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기념일 대참사 - 20년 차 주부의 절규
하이텔로 만난 인연이었다.
그때는 얼굴도 못 봤으니 순전히 마음으로 빠진 거였다.
만약 처음부터 얼굴을 봤다면? 글쎄, 이 결혼은 애초에 성사되지 않았을 것이다.
동갑이면서도 왠지 시골 아저씨 같던 그 무뚝뚝한 매력(?)에 20대의 순진한 내가 넘어간 것이었다.
연애 시절 받은 선물의 총합계:
손바닥만 한 강아지 인형 1개,
하트 모양 사진 목걸이 1개,
꽃다발 1회. 이게 전부다.
결혼 전까지 말이다. 30에 결혼했는데
지금 생각해 보면 이미 그때부터 징조가 있었던 것이다.
20주년 때는 정말 기가 막혔다.
우리보다 한 달 늦게 결혼한 친구 부부는 반짝이는 금 목걸이를 선물 받았다.
하트 모양에 예쁘게 세팅된 그 목걸이가 너무 이뻐서 "어디서 샀냐?"라고 물어봤더니 친구가 친절하게 지도까지 그려줬다.
남편 친구였으니까 당연히 연락처며 주소며 디자인까지 다 알아왔다.
"여보, 이거 사줘. 주소도 있어!"
결과: 없음.
그때 금을 샀어봐 지금의 몇 배인데 재테크도 되고
작년 여성가족부 리마인드 웨딩 이벤트는 더 가관이었다.
"편지와 선물을 준비해 오세요"라는 공지를 보여줬는데, 남편이 가져온 건 핸드폰에 저장된 문자 몇 줄 뿐이었다. 선물? 그런 건 존재하지 않았다.
그 순간 내 마음속에서는 2년 치 한이 폭발했다.
다른 부부들이 정성스럽게 준비한 선물을 주고받는 모습을 보며 나는 핸드폰 화면만 바라봤다
그때의 참담함이란...
그래서 올해는 작정하고 교육을 시켰다.
"올해는 꼭 선물 사 와! 결혼기념일이야, 결혼기념일!"
드디어 올해가 왔다.
그런데 하필 성묘일과 겹쳤다. 그래도 괜찮다고 생각했다.
토요일에 성묘 다녀오고 저녁에는 멋진 곳에서 외식하자고 약속까지 했으니까.
그런데 점심때 전화가 왔다.
"여보, 하루 더 자고 오면 안 될까?"
그 순간 내 입에서 튀어나온 말: "이혼해!"
마침 통장님들도 옆에 계셨는데 얼마나 민망했는지. 하지만 어쩌겠나, 진심이었는데.
정조효 축제 모니터링으로 바쁘게 뛰어다니면서도 성묘 가는 것 하나는 뭐라 하지 않았다.
이를 갈고 참으면서 "이번에는 선물 받는다"는 희망 하나로 버텨왔는데, 그마저도 무산될 위기였다.
20년을 살아보니 깨달은 것이 있다.
남편은 절대 변하지 않는다.
하이텔 시절 그 무뚝뚝함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어떻게 이렇게 일관성을 유지할 수 있는지 신기할 정도다.
아이들은 시험공부하러 나갔고
나는 집에서 혼자 결혼기념일을 보내고 있다.
눈물 날 것 같다. 진짜로.
최근에 돈다발을 받은 친구의 페이스북에 올라온 사진이 어른거린다
이제 28일 5시간 남았다
회사에서 결혼기념일이라고 보내준 케이크만이 어제부터 오랫동안 기다리고 있다
과연 이혼할 수 있을지......
9월 28일은 결혼기념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