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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인생수업 08화

나이를 초월한 이야기

봉사에 정년이 있나?

소소한 행복


1장. 새로운 시작

47년생이면 올해 78세. 김씨는 거울 앞에서 회색빛 머리를 매만지며 스스로에게 물었다.

"이 나이에 봉사라니..."

아내 영순이는 부엌에서 도시락을 싸며 말했다.

"여보, 나이가 뭐 대수라고. 우리가 아직 건강한데 누군가를 도울 수 있다면 그게 얼마나 좋은 일이에요."

김씨는 고개를 끄덕였다. 퇴직 후 5년이 지나도록 집에만 있으니 답답했다.

아내가 제안한 지역 자원봉사

활동이 새로운 활력이 될 수 있을 것 같았다.


첫 번째 봉사의 날. 오전 8시, 부부는 손을 잡고 복지관으로 향했다.

영순이는 오전에 급식 배식 봉사를,

김씨는 탁구 동아리에 참여한 후 오후 2시에 만나기로 했다.

"행복팀이라니, 이름도 참 좋네요."

복지관 담당자가 웃으며 말했다. 오늘은 새로운 봉사자들이 많이 참여했다고 했다.

김씨와 영순이 부부 외에도 뜨개질을 좋아하는 박씨(47년), 운동을 좋아하시는 이 씨(47년), 그리고 경험이 많은 젊은 봉사 코디네이터 미영이까지.


2장. 첫 만남

오후 2시 정각. 회의실에 모인 사람들을 보며 미영이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생년월일을 확인하니 세 분이나 47년생이셨다. 78세. 자신의 할아버지 나이였다.

'이 분들이 봉사를...?'

하지만 그 생각은 금세 바뀌었다. 모두들 정시에 도착했을 뿐만 아니라, 오전 활동을 마치고 온 얼굴들이 생기가 넘쳤다.

"안녕하세요. 저는 김상규입니다. 아내 영순이와 함께 왔어요."

"박혜자예요. 뜨개질 동아리에서 왔습니다."

"이철수입니다. 오전에 탁구 치고 왔어요. 하하."

미영이는 이들의 밝은 에너지에 감동받았다.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는 말이 이런 뜻이었구나.

"오늘은 문고리 키트를 만들어보겠습니다. 독거노인분들께 전달할 예정이에요."

작업은 간단했다. 아래쪽에 응원 메시지가 적힌 스티커를 붙이고,

위쪽에 간편식을 테이프로 고정하는 것이었다.


3장. 알콩달콩 부부의 일상

"여보, 테이프 길이가 짧네요."

"스티커를 중앙에 더 정확히 붙이세요."

영순이의 꼼꼼한 지적에 상규는 그저 웃으며 묵묵히 작업을 계속했다.

50년을 함께 산 부부의 호흡이었다.

"부부 사이가 보기 좋으시네요."

혜자 씨가 웃으며 말했다.

"아이고, 뭘요. 이 양반이 말을 안 들어서 제가 계속 잔소리를 해야 해요."

"그래도 사랑스러우시잖아요. 저도 혼자 사니까 부럽습니다."

.

"사실 저희도 처음엔 봉사를 할 수 있을까 걱정했어요. 나이도 많고... 하지만 해보니까 오히려 우리가 더 많이 받는 것 같아요."


4장. 색종이 하트와 추억

다음 달 봉사에서는 색종이로 하트를 접어 비타민을 넣는 작업을 했다. 오랜만에 만지는 색종이였다.

"이거 어떻게 접는 거예요?"

영순이가 헤매고 있을 때, 혜자 씨가 다가왔다.

"제가 알려드릴게요. 어렸을 때 많이 접었거든요."

"고마워요. 손재주가 영 없어서..."

하지만 영순이는 금방 요령을 터득했다. 젊었을 때 미싱으로 바느질을 자주 했던 경험이 도움이 되었다.

"이불도 직접 만들어 입으셨다니, 정말 대단하세요."

미영이가 감탄하며 말했다.

"그때는 다 그랬어요. 없어서 못 만든 게 아니라, 직접 만드는 게 당연했던 시절이었죠."

상규가 이야기를 이어받았다.

"저는 월남전에도 갔다 왔어요. 그때 제가 스무 살... 지금 미영이 씨보다도 어렸을 거예요."

"정말요? 그럼 전쟁도 경험하셨네요."

"힘든 시절이었지만, 그래서 더 소중한 것들을 알게 됐어요. 평범한 일상, 가족과 함께하는 시간, 그리고 남을 도울 수 있다는 것..."


5장. 깨달음

철수 씨는 작업하면서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제가 혼자 살다 보니까 외로울 때가 많았어요. 그런데 여기 와서 이렇게 함께 일하고 이야기하니까 마음이 따뜻해져요."

"맞아요. 저희 부부도 집에만 있으면 서로 잔소리만 하게 되는데, 이렇게 밖에 나와서 좋은 일을 하니까 기분이 좋아요."

혜자 씨가 손을 멈추고 말했다.

