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은 단톡방 한 통에서
올해 초, 평소처럼 단톡방을 들여다보던 중 눈에 띈 메시지 하나. 지인이 올려준 학습평생학습관 강사채용 공고였다. 수강생으로 문턱이 닳도록 다녔던 그곳에, 이번엔 다른 이름으로 발을 디딜 수 있을까? 부담 없는 보조강사 자리. 조심스럽게 지원서를 냈다.
얼마 만에 써보는 이력서인지. 펜을 들고 빈칸을 채우는데 손이 어색했다. 그런데 더 놀라운 건 증명서였다. 왜 이렇게 많은 증명서가 필요한 걸까? 이력서에 적은 내 경력을 하나하나 증명하려니, 여기저기 전화를 돌리고 부탁을 해야 했다. 발품 팔고 손품 팔아 모은 서류들.
두툼하게 쌓인 나의 이력 증명서를 보니 괜히 뿌듯했다. '이만큼 살아왔구나.'
소집일, 설렘 반 긴장 반으로 향한 그곳엔 아는 지인들이 몇 분 계셨다.
반가운 얼굴들 덕분에 마음이 한결 편해졌다.
나의 역할은 진로체험 현장을 찾아가 강사님을 돕는 보조강사. 풍선 아트, 플라워 클래스, 베이킹, 리사이클링... 다채로운 진로체험 프로그램을 따라다니며 강사들의 노하우를 배우고, 그들의 열정을 가까이에서 느낄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초등학교 투어가 시작됐다.
담임교사에 따라 한 학년이 좌우된다는 말을 실감했다.
교실마다 전혀 다른 풍경이 펼쳐졌다.
어떤 담임선생님은 보조강사인 나에게까지 의자를 내어주시며 "앉으세요, 다리 아프시죠?"라고 따뜻하게 말을 건네셨다. 역시 아이들에게도 좋은 선생님일 게 분명했다.
아이들이 떠들 때마다 적절히 개입해 주시는 그 담임선생님 덕분에 수업은 매끄럽게 흘러갔다.
반면, 어떤 교실에선 담임선생님이 아예 들어오지 않으셨다.
또 어떤 곳에선 교실 뒤편에서 본인 업무만 보시는 분도 계셨고, 우리와 함께 진로체험에 적극 참여하시는 담임선생님도 계셨다.
정말 교실마다 풍경이 달랐다.
진로체험 강사님들도 각양각색이었다.
재료를 정말 풍성하게 준비해 오시는 샘이 있는가 하면, 노하우가 쌓여 재료는 간단해졌지만 수업은 더욱 깔끔해진 노련한 샘도 계셨다.
어떤 날은 한 아이의 방해로 수업 전체가 흔들렸다.
집중이 안 되는 아이를 달래고, 다른 아이들의 시선을 다시 수업으로 돌리는 일이 생각보다 어려웠다.
하지만 어떤 날은 아이들의 반응이 폭발적이었다.
"우와!" "진짜 신기해요!" 눈을 반짝이며 손을 번쩍 드는 아이들.
그 호응 속에서 강사님도 나도, 모두가 신이 났다.
완성된 작품을 들고 뿌듯해하는 아이들의 얼굴. 그 순간만큼은 모든 피로가 사라졌다.
우리는 모두 각자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고 있었다.
열정적으로 가르치는 진로강사님, 묵묵히 학급을 지키는 담임선생님, 그리고 그 틈에서 이것저것 배우며 손발이 되어주는 보조강사인 나.
진로체험 보조강사. 처음엔 작은 시작이었지만, 교실 안에서 펼쳐지는 생생한 드라마를 보며 많은 걸 배웠다. 아이들의 순수한 호기심, 교사들의 다양한 교육 철학, 강사들의 전문성. 모든 것이 나를 성장시키는 자양분이 되었다.
다음엔 또 어떤 교실로, 어떤 아이들을 만나러 갈까? 그 설렘을 안고 다음 날자를 챙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