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인한 나무
'그림책으로 내마음 다독다독.' 도서관 강좌 제목만 봐도 따뜻한 위로가 느껴졌다. 접수하던 날, 나는 이미 상상하고 있었다. 아담한 강의실에서 그림책을 펼치며 나누는 소소한 이야기들, 각자의 마음속 상처를 조심스럽게 어루만지는 시간들을.
하지만 현실은 늘 예상과 다르다. 알바가 두 번이나 겹쳤다. 생업이 우선이었다. 첫 번째 수업 날, 나는 강의실 대신 아르바이트 현장에 있었다.
도서관에서 전화가 왔다. 예상했던 일이었다.
"죄송합니다. 일이 있어서 빠졌습니다. 다음번에 출석하겠습니다."
전화를 끊고 나서도 마음이 무거웠다. 접수만 해놓고 빠지는 수강생을 내가 제일 싫어하기 때문이다. 강사의 입장에서 생각해보면, 준비한 자료와 마음가짐이 허공으로 사라지는 느낌일 것이다.
잠시 후 다시 전화를 걸었다.
"혹시 뒤에 대기자분 있으신가요? 제가 2번 연속으로 빠지게 되어서요."
그렇게 내 출석부 이름에 줄이 그어지고, 대기자가 올라왔다. 책임감 있는 선택이었지만, 왠지 모르게 아쉬움이 남았다.
오늘 오전이 비는 날이었다. 산에 갈까 생각했지만, 취소된 수업이 마음에 걸렸다. 수강생을 싫어하는 강사가 어디 있겠는가. 혹시 모를 기회에 대한 희미한 기대를 품고, 일단 자전거를 탔다.
5킬로를 달리니 땀이 났다. 너무 더워서 저렴한 커피 체인점에 들렀다. 더 이상 1500원짜리 커피는 없었다. 아이스는 2000원으로 오른 지도 몰랐다. 통신사 멤버십 할인으로 1800원을 결제하고, 얼음을 씹으며 강의실로 향했다.
강의실에 들어서니 출석부를 만지고 계신 분이 있었다. 청바지에 작업복 같은 차림이어서 강사분인지 확신이 서지 않았다. 책 수업이니까 나중에 예쁘게 화장하시고 정장을 입으신 분이 오실 거라고 생각했다.
수업 10분 전에 도착했지만 수강생은 아무도 없었다. 앞의 두 번을 빠져서 무슨 내용을 했는지 궁금해서 일찍 온 것이었다.
강사님께 나의 사정을 이야기했다. 그런데 돌아온 답변은 예상과 달랐다.
"12명 정원 수업이고 개인적인 마음을 이야기하는 자리라서 처음 오는 수강생을 받을 수 없습니다."
"한 시간 거리를 왔어요. 그냥 뒤에 앉아 한번만 들을 수 없을까요?"
"다음번에 열리면 신청하세요."
단호한 말씀이었다.
강사님의 입장도 이해가 되었다. 12명 정원의 소규모 수업에서 개인적인 마음을 나누는 형태라면, 처음부터 함께한 사람들과의 신뢰관계나 분위기가 중요하다. 중간에 새로운 사람이 들어오면 기존 수강생들도 부담스러울 수 있다.
하지만 한 시간 거리를 와서 딱 잘라 거절당하니 서운했다. 생업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빠진 건데 말이다.
교실을 나와 다시 집으로 돌아갔다. 자전거 앱을 키고 치동천을 따라 달렸다.
페달을 밟으며 천변 길을 따라가는데, 익숙한 향기가 코끝을 스쳤다. 쥐똥나무꽃 향기였다.
쥐똥나무를 아시는가? 비록 이름이 지저분하게 들릴 수 있을지는 모르나, 꽃향기가 매우 좋고 열매는 한약재로 사용되며 울타리로 많이 사용되는 쓰임새 많은 식물이다. 우리 곁에 있으나 관심이 없으면 보이지 않는 나무다.
많고 많은 이름 중에서 왜 하필 이렇게 더러운 이름을 붙여놓았을까? 이 나무에서 열리는 검은색의 가을 열매들을 보게 되면 왜 이렇게 이름 지었는지 알게 된다. 열매의 생김새가 마치 그것과 닮았기 때문이다.
열매는 맛이 없기 때문에 그냥 먹을 순 없지만, 좋은 영양성분이 들어가 있기 때문에 한약재로 사용된다. 이 식물의 꽃말은 '강인한 마음'이다. 워낙 공해에도 강하고 병충해에도 강하기 때문이다.
자전거를 멈추고 쥐똥나무를 바라보며 생각했다.
이름은 볼품없어도 향기는 좋고, 겉모습은 평범해도 쓰임새는 많은 이 나무처럼, 오늘 하루도 그런 의미가 있지 않을까. 그림책 수업을 들으러 갔다가 거절당한 일이 처음엔 실망스러웠지만, 덕분에 치동천변에서 쥐똥나무를 만날 수 있었다.
강의실에서 누군가가 읽어주는 그림책보다, 스스로 페달을 밟으며 발견한 자연의 이야기가 더 큰 위로가 되었다. 12명이 둘러앉아 나누는 마음의 이야기보다, 혼자 맞은편하는 나무와의 대화가 더 깊은 치유를 주었다.
'강인한 마음'이라는 꽃말이 지금 상황과 묘하게 맞아떨어진다. 공해와 병충해에 강한 쥐똥나무처럼, 오늘 같은 일에도 강하게 견뎌내는 것이다.
계획했던 그림책 수업은 들을 수 없었지만, 예상치 못한 자연 수업을 만났다. 누군가 정해준 커리큘럼이 아닌, 내가 직접 발견한 교재였다. 강사가 읽어주는 책이 아닌, 내가 직접 읽는 자연의 이야기였다.
자전거 타며 자연을 관찰하는 시간이 오히려 그 그림책 수업보다 더 치유가 되었다. 그림책이 아닌 쥐똥나무가 내 마음을 다독다독해주는 하루였다.
집에 돌아와 창문을 열고 바람을 맞으며 생각했다. 치유는 정해진 시간, 정해진 장소에서만 일어나는 게 아니다. 예상치 못한 거절이 때로는 더 큰 선물로 다가오기도 한다.
다음 기수에는 미리 일정을 확실히 맞춰두고 그림책 수업을 신청할 수도 있다. 하지만 오늘 같은 우연한 만남도 놓치고 싶지 않다.
쥐똥나무의 꽃말처럼, 강인한 마음으로 살아가는 것. 그것이 어떤 책보다 좋은 교훈이 될 것 같다. 볼품없는 이름을 가졌어도 향기로 사람들을 위로하는 나무처럼, 실망스러운 하루도 결국은 나만의 방식으로 의미를 찾아가는 것이다.
치동천변의 쥐똥나무가 내게 준 선물이었다. 그림책으로 내마음 다독다독하려던 계획은 실패했지만, 쥐똥나무가 내 마음을 다독다독해준 완벽한 하루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