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19호실로 간다
나는 오늘도 청소를 한다.
고시원, 그 좁은 방들마다 사람의 체온이 서서히 벽에 스며든다.
처음에는 딸아이 방을 치웠다.
"내 방에 들어오지 마. 내 물건 건드리지 마."
고맙다는 인사는 커녕, 돌아오는 건 가시처럼 날카로운 말뿐이었다.
그래서 시작했다.
당근마켓에 올라온 '고시원 청소 2만원' 알바.
딸아이 방을 치우며 구박받느니, 차라리 낯선 이의 흔적을 정리하며 용돈을 벌자고.
하지만 내가 이 일을 시작한 건 단순히 청소만을 위해서가 아니었다.
나는 사회보장협의체 회원이다.
복지의 사각지대에서 숨 쉬는 사람들을 찾아내는 것이 내 봉사의 의미였다.
이 일이라면, 정말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을 가까이서 만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렇게 시작된 알바가 어느덧 2년째 접어들었다.
오늘은 519호실.
원장님의 목소리에 긴장감이 감돌았다.
"방값 세 달 밀리고 그냥 나가버렸어. 살림살이는 다 두고."
문을 여는 순간, 냄새가 덩어리째 밀려왔다.
곰팡이, 담배, 눌은 고기 냄새, 그리고 시간의 먼지까지.
방은 그대로 멈춰 있었다.
버려진 삶처럼.
책상 위에는 편지 한 장.
"우리, 이제 그만하자."
깔끔한 글씨체.
옆에는 반쯤 타다 만 담배들, 무심히 떨어진 라이터 몇 개.
구석에 놓인 임신테스트기. 선은 두 줄.
브라자 하나가 수건 위에 무심히 얹혀 있었다.
서랍에는 수첩.
삐뚤빼뚤한 글씨로 써 내려간 날짜들과, 한순간에 끊겨버린 일정들.
언젠가 시작하려 했던 삶의 목록들.
벽에는 접힌 채로 말라붙은 꿈이 있었다.
나는 청소를 하면서 자꾸만 생각했다.
이 방의 주인은 누구였을까.
도망친 걸까, 버림받은 걸까.
진심으로 사랑했을까, 아니면 책임을 피했을까.
이 사람은 지금 어디에서, 어떤 표정으로 살고 있을까.
혹은 살아는 있을까.
청소를 끝내고 나는 잠시 손을 멈췄다.
이 사람은 도움이 필요한 사람이었을까?
내가 사회보장협의체 회원으로서, 무언가 해줄 수 있었던 사람일까?
무심코 지나쳤던, 방 한 칸의 흔적들이
누군가의 절규, 혹은 마지막 흔적일지도 모른다는 걸
나는 그제야, 뼈저리게 깨달았다.
혹시 돌아올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다 버려도 된다는 원장님의 말씀을 어기고
그의 연애편지와 작은 소지품을 조심스레 보관해 두었다.
혹시라도 다시 돌아온다면,
혹시라도 또 다른 '519호'가 나타난다면.
519호실.
그저 버려진 방이 아니라,
한 사람의 인생이 다녀간 자리.
청소라는 이름으로 나는 오늘도 누군가의 이야기를 닦아낸다.
그리고 조용히 문을 닫는다.
다음 방으로, 또 다른 사람의 삶을 마주하러 간다.
어쩌면 그들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희망을 품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