"사실 처음엔 우리가 도움을 받을 나이가 아닌가 생각했어요. 78살이면... 하지만 나이는 정말 숫자에 불과한 것 같아요. 마음만 젊으면 뭐든 할 수 있어요."

미영이는 이들의 말을 들으며 가슴이 뭉클해졌다. 젊은 자신보다 훨씬 열정적이고 성실한 모습에 오히려 배울 점이 많았다.

6장. 진정한 봉사의 의미

"쉬는 시간 가져요."

미영이가 말했지만, 아무도 손을 멈추지 않았다.

"괜찮아요. 이 정도는 쉬워요."

"집에서 TV 보는 것보다 훨씬 재미있어요."

"빨리 끝내고 더 많이 만들어야죠."

이들의 부지런함과 열정에 미영이는 다시 한 번 감동받았다.

봉사는 나이와 상관없이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것이구나.

작업이 끝나갈 무렵, 상규가 조용히 말했다.

"미영이 씨, 우리 같은 늙은이들이 와서 도움이 되나요?"

"무슨 말씀이세요. 오히려 저희가 더 많이 배우고 있어요. 성실함, 끈기, 그리고 진정한 봉사 정신을 배우고 있습니다."

영순이가 웃으며 말했다.

"우리도 처음엔 걱정했어요. 하지만 해보니까 나이는 정말 상관없더라고요.

오히려 경험이 많으니까 더 도움이 되는 것 같아요."


7장. 소소한 행복

봉사가 끝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 세 명의 47년생들은 함께 걸었다.

"오늘도 좋은 하루였네요."

"네, 정말 뿌듯해요."

"다음 달에도 또 만나요."

미영이는 뒤에서 이들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진정한 봉사란 이런 것이구나. 거창한 것이 아니라 소소한 일상 속에서, 자신이 할 수 있는 작은 일들을 기꺼이 나누는 것. 그리고 그 과정에서 서로가 행복해지는 것.

나이는 정말 숫자에 불과했다. 중요한 것은 여전히 뛰고 있는 따뜻한 마음이었다.


8장. 계속되는 이야기

그 후로도 매달 봉사는 계속되었다..

78세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세 분은 누구보다 열정적이었다.

오히려 젊은 봉사자들이 그들에게서 배우는 경우가 더 많았다.

"경험이 이렇게 소중한 자산이 될 줄 몰랐어요."

상규가 어느 날 말했다.

"젊었을 때는 바쁘다는 핑계로 남을 돌볼 여유가 없었는데, 이제야 진정한 나눔이 뭔지 알겠어요."


9장. 전해지는 감동

복지관에는 감사 편지들이 쌓여갔다.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만들어주신 음식이 정말 맛있었어요."

"마음이 담긴 선물을 받고 하루 종일 기분이 좋았습니다."

"나이 드신 분들이 우리를 위해 이렇게 애써주시니 감사할 뿐입니다."

이런 편지들을 읽을 때마다 봉사자들의 얼굴에는 미소가 번졌다.

"우리가 주는 것보다 받는 게 더 많은 것 같아요."

혜자 씨의 말에 모두가 고개를 끄덕였다.


10장. 삶의 완성

1년이 지났다. 행복팀의 명성은 지역사회에 널리 퍼졌다.

나이 든 봉사자들의 열정과 성실함이 많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었다.

"우리 팀에 지원하고 싶다"는 사람들이 늘어났다.

젊은 사람부터 나이 든 사람까지. 나이와 상관없이 함께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것이다.

어느 봄날, 복지관에서 감사 행사가 열렸다. 상규와 영순이 부부, 혜자 씨, 철수 씨는 감사패를 받았다.

"1년 동안 한 번도 빠지지 않고 봉사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박수 소리가 울렸다. 하지만 그들에게는 감사패보다 더 소중한 것이 있었다.

매일 아침 일어나는 이유, 누군가를 기다리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 자신이 여전히 필요한 존재라는 것.


영원한 행복팀

"나이가 들어서도 할 수 있는 게 이렇게 많은 줄 몰랐어요."

영순이가 말했다.

"정말 그래요. 오히려 나이가 들어서 더 여유롭게, 더 깊이 봉사할 수 있는 것 같아요."

상규가 대답했다.

그들은 오늘도 복지관으로 향한다. 78세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아니 78세이기 때문에 더욱 소중한 시간들을 만들어가고 있다.

봉사란 거창한 것이 아니었다.

작은 관심, 따뜻한 마음, 그리고 기꺼이 나누려는 의지. 그것이면 충분했다.

나이는 정말 숫자에 불과했다. 중요한 것은 여전히 따뜻하게 뛰고 있는 마음이었다.

행복팀의 하루는 오늘도 계속된다.

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을 만들어가며, 나이를 초월한 아름다운 연대를 보여주며.


그들의 웃음소리가 복지관 복도에 울려 퍼진다.

78세의 청춘이 만들어내는 가장 아름다운 선율이다.

"진정한 봉사는 나이를 가리지 않는다. 오히려 오랜 세월의 경험과 여유로움이 더 깊이 있는 나눔을 만들어낸다. 소소한 일상 속에서 찾아낸 행복, 그것이 바로 삶을 완성하는 가장 아름다운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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