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가 학교 임원이 되면 엄마도 자동으로 바빠진다

세아이의 엄마

아이가 학교 임원이 되면 엄마도 자동으로 바빠진다

1. 갑작스러운 카톡

아들에게서 카톡이 왔다.

"학부모 오지 마.""아무도 안 온다고 하니까."

아마 학부모 공개수업 날이었나 보다. 어쩐지 일정표에 '중학교 2시'라고 적혀 있었는데, 어제는 도무지 그 메모가 기억나지 않더니 그게 오늘이었나 보다.

점점 나의 기억력이 쇠퇴해지면서 달력에 글자가 많아지기 시작했다.

2. 첫 번째 봉사, 교통 폴리스

첫 교통 폴리스를 담당하던 날, 8시 30분까지 학교로 가서 조끼로 갈아입고 사거리에서 아이들 등교 모습을 지켜보았다. 2년 전 스쿨존 보행안전지도사로 1년간 일했던 추억이 떠올랐다.

시청 공문에 올라온 일자리 사업을 컴퓨터 선생님이 알려주셔서, 아무 생각 없이 워드로 배운 대로 사진 넣고 도장 넣고 문서 작성하듯 지원해보았다.

면접까지 받게 되었을 때 '뭘 물어보실까? 도로교통법 공부해야 하나?' 걱정했는데, 정작 "스쿨존에서 과속했을 때 벌금이 얼마냐?"는 질문에 당황했다.

"전 운전을 잘 안 해서 벌금이 얼마인지 모르겠습니다."

얼마 만에 느껴보는 합격 통지였는지! 집 바로 앞 초등학교가 직장이니 얼마나 좋은가. 2월에 면접 보고 3월 입학식 날 나도 첫 출근을 했다.

3. 아침마다 깃발을 들고

아침에 1시간 동안 깃발 들고 있는 일. 쉬우면 쉽고, 힘들다고 해서 안 해도 되는, 하는 시간만큼 월급 가져가는 이 얼마나 좋은 직장인가.

나보다 젊은 엄마, 정년을 보낸 언니, 그리고 나. 이렇게 셋이 뽑혔다. 난 교문 앞을 배정받아 경비원의 호루라기 소리와 8시 40분쯤 나오시는 교장선생님과 나란히 교문을 지키고 있었다. 승리의 깃발처럼.

교장선생님은 어찌나 다정하신지, 아이들의 인사를 하나하나 받아주셨다. 아이 3명을 키우면서 해외에 있어서 새마을 어머니회나 녹색 어머니회 한 적이 없었는데, 봉사가 아닌 돈 받고 일하는 내가 어찌나 자랑스러운지. 3월은 천천히 흘러갔다.

4. 종알종알, 등교길의 아침은 빛난다

바로 옆에 유치원과 병설초등학교가 있어 지나가는 아이들이 귀엽고 사랑스러웠다.

아침마다 아이를 태워주는 차들이 있는데, 엄마랑 헤어질 때 손짓하며 "빠이빠이!" 하는 모습, 좋은 차에서 내리는 아이, 핸드폰만 쳐다보며 등교하는 아이, 까르르 웃으며 3명이 똘똘 뭉쳐 다니는 아이, 비 오는 날이면 밖에 나온 지렁이 보려고 몰려드는 아이들. 하나하나 소중한 아이들이었다.

벚꽃이 떨어지는 계절, 한 아이가 떨어지는 벚꽃을 잡아 나한테 주었다. 이 얼마나 순수하고 아름다운 시기인지. 속으로 그 아이한테 '건강하고 공부 잘하게 해달라'고, 받은 벚꽃을 소중히 주머니에 넣으며 소원을 빌었다.

하원 때가 되면 엄마들은 간식 들고 나와 축구학원으로 보내기 위해 모였다가, 우르르 태워 가고. 방과 후에서 만든 작품을 들고 하나씩 하원하는 모습이 생생했다.

5. 동료들

한 분은 체육관을 하셨던 분이라 몸을 가만히 두지 않으시고 계속 움직이셨다. 역시 운동하셨던 분이라 주말에는 산에도 다니신다고 건강을 자부하셨는데, 어느 날 깁스를 하고 출근하셨다. 산에서 굴러서 다치셨다고. 다치셨으면 쉬셔야 하는데 굳이 나오셨다.

홀로 손주 하나를 키우고 있는 할아버지도 계셨다.

또 한 분은 근무시간에 도시락을 싸오셔서 40분 동안 밥을 드셨다. 같이 쓰는 휴게실에서 도시락을 40분 동안 천천히 드시며, "일자리에서 무리해서 일하지 마시고 사고 나지 않도록 조심히 일하라"고 하셨다.

음식 냄새도 짜증이 났고, 음식물 흘리시는 것도 못마땅했다. 아이들이 교실에 있을 때 잠시 쉬는 시간의 휴게실이 짜증나서 밖에서 서성이며 보냈다.

6. 변해가는 마음

하루하루 지나며 멍해졌다.

