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려움으로 시작된 도전
"내일이 기대되는 진로멘토링" 멘토 모집 공고를 보고 신청서를 제출한 순간부터, 나는 온갖 상상을 했다.
가정형편이 어려운 아이들이라는 말에 괜한 선입견이 생겼고, 혹시 다문화 가정 아이라면 어떻게 소통하지? 말을 안 듣는 아이면 어쩌지?
그러다 발표 날이 왔다.
"중학교 2학년 남학생, 아버지와 단둘이 거주"
헉. 죽었다. 중2 남자라니.
우리 집 아들도 중3인데, 그 또래 남자애들이 얼마나 까칠한지 너무 잘 안다.
귀여운 초등학생이나 얌전한 여학생이면 좋았을 텐데... 망했다는 생각이 머릿속을 가득 채웠다.
그런데 멘티 정보지를 자세히 읽는 순간, 눈이 번쩍 떠졌다.
"관심 분야: 요리, 영어"
어머나, 웬일이야? 나랑 똑같잖아? 갑자기 15번의 만남이 조금은 기대되기 시작했다.
원어민 친구도 소개해 줄까?
요리는 뭐부터 가르치지?
머릿속에서 수업 계획이 빙글빙글 돌아갔다.
그래도 여전히 걱정은 남아 있었다. 과연 나랑 잘 맞을까?
드디어 첫 만남의 날.
지역아동센터 문을 열고 들어온 아이를 보는 순간... 아, 이건 예상 밖이었다.
나보다 키도 크고 덩치도 큰 중2 남학생.
검은 옷을 입고 과묵한 표정으로 앉아 있는 모습이 영락없는 '요즘 애들'이었다.
"안녕하세요." "... 안녕하세요."
역시나 말수가 적었다. 이 어색한 분위기를 어떻게 깨지?
아이스브레이킹 게임과 가벼운 대화로 조금씩 얼음을 녹여갔다.
다행히 요리와 영어 이야기가 나오자 아이의 눈빛이 살짝 달라졌다.
우리나라에 이런 좋은 제도가 있다니! 멘티 한 명당 15만 원의 활동비와 시간당 3만 원(세전)의 멘토링비.
많은 금액은 아니지만, 나는 이 예산으로 최대한 알찬 수업을 준비하기로 마음먹었다.
우리의 특별한 커리큘럼:
호떡 만들기, 브라우니, 핫케이크, 마카롱 등 밀키트 요리 수업
영어 속담 필사책으로 단어 외우기
중간고사 끝나고 함께 본 좀비 영화
처음엔 "요리도 어렵네요"라며 어색해하던 아이가 점점 변해갔다.
호떡 반죽을 치대며 씩 웃고, 영어 단어를 외우며 고개를 끄덕이고, 영화를 보며 자연스럽게 감상을 나누기 시작했다.
다른 멘토들 중에는 3번 만에 끝난 팀도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우리는 달랐다. 15번을 모두 채울 수 있었다.
이제 마지막 한 번만 남았다.
알고 보니 이 아이는:
항상 검은 옷만 입지만 자기만의 스타일이 확고한 아이
또래보다 훨씬 성숙하고 생각이 깊은 아이
아버지와 관계가 좋고 가정을 소중히 여기는 아이
운동을 꾸준히 하며 자기 관리가 철저한 아이
'중2 남자애'라는 단어에서 상상했던 모든 부정적인 이미지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되돌아보니, 이 멘토링에서 더 많이 배운 사람은 나였던 것 같다.
"중2라고 다 무섭지 않더라."
이 한 문장이 내 머릿속에 깊이 새겨졌다.
가정형편, 나이, 성별로 사람을 판단했던 나 자신이 부끄러웠다.
말수가 적다고 무관심한 게 아니었고, 덩치가 크다고 거친 게 아니었다.
나는 최선을 다해 가르쳤고, 그 아이는 묵묵히 잘 따라와 주었다.
서로에게 배려하고 존중하며 만든 15번의 만남.
이제 마지막 수업이 남았다.
무엇을 준비할까 고민하다가도, 이미 우리는 서로에게 충분한 선물을 준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멘티에게는 진로에 대한 영감을, 나에게는 편견을 깨는 용기를.
이 프로그램에 지원하길 정말 잘했다.
두려움으로 시작했지만, 감사함으로 끝나는 이 특별한 만남.
중2 남학생 멘티에게 진심으로 고맙다. 네가 나의 세상을 더 넓혀주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