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봇이 된 날
화면 속 빨간 숫자들이 춤을 추듯 올라가고 있었다. 카카오페이 주가가 하늘 높이 치솟는 그 순간, 나는 화장품 용기 제조 공장의 시끄러운 기계음 속에 파묻혀 있었다.
드르르르륵... 드르르르륵...
끝없이 흘러나오는 컨베이어 벨트 위의 하얀 화장품 용기들. 마치 흰색 군대가 행진하듯 일정한 간격으로 내 앞을 지나간다.
"오늘 처음 오신 분들, 여기로 모여주세요!"
20명의 아르바이트생들이 무작위로 각자의 자리에 배치되었다. 나는 운 좋게(?) 포장 라인에 배정되었다.
키 크고 덩치 있는 외모 덕분이었을까?
첫 번째 미션: 용기 박스 담기
레일에서 굴러 나오는 용기를 박스에 담는다
한 순간도 방심하면 안 된다
속도는 기계에 맞춰야 한다
옆자리 첫날 아르바이트생을 보니 손이 덜덜 떨고 있었다. "이거... 너무 빨라요..." 결국 그는 다른 부서로 이동했다. 잘못 인쇄된 용기의 글자를 지우는 곳으로.
오전 9시 - 첫 용기가 굴러 나온다
오전 10시 - 손목이 아프기 시작
오전 11시 - 눈이 핑핑 돈다
오전 12시 - 나는 로봇인가?
집어넣고, 쌓고, 집어넣고, 쌓고...
머릿속이 하얘진다. 오직 흰 용기와 갈색 박스만 보인다. 생각이 멈춘다.
"와장창!"
한 번 실수하면 도미노처럼 쓰러지는 용기들. 라인이 멈춘다. 모든 시선이 나에게 집중된다. 식은땀이 주르륵.
이런 일이 없도록 정신 바짝 차리고 열심히
드디어 12시! 구내식당으로 향하는 발걸음이 무겁다.
식사제공되는 알바는 언제나 즐겁다
밥을 먹으며 핸드폰을 꺼냈다. 증권 앱을 켰다.
"카카오페이 +15.6% 상승"
클릭 몇 번으로 여기서 하루 벌 돈을 벌 수 있는데... 하는 생각이 머리를 스친다.
휴게실에 쓰러져서 눈을 감았다. 30분이 1분처럼 짧다.
1시 정각 - 다시 시작되는 지옥의 컨베이어벨트
이번엔 박스 적재 담당이다. 키와 힘이 있다는 이유로.
들어 올리고, 쌓고, 들어 올리고, 쌓고...
허리가 끊어질 것 같다. 손목이 비명을 지른다.
오후 3시 - 머리가 띵하다
오후 4시 - 온몸이 기계가 된 기분
오후 5시 - 겨우 버텨낸다
"주식만 잘 되면 이런 알바 안 할 텐데..."
중얼거리며 공장을 나섰다. 손에 쥔 건 하루치 일당과 카카오페이 한 주를 판 수익.
뒤돌아보니 야간 교대조가 들어가고 있었다. 저들도 나와 같은 마음일까?
그날 이후로 주식 차트를 볼 때마다 화장품 용기 소리가 들린다.
드르르르륵... 드르르르륵...
현장에서 묵묵히 일하시는 모든 분들에게 응원을 보낸다.
누군가의 꿈은 클릭 몇 번에 있고, 누군가의 현실은 8시간의 컨베이어 벨트에 있다.
"알바니까 견디지, 평생 직업으로는 못 할 일이야."
그때의 나에게, 그리고 지금도 어딘가에서 열심히 일하고 있을 당신에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