'노인네들이나 하는 일이 아닌가.'

내 알바가 부끄러워지기 시작했다.

7. 시간이 흘러

매일 아침 초등학교에서 보던 옆집 아이가 이제 중학생이 되었다. 벚꽃을 준 수줍어하던 아이는 중학생이 되더니 아가씨처럼 예뻐졌다.

그 아이를 보니 문득 깨달았다. 내가 깃발을 들고 서 있던 그 시간들이 헛되지 않았다는 것을. 아이들의 안전한 등하교를 위해, 그들의 소중한 일상을 지키기 위해 내가 그 자리에 있었다는 것을.

"아, 이제 급식 모니터링 봉사가 남았구나."

아들의 또 다른 카톡을 보며 씁쓸하게 웃었다.

8. 그런데 이번엔 고3 딸이다

이 글을 쓰고 있는데 남편에게서 톡이 왔다.

"고3 딸아이 진학 담임과의 상담 어찌 되었냐고."

딸에게 오늘 5시에 상담 잡으라고 이야기했는데 대답이 없다. 왜 아이들은 부모가 학교 오는 걸 싫어할까?

초등학생 때는 그래도 "엄마 왔다!" 하며 반겨주던 아이들이, 중학생이 되더니 "엄마 오지 마"로 바뀌고, 이제 고3이 된 딸은 아예 대답조차 하지 않는다.

아이가 학교 임원이 되면 엄마도 자동으로 바빠진다는 말이 정말 맞나 보다. 그런데 이제는 임원이 아니어도 바쁘다. 입시라는 거대한 산 앞에서 부모도 덩달아 전전긍긍하게 된다.

9. 모의고사 응원 봉사

얼마 전 학교에서 공지가 왔다.

"모의고사 응원 봉사 신청 받습니다. 사인펜과 비타민 나눠주는 봉사입니다."

또 시작이다. 아이들 격려한다고 새벽부터 일어나 집안일을 끝내고, 사인펜에 "파이팅!" 스티커 붙이고, 비타민 하나하나 투명 봉지에 담는다.

고3 딸은 여전히 시큰둥하다.

아이들 한 명 한 명에게 응원 메시지를 손글씨로 쓴 엄마들.

우리는 교문 앞에서 졸린 눈을 비비며 아이들을 맞이한다. 모의고사를 치러 오는 아이들의 표정은 긴장되어 있고, 어떤 아이는 이어폰을 끼고 음악을 들으며 마음을 달래고 있다.

"파이팅! 열심히 해!"

우리의 응원에 대부분의 아이들은 어색해하며 고개만 살짝 끄덕인다. 하지만 종종 "고맙습니다"라고 작은 목소리로 인사하는 아이들도 있다. 그 순간 새벽잠을 설쳐가며 준비한 모든 수고가 보상받는 느낌이다.

10. 엄마의 마음, 아이의 마음

모의고사가 끝나고 집에 돌아온 딸에게 물었다.

"어땠어? 엄마들이 나눠준 사인펜이랑 비타민 도움이 됐어?"

"음... 그냥 그랬어. 근데 엄마, 다음에는 정말 안 와도 돼. 친구들이 다 쳐다봐."

순간 서운했다. 새벽부터 일어나 정성껏 준비한 마음이 아이에게는 그저 '부담'일 뿐이라니.

하지만 문득 깨달았다. 아이들이 부모의 학교 방문을 싫어하는 이유를. 그건 우리가 부끄러워서가 아니라, 아이들이 독립하고 싶어서다. 자신만의 공간에서 또래들과 어울리며 자신의 세계를 만들어가고 싶어서다.

벚꽃을 주던 초등학생 때의 순수함에서, 부모를 피하고 싶어하는 고등학생 때의 독립심까지. 그 모든 과정이 아이들의 성장이었다.

11. 그래도 우리는 간다

그래도 우리는 간다. 아이들이 싫어한다고 해서, 부담스러워한다고 해서 그만둘 수는 없다.

다음 달에는 또 다른 봉사가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체육대회 도시락 봉사, 급식 모니터링, 학교 환경 정화 활동... 끝이 없다.

아이가 학교 임원이 되면 엄마도 자동으로 바빠진다. 하지만 이제는 안다. 임원이 아니어도, 초등학생이 아니어도, 심지어 아이가 대학생이 되어도 우리는 여전히 바쁠 것이라는 걸.

왜냐하면 그것이 엄마의 운명이기 때문이다. 아이들의 뒤에서, 때로는 앞에서, 보이지 않는 곳에서 묵묵히 응원하는 것이 우리의 역할이기 때문이다.

아이의 일정이 곧 나의 일정이고,
아이의 삶 한가운데에 우리가 함께 있었다.
벚꽃 한 송이, 사인펜 하나, 깃발 하나에 담긴 마음을
언젠가 아이도 알게 될 것이다.
그날을 위해, 오늘도 우리는 달력에 일정을 적는다.
왜냐하면 우리는,
엄마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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