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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레리나와 택배기사.

몸은 감정을 지배한다.

by 코나페소아

6일간의 기나긴 명절연휴가 끝난 후 예상대로 우리는 많은 물량을 배송하느라 바빴다.

어두워진 저녁시간까지 한참을 일하는데 젊은 엄마와 남자아이가 함께 다가와 말을 붙였다.


장갑을 끼셨으니 도와달라고 한다. 일손을 멈추고 따라가 보니 아파트 내부도로 바닥 위에서 아주 작은 새 한 마리가 죽어가고 있었다.


아이와 엄마는 차마 지나치지 못하다가 도움을 청한 것이다. 차갑고 뻣뻣하리라는 예상과는 달리 작은 새의 따스한 체온은 장갑을 뚫고 느껴질 만큼 강렬했다. 도로변 수풀 속으로 조심스레 내려놓자 그제야 아이와 엄마는 연신 감사하다며 환하게 웃는다.


바쁜 배송으로 인해 서둘러 되돌아왔지만 배송하는 동안 손바닥 위에서 꺼져가던 작은 생명이 발산하던 온기가 자꾸만 생각났다.




늦은 배송을 마친 후 우리는 처외조모의 장례식장을 향했다. 97세의 외할머니는 돌아가시는 순간까지도 정정하셨다. 백 년을 조금 못 채운 호상이라서 그런지 장례분위기는 애통함보다 담담했다. 사전에 이별을 짐작하고 미리 찿아뵈며 마음의 준비를 해서인지 아내도 차분했다.


큰외삼촌은 마지막 임종사연을 전하며 외할머니는 삶에 대한 집착이 아주 강하신 분이라고 했다. 생전에 원하시는 장례방식에 대해서 여쭤볼 수 없을 정도였다는 말은 의아하게 여겨졌다.


외할머니는 그리 넉넉지 않은 살림과 남편과 큰 딸을 먼저 앞세워 보내는 아픔을 겪어야만 했다. 길고도 고단했을 인생이건만 외할머니는 이승에서의 삶에 왜 그리 애착을 가지셨을까.

임종하시는 순간까지도 곁에 핸드폰을 소중하게 간직하셨다. 아내는 아마도 매일 새벽 다섯 시에 드리던 새벽기도를 위한 알람과 자녀들과 손주들의 안부문자나 통화 때문일 것이라고 추측했다.


하지만 물도 제대로 먹지 못하는 갈한 몇 날 동안 모든 기력을 쏟아내듯 소진하고 주무시듯 조용히 영면하셨다.


아마 기력이 남으셨다면 끝까지 죽음을 거부하시며 힘들게 고생하시다 돌아가셨을 거라는 큰외삼촌의 말을 들으면서 나는 손바닥 위에서 죽어가던 작은 새가 생각났다.



죽음 앞에서 사람이나 작은 새나 동등했다. 생의 마지막 순간에는 사람도, 작은 새도 삶에 대한 애착을 본능적으로 강하게 드러낸다.


마지막 숨이 다하는 순간까지도 온몸으로 거부하다 가진 기운을 모두 소진한 후에야 죽음을 체념하듯 편안하게 받아들인다.


살아있는 사람들은 장례식장에서도 죽음이라는 본질보다 그 외적인 것들에 더 많은 눈길을 주고 비교하며 스스로 상처를 받는다. 하지만 죽음 앞에서는 거액의 조의금도, 아름다운 실크 옷도, 비싼 외제 차도, 좋은 직장도 그 모든 의미가 퇴색하고 소멸된다.


죽음은 모든 가치를 원점으로 초기화하기에 그 앞에서 금수저, 은수저, 흙수저로 어떤 인생을 살아왔든 간에 모든 인생은 맨몸의 가장 공평한 순간을 맞이한다.


메멘토 모리. Memento mori.

죽음 앞에선 그저 삶에 대한 집착만이 남을 뿐이다.


