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매기 둘, 그리고 외로운 섬 하나.

여백의 시간이 주는 의미.

by 코나페소아

삼 일간의 연휴를 끝내고 다시 배송길에 나섰다. '클레임'을 물리겠다는 항의성문구가 적힌 커다란 반품상자를 받고 보니 '택배전투'는 이미 시작되었음을 실감하게 된다.


지난주에 태풍과 함께 내린 폭우 때문인지 귀퉁이가 젖은 큼지막한 상품이 레일을 타고 내려왔다. 점검을 해보니 나무로 된 큰 좌석탁자였는데 젖거나 파손 등은 없어 보여 그냥 배송을 진행했다.


전화를 해서 당시 상황을 설명하려다가 그만두었다. 커다란 반품박스에 큼지막하게 쓰인 항의문구를 보니 전화할 마음이 사라졌다.


애써 속상한 상황을 무시하려 했지만 예민한 아내와 아들은 신경이 많이 쓰이는 눈치다. 그렇게 사라진 태풍이 남긴 후유증을 앓듯 우리의 택배일상은 그렇게 우울하게 시작하려고 했다.




"아직 말랑말랑한 손이네. 일하던 손이 아닌데?".


경찰서에서 차량접촉사고로 사고경위서를 쓰고 지장을 찍던 중에 담당형사가 던진 말이다.


모처럼 배송을 일찍 마치고 귀가하다가 차선을 바꾸는 중에 갑자기 끼어든 승용차와 가벼운 접촉사고가 있었다.


택배는 쉽지 않다며 송충이는 솔잎을 먹듯 하던 일을 계속하는 게 더 속 편하지 않냐며 나이 지긋한 담당형사는 은근히 조언하듯 말하고는, 등을 돌려 조서를 마저 작성했다.


언젠가 배송을 마친 후 아내는 자신의 손가락을 바라보다가 나에게 내보이며 한숨을 쉬었다. 택배를 하면서 예쁜 손가락이 다 망가졌다며 속상해한다.


잠시 후 TV를 보다가 검게 그을린 얼굴로 곯아떨어진 핼쑥한 남편의 몰골을 보면서 아내는 또다시 속상해졌다.


우리의 갈라진 손가락과 멍든 팔, 다리, 그리고 상처받은 가슴들은, 도대체 무엇을 위한 상흔인 걸까 싶어진다.


배송 전 탑차 안의 짐들은 배송순서대로 차곡차곡 단단하게 쌓아 올려져야 한다.


짐들이 무너지기라도 하면 배송시간도 무너지고 마음도 무너지는 낭패를 보기 때문이다. 물건을 꼭꼭 쌓으려 할 때마다 택배 짐들이 무겁고 거칠게 반항한다.


순순하게 잘 들리지도, 끌려오지도 않는 짐들과 씨름하면서 어설픈 손길로 성벽을 쌓듯 상품을 쌓아 올린다.


배송지에서 한 짐씩 내리면서 배송하다 보면 숨박꼭지 놀이를 하는 얄미운 짐이 꼭 나타난다.

배송이 끝난 아파트의 상품들이다.


이렇게 얄궂은 짐들은 택배는 늘 내 맘 같지 않은 우리 인생과 꼭 닮아있다는 사실을 씁쓸히 확인시켜 준다. 상황을 어르고 달래는 심정으로 녀석들이 있어야 할 곳으로 다시 되돌아가서 배송하고 왔다.


서툰 몸놀림과 여린 가슴으로 배송을 하다가 주변이 서서히 어두워지면 금세 초조함과 조급함이 목구멍까지 차오른다.


설상가상, 비까지 흩날리는 밤이면 체념하듯 반쯤 넋이 나간 채 배송했다. 가족들이 저녁식사를 하는 걸까, 문틈으로 풍겨 나오는 구수한 된장찌개 냄새는 택배기사의 문밖 처지를 더욱 부각해 우울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요즘은 우리의 '말랑말랑하고 고운 손들'이 잘 단련이 되어서인지 저녁배송은 거의 하지 않는다.


탑차 벽에 붙어있는 한산해진 '크레모어 조명등'

을 볼 때마다 그때가 생각나면서 새삼스레 다행스럽고 감사하다는 생각이 든다.



막내아들의 생일날에 '프로그래머'인 큰아들이 스마트폰을 선물했다. 그리고 동생을 헬스장으로 데리고 가서 같이 운동을 하고 왔다.


식단관리와 약까지 챙겨 먹으며 철저하게 체력단련을 했다. 혼자서 스스로를 잘 관리하면서 지내는 것 같아 우리는 흐뭇했다.


아내가 아들들이 좋아하는 '껍질제육볶음'을 식탁에 올리자 감탄하며 먹는다. 맛있는지 고기를 싸달라고 한다. 아내와 함께 다시 장을 봐서 푸짐하게 싸줬다.


저녁식사 후 내 곁에 오더니 자신이 하는 업무, 성과를 스마트폰으로 보여주며 자랑스레 설명한다.


이젠 제법 프로그램 개발자 포스가 느껴진다. 슬며시 잦은 면접을 시도하는 이유를 물어봤다.


요즘 회사분위기가 좋지 않다고 했다. 경기 탓도 있지만 회사내부적으로 경영진이 물갈이되면서 사무직 인력들도 대거 해고되었다고 한다.


현재 근무환경이나 같이 일하는 부서분위기는 모두 만족스럽지만 회사의 어수선한 분위기가 가만히 있으면 안 될 것 같은 '불안감'을 줘서 늘 면접을 시도한다고 했다.


공감이 되었다.


큰아들은 일을 배우면서 열심히 또 다른 안전한 생존기회를 찾아 치열하게 전쟁하는 중이었다.


