속에서 직면하는 다양한 문제들(주거빈곤, 육아, 고독, 높은 생활비 등 경제적 문제들)을 개인이 아닌 공동체의 문제로 함께 해결할 수 있다는 것에 더 큰 의미가 있다.
오늘날 우리가 직면하는 각종 삶의 문제들이 점점 더 힘겨워지고 예측불가하게 급변하는 상황에서, 공동체란 정치적 이념이나, 개인적 취향과는 별개로 가장 효과적인 선택적 대안으로 그 비중이 점점 더 커져만 가고 있다.
'토니 셰이'같은 혁신적인 사업가의 강력한 리더십보다 공동체적인 그것에 비전의 달성여부가 좌우되기도 하기 때문이다.
평범한 한 가족의 가장인 나에게도 가족공동체의 힘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사실을 택배를 하면서 더욱 절실하게 느끼게 되었다.
그렇다면 가족공동체를 이끄는 리더십은 도대체 어떤 것일까?
우연히 <네오클래식> 다큐를 시청하면서 피아니스트 <윱 베빙>이 자신이 사는 마을의 한적한 거리에서 연주하는 장면을 보았다.
굴다리 밑에 놓인 야외피아노에서 그가 잔잔히 피아노를 연주하고 길을 가던 행인들 중 몇몇이 우연히 발걸음을 멈춘 채 그의 연주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격리된 우아한 클래식 무대를 벗어나 평범한 일상의 거리에서 연주하는 피아니스트의 모습은 너무나도 편안하고 친근하게 와닿는다.
광고카피라이터로 일하다가 피아니스트로 활동하게 된 그는 <네오클래식>을 대표하는 피아니스트 중 한 사람이다.
뿌리는 클래식음악에 두고 있지만 동시대 청중의 감각과 맞닿은 '신(新) 클래식'을 추구하는 <네오클래식 (Neo Classic)>은 형식이 간결하고 편안하다.
그래서일까 불멍을 하듯 생각을 비우고 듣게 된다. 잔잔한 피아노의 선율은 삶의 방향을 잃어 지친 이들을 위로하고, 듣는 청중들의 마음을 편안하게 어루만지는 공감친화적인 네오클래식은 공감을 결코 강요하지 않았다.
네오클래식 피아니스트처럼, 꾸밈없이 편안하게 청중을 대하며 강요하지 않는 공감을 이끌어내는 간결하고 편안한 표현력을 가진 그런 모습이 이상적인 가족공동체의 리더십이 아닐까 생각한다.
'유토피아'는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가 결코 완벽할 수 없기에 훨씬 나은 세상을 꿈꾸며 지금 실현 가능한 것을 실천하는 태도를 가지게 해 준다.
하지만 '나우토피아'는 불완전해도 거친 현실을 천국으로 여기며 살아가는 모습을 의미한다.
나에게 가족공동체는 '나우토피아(Nowtopia)'를 의미한다. 아내는 나는 이상주의자이고 아내와 아들은 현실주의자이니 가족으로 합쳐져 '나우토피아'가 되는 것이라고 재미있게 표현했다.
자본의 컬트가 지배하는 삶 속에서 각자도생(各自圖生) 하기보다는 공동도생(共同圖生)하는 방식으로 힘겨운 상황을 이겨내고 회복하려 한다. '네오클래식'하게 서로에게 관심과 격려를 주고받으며 느리게 먼 길을 우리 가족들은 가는 중이다.
아들은 자작곡 <alright>에서 스스로를 알아가려 늘 무언가를 부지런히 뒤쫓지만 누구도 신뢰하지 못한다는 사실만 확인하는 삶이 그저 공허하고 허무하다고 했다.
안전한 돈의 보금자리를 간절히 원하며 상류를 거슬러 올라가다가 지느러미를 잡혀버린 물고기처럼, 그런 모습을 물끄러미 쳐다보는 시선들이, 현실이 너무 싫어 욕만 나온다는 아들이다.
택배를 돌리며 도망치듯 현실을 외면하지만 외로움과 존재에 대한 고민에 시달린다.
힙합의 순수함을 좋아하지만, 한국이라는 현실 속에서 살아가려면 돈의 허세 앞에 잡혀버린 지느러미 같은 처지를 벗어날 수 없기에, 돈을 벌기 위해 택배 한다는 아들이다.
그것이 가족을 위한 삶이고 스스로가 가치 있는 존재임을 증명하는 것이라고 믿고 버텨낸다고 했다. 허상을 쫓게 만드는 소설 쓰는 래퍼들의 엿같은 힙합은 힙합이 아니라며 부정한다.
가족과의 리얼한 삶을 담아낸 생생한 랩으로 허상을 쫓는 세상 앞에 당당하게 서는 아들의 모습을 현실속에서 반드시 보리라 소망한다.
현실이 아직 힘들지만 우리 함께 힘을 내어 더 버텨내어 보자.
항상 응원하는 영원한 팬으로 너의 뒤에 있을께. 사랑한다. 아들아.
'핫네이버후드'의 <alrigh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