삶에 대한 강렬한 집착이 추구하는 실체는 바로 '행복'이다.

우리의 본능은 과연 행복이란 무엇이기에 죽음 앞에서 그토록 갈망하는 것일까?





구글 X 신규사업개발 총책임자(CBO)였던 '모가 댓'은 2014년 어처구니없는 의료과실로 아들을 잃었다.


p448 ~ 456 눈물이 하염없이 뚝뚝 떨어졌다.

아들을 잃었다는 상실감은 창이 내 심장을 후벼 파는 기분이었다.

.. 나는 문자 그대로 미쳐가는 기분이었다.

머릿속에서 끊임없이 이어지는 시끌벅적한 생각에 귀가 먹먹할 지경이었다.


나는 문자 그대로 미쳐가는 기분이었다.

특히 단조롭게 연주되는 낯설고 기묘한 기타 음이 머릿속에서 반복해 들리기 시작했을 때는 정말 미칠 것만 같았다.


내 의지로는 머릿속의 목소리를 끊어낼 수 없었다.

머릿속의 목소리도 제정신이 아니었다.

... 나는 울었다.

꿈속에서라도 알리를 다시 만나, 모든 것을 속 시원하게 이야기 나누고 싶어 하는 마음이란 걸 깨달았다.

.. 그렇게 가슴앓이를 하는 사이에 중대한 메시지를 얻었다.


"그렇게 하면 알리(아들)가 돌아오나요?"


아내의 질문에 나는 곧바로 생각을 재정리했다.

진실은 간단했다. 우리에게 한없이 상냥했던 아들이 편안히 세상을 떠났다는 것이다.


아들이 죽었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순간

의사가 죽였다는 원망도,

과실이 있는 병원으로 아들을 데려왔다는 죄책감도,

아들 없이 남은 시간을 보낼 수 있을까 하는 두려움도 모두 진실이 아님을 깨달았다.


결국 나도 부정적인 생각을 떨쳐내면 슬픔에 짓눌려 있어야 할 이유가 없었다.

따라서 나는 아들이 이제는 없다는 슬픔에서 벗어나 아들이 어떤 아이였던가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아들이 우리 삶에 환희를 가져다준 시간을 기억했다.

아들이 떠났다는 슬픔에 사로잡히지 않고 우리를 처음 찾아왔던 때에 집중하자 행복감이 밀려들었다.



저자는 아들을 잃은 시련을 겪은 후에 진정한 행복이란 무엇인지를 엔지니어 출신답게

공학적인 관점에서 탐구하기 시작한다.


사람의 초기설정(default)은 행복하도록 설정되어 있지만 6가지의 심리적 고통(생각, 자아, 시간, 지식, 통제, 두려움)때문에 행복하지 않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행복하기 위해서는 심리적 고통을 유발하는 부정적 생각들을 멈춰야 한다는 것이 그의 결론이다.


행복을 향한 우리 여정에서 가장 큰 난제는 부정적인 감정(두려움 등)을 얼마나 효과적으로 관리해 내느냐에 달려있다.


감정은 결코 우리의 의견에 순응하지 않는다. 분명하고도 명확한 방향과 지도를 제시해야 수긍하고 따라오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행복을 바르게 설정해야 한다.

올바른 행복설정은 감정에게 분명한 방향을 제시하고 효과적인 감정관리를 할 수 있는 가이드를 제시해 줄 수 있기 때문이다.




최근 미국언론에서는 박봉과 격무에 지친 교사들이 이탈하며 '비어있는 교실'문제를 집중조명하며 화제라고 한다.


최근 미국 현지 매체 CNBC는 올해 31세가 된 마트 직원인 재기 퍼킨스의 이야기를 보도하며 현지 교육계의 현실을 비판했다. 보도에 따르면 교사를 그만두고 대형 할인 매장 '코스트코' 직원으로 재취업한 8년 차 교사인 재기 퍼킨스는 재취업 후 단 1년 만에 소득이 50% 가까이 증가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미국 교육계의 현실을 여실히 보여주는 사례로 꼽힌다. 실제로 최근 고등학교 졸업 웨이트리스 출신이 수학교사로 임용되는 사례도 있었다.