한계적 상황에서 늘 도전을 선택하는 성향은 꼭 나를 닮았다. 하지만 무모하지 않게 주변의 좋은 선배들의 조언을 들어가며 생각들을 잘 정리하는 모습을 보니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늘 긴장하지만 스스로를 단련하며 조금씩 단단해져 가는 아들이 쉽게 지치지 않았으면 좋겠다.


맘대로 안 되는 상황들을 앞으로 더 많이 경험하게 될 텐데 그 과정에서 '말랑말랑' 가슴이 방패처럼 단단해지리라 생각되니 갑자기 우리가 푸념했던 '거칠고 단단해지는 삶'에 대한 위안거리를 덤으로 발견하게 된다.


'래퍼'인 막내아들이 잠들려는 나를 껴안으며 혼잣말처럼 "우리 언제까지 이렇게 살 수 있을까?"라고 한다.


뭔 말이냐는 되물음에 엄마아빠 건강이 걱정된다

고 말했다. 막내아들에게 부모인 우리는 아들인생

의 전부다.


'자신이 원한 것들과는 멀리 떨어진 허상 속에 사는 듯한 현실'이지만 부모님과 가족을 돕는 지금의 삶이 진정으로 자신이 원하는 삶이라고 되뇌는 아들의 노래 <HOPE>를 들을 때마다 가슴이 아리면서 뭉클해진다.


이런 아들들의 살아내는 모습을 보면서 새삼 각박하고 모진 삶의 끝자락을 단단하게 움켜쥐며 견뎌야 할 의미가 저절로 와닿는다.


손가락이 갈라지고 얼굴이 검게 그을리고 온몸에 멍이 들어도 그래도 괜찮은 삶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아들들에게는 늘 자리를 꿋꿋하게 지켜주는 부모라는 존재가 필요하다. 어쩌면 우리는 거친 망망대해를 날아다니는 갈매기들과 함께 살아가는 외딴 '무인도'와 같은 처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제멋대로 들이치는 풍랑에 지쳐서 깃을 접고 날아드는 갈매기들에게 넉넉하게 품을 내어줄 때마다 무인도는 더 이상 외롭지도, 볼품없지도 않은 그런 존재로 변화된다.


가족이란 서로를 세워주고 품어주는 좌충우돌하는 과정 속에서 서로를 빛나게 한다. 그런 사실을 택배를 하면서 새삼 더 느끼게 된다.


거칠어진 손가락과 멍든 다리를 바라보면서 자족하는 감사함을, 겸허한 행복감을 배우게 된다.




다음날 출근하기 전 이른 새벽에 눈을 떴다.


아무도 방해하지 않는 고독과 정적만이 고요하게 내려앉았다. 내 인생의 여백이 느껴지는 유일한 시간이다.


택배를 처음 시작한 몇 년간은 새로 바뀐 환경에 적응하느라 여력이 없었다.


새벽에 일어나 책을 읽고 글을 쓰는 한두 시간은 나에게 참 소중하다. 삶 속에서 여백의 시간들을 늘려간다는 것은 손으로 일하며 소득을 늘려가는 그 어떤 것들보다 더 중요해졌다.


여백의 시간들은 거칠고 힘든 택배를 감당할 수 있게 나를 더 강인하게 만들어 주기 때문이다.


폭풍우가 치던 날이면 동네의 하녀들은 빗자루와 양동이를 들고 부산하지만, 소로우는 작은 집의 문을 닫고 그 뒤에 앉아 마음을 달래곤 했다.


한 겹의 작은 나무 대문 위로 쉴 새 없이 쏟아지는 바람소리와 빗소리를 들으며 그는 이 순간을 '많은 사념들이 뿌리를 박고 그 나래를 펼칠 시간적 여유를 얻을 수 있는' 가장 즐거운 시간 중에 하나로 만들었다.


낙천적이고 자유분방할 것 같은 몽테뉴는 '신장결석'과 잦은 발작증세로 고통스러운 삶을 살았다.


그는 몸이 아프거나 쑤시는 것을 느낄 때마다 한탄하며 짜증을 냈다. 체면을 차려 고통을 참아내기보다는 고함을 질러버리는 대신에 질병과 화합하며 사는 삶을 선택했다.


그에게는 자신을 고통스럽게 하는 질병들과 친밀해지려는 과정을 통해서 여태까지 해볼 수 없었던 일들을 할 수도 있다는 확신이 생겼다.


고통이 심하게 닥쳐와도 자신의 건전하게 말하고 생각하고 대답할 수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고통스러운 상황에서도 그것과는 상관없는 말과 생각들을 하며 스스로의 가진 힘을 시험했다.


그의 글에는 삶에 대한 위트와 따스한 시선이 고스란히 녹아있다. 여백의 시간은 상황을 견디게 하는 힘을 간직했다.


<월든>, <몽테뉴 수상록>. 그래서 두 권의 책이 늘 나의 책상 위에 놓여있었나 보다.


언젠가 시청한 '다큐멘터리, 길 위에 인생'의 캐나다에서 트레일러 배송기사로 일하던 중년 부부의 사연이 생각난다.


사연을 보면서 참 많은 공감이 되었다. 매일을 긴장하며 트레일러 속에서, 길 위에서 살아가야 하지만 소원이 있다면 '나중에 열심히 살았다고 자식들이 알아준다면 그것으로 족하겠다.'는 남편 분의 인터뷰가 자꾸만 생각이 난다.


그래 그거로 족한 거다. 나의 인생도 말이다.



핫네이버후드의 <HOPE>

https://youtu.be/JVHcPsS1y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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