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격증
"어디다 뒀더라..."
서랍을 뒤지고, 파일 박스를 열어보고, 책장 구석구석을 뒤져봤다.
분명 어딘가에 있을 텐데, 그 자격증이 보이지 않는다.
여성가족부 강사 모집 공고를 본 건 우연이었다.
2026년 요리보조 강사. 자격증 필수.
"아, 맞다. 내가 그거 땄었지."
기억 저편에서 어렴풋이 떠오르는 실기 시험날의 밀가루 냄새.
2002년 7월, 제빵기능사.
그보다 더 오래 전인 1995년 1월, 한식조리기능사.
무려 20년, 30년 전 이야기다.
결국 인터넷으로 한국산업인력공단까지 찾아가서 국가기술자격 취득확인서를 발급받았다.
프린터에서 뽑아져 나오는 종이를 보는데, 묘한 감정이 들었다.
한 번도 못 써본 자격증.
아니, 정확히 말하면 쓸 생각조차 없었던 자격증.
"제과랑 제빵이랑 이론 시험은 같대요. 실기만 추가로 보면 돼요."
그 말을 듣고 "그럼 나도 한번?" 하는 마음으로 시작했다.
처음 식빵 반죽이 부풀어 오를 때의 그 신기함이란! 마치 마법 같았다.
보들보들한 반죽을 치대고, 발효를 기다리고, 오븐 속에서 황금빛으로 변하는 빵을 보면...
"와, 이거 완전 예술 아니야?"
그 감동은 딱 거기까지였다.
뒷설거지의 늪.
기름때 묻은 팬, 밀가루 범벅이 된 조리대, 끝없이 쌓이는 그릇들.
설탕 범벅이 된 손으로 또 반죽을 치대고, 새벽같이 일어나 오븐 불을 켜고...
"아, 이건 아니다."
계산기를 두드려봤다. 재료비, 시간, 노동, 전기세...
"그냥 사 먹는 게 제일 싸네."
그렇게 내린 결론.
예의상, 아니 투자한 돈이 아까워서 제빵 시험까지는 땄다.
그리고 자격증은 어딘가로 사라졌다.
나는 주방이 싫다.
먹는 건 좋은데, 만드는 건 남이 해주는 게 좋다.
이 일은 평생 안 할 거라고 생각했다.
누가 보면 벌써 합격한 줄 알 정도로 신이 났다.
이력서에 드디어, 드디어! 자격증란을 채운다.
한식조리기능사 (1995)
제빵기능사 (2002)
뭔가 있어 보인다. 아니, 실제로 있는 거니까 있어 보이는 게 맞다.
묵혀둔 자격증이 빛을 보는 순간.
세월이 흘러도 자격증은 자격증이구나.
당시엔 '쓸모없다'라고 생각했던 게 20년, 30년 후에 이렇게 기회가 될 줄이야.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글쓰기도 마찬가지 아닐까?
요즘 누가 책을 사? 누가 책을 읽어? 미디어가 넘쳐나는 세상에.
유튜브 5분이면 책 한 권 요약하고, 블로그에는 온갖 정보가 다 있고, AI는 순식간에 글을 뽑아낸다.
"누가 작가가 되겠어?"
유명한 책도 안 팔리는 시대. 베스트셀러 작가들도 먹고살기 힘들다는데.
그런데 요즘 보면 책 쓰기는 더 쉬워졌다.
책 쓰기 강의는 넘쳐난다.
전자책은 누구나 낼 수 있다.
그래서 나도 쓴다.
작가 자격증 같은 건 없지만, 오늘도 글을 끄적인다.
혹시 아나? 지금 쓰는 이 글들이 20년, 30년 후에 '작가 자격증'이 되어 어딘가 이력서에 올라갈지.
제빵 자격증처럼 말이다.
당시엔 '이걸 언제 쓰겠어?' 했던 것처럼, 지금은 '이 글을 누가 읽겠어?' 싶지만.
어디 묵혀두자.
언젠가 꺼내 쓸 날이 올 것이다.
내년 일자리를 위해 이력서를 쓰는 이 설렘처럼, 언젠가 '작가'라는 칸을 당당히 채울 그날을 위해.
오늘도 나는 예의상, 아니 미래의 나를 위해 글을 쓴다.
"자격증이 어디 갔지?" 하고 찾던 그 순간이 바로 시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