자신의 경험담을 해당 매체에 기고한 퍼킨스는 지난해까지는 교사로 일했고, 당시 8년 차를 맞이했다. 그러나 격무, 박봉, 직무 스트레스 등에 시달리던 그는 결국 정든 교직을 포기하고 코스트코 직원이 되어 새로운 커리어를 시작했다.

조지아주 코스트코 직원으로 일한 뒤 그의 소득은 50% 뛰었다고 말했다.
퍼킨스는 "지금 받는 연봉은 교사로 쭉 일했으면 15년 차에 받을 수 있는 연봉"이라고 말했다.

그는 "나는 8년 동안 공립학교, 사립학교에서 중·고등학생들에게 역사 및 언어를 가르쳤다. 2022년 마지막 학년도에 내 급여는 4만 7000달러(약 6350만 원)였다. 일주일에 60시간 일했고, 무급 초과 근무를 엄청나게 했다. 엄청난 인내력을 요구하는 일"이라며 "난 더는 (교사 일에) 성취감이나 가치를 찾을 수 없었다"라고 돌이켰다.

그러면서 "코스트코에서 근무한 지 올가을부터 1주년을 맞이하게 됐다. 지금 나는 그 어느 때보다도 더 기쁘다"라고 강조했다.

<출처 : 한국경제신문 2023.10.5>

신문기사에서는 교직이 마트직원에 비해 턱없이 낮은 연봉과 근무여건으로 인해 성취감이나 가치를 상실하고 무너져 가고 있다고 보도한다.


교사들이 성취감을 상실하고 교직을 떠나는 이유에는 내면적인 가치훼손(사회적 존중심 등)도 분명히 큰 비중을 차지한다. 그럼에도 교직의 성취감이나 가치가 마치 급여나 근무여건에 있는 것처럼 보도한 것은 교사의 진정한 행복을 크게 왜곡한 것이다.

노벨경제학상을 받은 시카고대학교 경제학자 '리베커'와 '루이스 라요'는 자신들이 발표한 진화행복함수(Evolutionary Happiness function)를 통해서 넓은 집으로 이사해도 더 넓은 집을 원하며 불만을 터뜨리는 사람들의 심리상태를 공식을 통해 객관적으로 증명해 보였다.


행복을 연구한 많은 학자들은 하나같이 외면적인 기준(물질, 재산 등)보다 내면적인 기준(관계, 마음)에 삶의 초점이 맞춰진 경우 만족도가 높다고 말한다.


수천 년 전 고대 그리스인들은 자신이 가진 잠재력을 최대한 발휘할 때, 윤리적으로 생각하고 행동할 때, 순수한 행복을 누린다고 생각했다.(eudaimonia 인간다운 삶)


우리는 생각보다 훨씬 더 고차원적이고 깊은 욕망을 가진 존재라는 사실을 망각한 채 그저 단순하게 물질적인 것으로 때우려고 덤벼들다가 낭패를 당하곤 한다.


진정한 행복은 반드시 물질적인 충족 등을 통해서 생겨나는 것은 결코 아니다. 죽음 앞에서 강렬해지는 우리의 본능적 집착은 물질적인 충족만으로 만족할 만큼 그리 단순하지 않기 때문이다.




우연히 동영상으로 중년부부 브이로그를 시청했다.

게임 IT개발자로 일하다가 한국에서 여의치 않은 상황으로 10년 전 일본으로 건너가서 생활했다고 한다. 50대에 재택근무를 하던 중에 갑작스러운 권고사직을 당하고 새로운 일자리를 찾다가 결국은 아마존 배송 기사로 취업하려고 경화물차를 사는 등 열심히 준비 중이었다.


