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시대 배달 기사의 좌충우돌 일기
코로나19로 세상이 멈춘 그때, 나는 마스크를 목에 걸고 자전거와 함께 도시를 누볐다. 배달 기사라는 새로운 정체성으로 말이다.
GS25 전문 배달왕의 탄생
처음 시작은 GS25 전용 배달 앱이었다. 편의점만 배달하는 특이한 앱이었는데, 호출음이 울리면 파블로프의 개처럼 조건반사로 자전거에 올라탔다. 문제는 그 당시 GS25가 집에서 꽤 멀리 있었다는 것. 컵라면 하나 배달하러 왕복 30분을 달리는 것도 일상다반사였다.
"아, 진짜 컵라면 하나 때문에..."라고 중얼거리면서도 페달을 밟았다. 돈은 돈이니까.
파리바게뜨의 달콤 쌉싸름한 추억
파리바게뜨 전문 배달 앱도 설치했다. 단가 2천 원이라 푼돈 같았지만, 빵은 가볍고 향긋해서 배달하기 좋았다. 문제는 케이크였다.
생크림 케이크 한 판이 주문 들어오는 순간, 내 자전거 바구니는 무용지물이 되었다. 케이크 박스를 한 손에 꼭 쥐고, 다른 한 손으로 핸들을 잡고 달려야 했다. 마치 곡예사가 된 기분이었다.
"제발 흔들리지 마라, 케이크야..."라고 속으로 빌면서 엄청 조심조심 자전거를 탔던 기억이 생생하다.
쿠팡의 충격적인 등장
그러던 어느 날, 쿠팡 배달 앱을 깔았다. 그리고 첫 알림을 받는 순간...
"띵동 띵동 띵동!"
"어? 어? 이게 뭐야?!"
갑작스러운 큰 소리에 깜짝 놀라 폰을 떨어뜨릴 뻔했다. 첫 콜을 받고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몰라서 앱을 이리저리 만지작거리며 당황했던 그 순간. 지금 생각해도 웃음이 나온다.
배달료의 마법
쿠팡은 신세계였다. 거리와 시간대에 따라 배달료가 실시간으로 변했다. 평상시 2,800원이던 배달료가 눈 오는 날에는 무려 1만 원까지 치솟았다! 그날은 정말 로또 당첨된 기분이었다.
"오늘은 대박이다!" 하면서 눈길을 미끄러져 가면서도 신나게 페달을 밟았다.
가끔 운이 좋으면 비슷한 거리에 2개 콜을 받아서, 한 번에 두 배달을 완료하는 꿀팁도 터득했다. 이때의 성취감이란!
초밥 사건과 빵 에피소드
어느 날 초밥 배달을 했는데, 배달 완료 후 다시 벨이 울렸다. 고객이 "초밥이 쏠려있어요"라고 교환 요청을 한 것. 초밥이 쏠린다는 게 무슨 말인지도 몰랐던 초보 시절이었다.
그리고 잊을 수 없는 빵 배달 사건. 주소를 잘못 봐서 엉뚱한 동네에 배달을 해버렸다. 황급히 돌아와서 올바른 주소에 다시 배달하는 그 순간, 고객의 취소 버튼을 눌러졌다
"앗!"
결국 그 빵값을 내가 결제하게 되었고, 집에서 혼자 빵을 먹으며 씁쓸해했던 기억이 있다.
전화번호 노출의 비극
알바를 하면서 가끔 내 전화번호가 노출될 때가 있었다. 어느 날 통장업무로 전화를 했는데...
"여보세요, 빵 배달 아닌데요?"
"... 네? 저는 통장인데요?"
알고 보니 예전에 빵 배달했던 고객이 내 번호를 '빵 배달'로 저장해 뒀던 것이었다. 그 어색함이란...
비 오는 날의 액션 영화
비 오는 날 배달은 정말 액션 영화 같았다. 어느 날 빗길에서 미끄러져 넘어졌는데, 창피한 건 둘째치고 음식이 젖으면 안 되겠다 싶어서 음식을 보호하느라 내 다리가 다쳤다.
피가 철철 흐르는데도 "배달은 완료해야 한다"는 사명감으로 끝까지 배달을 마쳤다. 119를 부르고 병원에 갔는데, 코로나 때문에 수술 전 검사를 받아야 해서 바로 치료받지 못하고 깁스만 하고 집에 왔다.
지금 생각해 보면 정말 무모했다. 하지만 그때는 그게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뜻밖의 부작용, 길눈이 트이다
이렇게 동네 구석구석을 다니면서 길눈이 트였다. 나중에 사업체 조사 알바를 할 때, 그리고 지역사회보장협의체에서 음식 배달 봉사를 할 때 이 경험이 정말 큰 도움이 되었다.
"아, 여기 왔었구나!" 하면서 금방 찾아갈 수 있었다.
그때 그 시절
피크 타임에는 배달 하나 마치자마자 바로 다음 콜이 왔다. 밤늦게까지 신나게 달렸던 그 시절. 힘들었지만 나름 보람도 있었고, 작은 돈이라도 벌 수 있어서 감사했다.
코로나로 모든 게 멈춰있던 그때, 자전거와 함께 도시를 누비며 살아있음을 느꼈던 것 같다. 지금도 자전거만 보면 그때 생각이 난다.
"띵동 띵동 띵동!"
그 알림음이 아직도 귓가에 맴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