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인생의 전성기.

by 코나페소아

요즘 가수 나훈아의 신곡 <기장갈매기>가 돌풍이다.


특유의 허세 섞인 마초감성과 진중한 철학적 주제가 묘하게 어우러져 가볍지 않은 흥겨움을 불러일으킨다.


뉴스에서는 최근 음원차트에서 돌풍을 일으키는 70대 뮤지션으로는 유일하다고 소개한다.


부산의 지역적 정서는 바다로 대변된다. 해운대, 광안리, 송도, 영도가 배경으로 하는 푸른 바다는 광활한 태평양과 한 몸이다.


어느 땐 잔잔하게 때론 거칠게 휘몰아치는 변화무쌍한 파도 위를 누비는 갈매기떼는 지역민들에게 자연스레 자부심과 로망이 되었다.


두세 명이라도 모여 <기장갈매기>의 원조격인 <부산갈매기>를 부르기라도 하면 목이 메어오는 감동과 가슴이 끓어오르는 열정에 쉽게 휩싸이게 된다.


전 국민이 다 아는 부산사직야구장의 유명한 떼창장면은 지역민들이 가진 뜨거운 애정을 여과 없이 그대로 보여준다.


<기장갈매기>로 사직구장이 또 한 번 자지러지게 생겼다.




흥겨운 70대 뮤지션의 돌풍을 바라보면서 인생의 전성기는 언제인 걸까 궁금해졌다.


이삼십 대를 거쳐서 오십 대를 훌쩍 넘어 곧 육십 대를 바라보는 중년이 되었다. 전성기란 이미 지난 나이라고 체념하는데 70대 가수가 부르는 <기장갈매기>는 아니라며 마구 끼룩 댄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나이를 먹는다는 것이 서글프다는 사실만 거듭 확인하게 된다. 중년이란 내 안에 아직도 뜨거운 열정과 혈기가 남아있어도 그것들이 부담스러워 슬며시 남몰래 폐기처분

하는 경우가 점점 많아지는 시기이다.


사회적 통념은 앞에 나서는 중장년은 나잇값을 못하는 거라고 여긴다. 일터나 가정에서도 어느 순간부터인지 조용히 뒤로 물러나는 편이 자연스러워진다.


이렇게 현타를 인식하는 순간, 중년들은 이런 상황들이 혼란스럽고 당혹스러워진다.


일하고 있는 택배대리점에는 고령의 택배기사들이 많이 있다. 60대를 넘어 곧 70세를 바라보는 분도 계신다.


나이에 대한 존중이라고는 형님이라는 단어하나로 간단하게 퉁치는 거친 택배세계를 묵묵히 견뎌온 그분들이 존경스럽다.


나이 든 택배기사들은 대부분 조용히 주어진 상황에 순응하는 성향이다. 속으로 다른 생각이 있어도 갈등이나 혼란을 야기하는 것을 싫어해서 웬만하면 참고 견디려고 한다.


그것이 겉으로는 나약하고 힘없어 보인다. 양아치 같은 일부 소장들이나 버릇없는 택배기사들은 그런 점을 악용해서 나이 든 택배기사에게 함부로 행동하기도 한다.


울화가 치밀어 오를만한 상황에도 형님들은 가만히 참는다. 저희들도 나이 들면 똑같이 당할 텐데 신경 쓰지 말라고 한다.


그냥 제멋대로 흘러가는 인생과 제멋대로 행동하는 인심 앞에서 참고 시간을 바라보는 나이 든 택배기사들의 모습에서 유연한 연륜의 힘을 느끼게 된다.


자신의 카르마(Karma)에 맞는 다르마(Dharma)를 따라야 한다.


카르마는 우리의 통제 범위를 벗어나는 일련의 상황들이고, 다르마는 우리 자신의 생각과 행동을 말한다.


눈앞에 벌어지는 상황 속에서 먼저 무엇이 나의 통제 범위 내에 있는지 무엇이 그렇지 않는지를 분별할 줄 알아야 한다. 그다음에 내가 통제할 수 있는 것들 중에서 가장 부합하는 생각과 행동을 선택한다는 의미이다.


이것이 나이 든 택배기사들이 가진 연륜의 힘이다.


자만심은 강자가 지닌 최대의 약점이다. 나폴레옹은 반드시 이기는 전투만 찾아다녔다고 한다.


승승장구하며 특정한 기교에 숙달된 나폴레옹은 러시아에서 자만하다 패배한다. 자만심은 강자를 스스로 무너지게 만든다.


강자에게 아첨하면서 그의 허영심을 만족시켜 더욱 교만하도록 부추길 수 있다. 강자를 무너뜨리는 약자의 비장한 무기이다.


이것이 나이 든 사람이 가진 한방을 의미이다.




꿈에는 유통기한이 없고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고들 말한다.


천재예술가 미켈란젤로는 이탈리아 피렌체의 라우렌치아나 도서관을 설계할 때가 55세였고, 63세에 성 베드로 성당을 건축한다. 최후의 심판등이 완성되었을 때는 89세였다. 독일 작가 괴테는 '파우스트'를 완료했을 때 83세였다. 칸트가 순수이성 비판을 썼을 때가 57세였다.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50세에 모나리자를 완성했다.


뒤늦게 발동 걸린 인생들의 공통점은 삶에 대한 무한한 열정을 가졌다는 점이다. 늘 뭔가를 배우는 것에서 즐거움을 찾았다.


하지만 중장년은 전략적으로 늙어가야 한다. 열정에 적절한 시련이 가미되어야 열매가 맺히기 때문이다.


KFC 창업주 할렌 샌더스(Harland David Sanders)는 64세에 창업했다. 투자자를 유치하려 1008번을 퇴짜 맞았다.


월트 디즈니도 302번의 거절을 당했다. 마쓰모토 세이초는 초등학교 학력으로 빗자루 행상을 하며 가족을 돌보았다. 750권과 1500편의 작품을 저술한 괴물 작가이다. 빗자루 행상을 하기 위한 기차여행과 지역이야깃거리를 취재하여 글 쓰는 재료로 삼았다.


최근 심리학자들이 가장 힘들어하는 경계성 성격장애에 대해 효과적으로 치료하는 변증법적 행동치료(DBT) 창시자인 <마샤 리네한> 박사의 자전적 저서 <인생이 지옥처럼 느껴질 때>를 감동 깊게 읽었다.


정신과 병동에 갇혀 지냈던 자신이 누군가를 돕는 사람으로 변신한 사실에 대해 놀라운 고백을 했다.


자신의 말이나 행동과는 무관하게 '그냥 일어났다'라고 말한다. 부모님의 곁을 떠나고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는 존재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 뒤늦게 대학을 진학하고 새로운 존재로 변모하는 이 모든 과정들이 그녀에게 자연스레 일어났고 탈출구가 되어줬다고 했다.


차가운 돌 위라도 3년을 앉아있으면 따스해진다.

이것이 고난 속에서도 지혜를 배워가는 낙관적인 인생관을 지닌 중년의 영웅들이 운명을 대하는 자세였다.


전성기는 나이가 아니라 마음에 꿈과 결심이 섰을 때 시작된다. 그것을 지표로 삼아 낡은 나를 뒤로하고 새로운 나를 찾기 시작할 때 시작된다.


내 인생의 전성기는 지금이다. 현재 진행형이다.


하늘의 별을 지표로 삼으면 어떤 폭풍우가 와도 길을 잃지 않고 항해할 수 있다.

(레오나르도 다빈치).

이전 22화갈매기 둘, 그리고 외로운 섬 하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