같은 연배의 부부가, 같은 상황을 겪으면서, 똑같은 인생행로를 걸어가는 모습을 보면서 많은 공감과 위로를 받았다. 그리고 행복감을 느꼈다.

우리 부부가 택배기사가 되기까지 거쳐왔던 과정들을 남들도 똑같이 선택할 수 있다는 사실과 그리 잘못된 선택을 한 것은 아니었구나 하는 위로에서 오는 충족된 행복감이었다.


택배기사로 일하면서 사실 직장에 다니며 받는 연봉 수준 이상의 수입을 올렸을 때 느꼈던 충족감과는 분명히 달랐다. 그것보다 여운이 길고 오래 남는 감정적 충족이었다.


힘든 상황을 솔직하게 영상으로 올린 중년유튜버 부부도 해당영상에 달린 댓글들을 통해서 위로를 받았고 그 댓글들을 통해서 다른 이들이 또 위로를 받는 모습을 보며 감동을 받았다.

행복감이란 상황이 힘겹든 고통스럽든 상관없이 헤쳐나가게 하는 힘을 가졌다. 그리고 행복감은 전염성이 있다. 당사자뿐 아니라 주변에 있는 이들도 행복하게 만들었다.

우리는 이렇게 늘 행복에 도취되어 도약하고 비상하고만 싶다.




발레는 도약하는 춤이다. 날고 싶은 인간의 본성이 담겨있다.

'플리에(Pli)'는 발레의 기본자세라고 한다. 무릎을 구부렸다가 다시 펴는 단순한 동작이지만 '발레의 꽃'과 같은 동작이라고 한다.


하지만 '플리에'는 하늘로 솟는 것이 아니라 거꾸로 땅으로 내려가는 동작이다.

실질적으로는 땅으로 꺼지는 게 아니라 하늘로 향하기 위해서 에너지를 응축시키고, 위로 올라가기 위한 용수철이 되는 동작이다.


하늘로 향해 높이 비상하는 발레 동작을 하기 위해서는 이런 단순한 동작인 '플리에'에 모든 것이 달렸다.


택배는 무수하게 신체를 펴고 구부리는 동작을 반복한다. 늘 근육과 관절의 통증과 고통이 동반된다. 택배를 하면서 '스트레칭'의 중요성을 깨달았다. 아침에 스트레칭을 하고 안하고의 차이는 몹시 컸다.


단 몇 분 간의 이른 아침의 스트레칭은 근육을 풀어주어 통증과 고통을 완화시키고 혈류를 개선시켜 온종일 에너지를 증대를 기대할 수 있다고 한다.


발레리나는 도약하는 황홀감을 위해 끊임없이 아래로 향하는 '플리에'에 정성을 쏟고

택배기사는 수많은 물량을 감당하기 위해 단순한 '스트레칭'으로 세심하게 사전준비를 한다.

단순한 동작하나가 행복을 성취하기 위한 열쇠가 될 수 있겠다라는 생각도 든다.


심리학의 흥미로운 통찰 중에 하나는 몸이 감정을 지배하는 힘을 가지고 있다는 점이다. 감정의 힘이 신체에 작용하듯이 그 반대상황도 사실이라는 것이다.

반복적인 동작과 통제된 호흡이 몸의 화학작용을 변화시켜 감정을 변화시키고 단순히 자세와 얼굴 표정만으로도 그런 힘을 발휘할 수 있다고 한다.

살짝 미소를 짓는 행위만으로도 부정적인 감정과 고통을 통제하고 궁극적으로 진정한 행복으로 향하게 할 수도 있겠다라는 기대감이 생긴다.


마치 '플리에'나 '스트레칭'처럼 단순하고 사소한 시도가 발레리나와 택배기사가 원하는 비상 하고픈 '행복욕구'를 충족시키는 실마리를 제공해 주는 것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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