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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관 순례기

혼자 vs 함께의 온도차


10월 3일, 아모레퍼시픽 미술관 - 혼자만의 고독한 여정

"화장품 회사가 미술관을? 설마..."

작년부터 점찍어둔 곳. 드디어 혼자 출동했다.

입장하자마자 눈에 들어온 건 바닥에 깔린 천 작품들. 그리고 그 위에 자빠진 남자 동상 하나.

천장엔 지구본 몇 개가 매달려 있었다.

"이게... 뭐지?"

작품 설명을 읽어봐도 뭔 소린지 모르겠고, 물어볼 사람도 없고. 그냥 고개만 갸우뚱하다가 16,000원의 무게를 실감하며 나왔다.

배운 교훈: 혼자 가면 입장료가 더 비싸게 느껴진다.


10월 7일, 수원 미술관 - 다자녀의 위엄

다자녀 카드의 마법! 2,000원에 입장 성공.

또 바닥에 카펫이 깔려있고, 슬리퍼 신은 전시물이 있고, 천장에 뭔가 매달려 있었다.

"아... 요즘 유행인가?"

그런데 이날의 하이라이트는 마침 열린 음악회! 악기 연주 듣고, 악기 이름 맞히기 퀴즈에서 볼펜 한 자루 획득. 이게 진짜 이득이었다.

예전에 주차료 폭탄 맞은 트라우마 때문에 후다닥 나왔는데... 실수했다.

미술관에 주차했으면 2시간 무료였는데, 화성행궁에 세워놨더니 주차료가 입장료보다 더 나왔다.

미술관 쪽에 차가 많이 서 있길래 피했던 게 화근.

배보다 배꼽이 더 크다는 게 이런 거구나.


10월 9일, 과천 국립현대미술관 - 도슨트의 힘

1시, 2시, 3시, 4시... 네 타임 도슨트를 모조리 섭렵하기로 결심!

강력 추천합니다, 여러분.

전날까지는 추석 특집 무료입장이라 차가 폭주해서 되돌아가셨다 다음날은 아예 오전 9시에 도착. 그런데도 사람이 어마어마해서 2시간을 기다렸는 썰을 들으며

"이 정도면 놀이기구 타는 거 아닌가?"

저렴한 가격에 매시간 무료 도슨트까지! 진짜 알찬 투어였다.

그런데 마지막 4시 타임 도슨트를 듣고 있는데, 핸드폰이 울렸다.

유도장에서 아들이 다쳤다는 관장님 문자.

하지만 나는 꿋꿋이 5시까지 미술 설명을 듣고 귀가했다.

강철 마인드? 아니면 그냥 미련한 건가...


10월 10일, 호암 미술관 - 거미와 나, 그리고 침묵의 남편

거미를 찾아서

전시 제목: "덧없고 영원한"

작년에 거미 보러 간다고 신나게 갔다가... 거미를 그냥 지나쳐버렸다.

"어? 거미가 어딨지?"

그래서 이번엔 아예 거미만 보러 재도전!

친구들이 같이 가자고 했는데 날짜가 안 맞아서, 결국 남편과 함께 출동.


대화 제로의 미술 관람

"자기야, 저기 봐!" "..."

대화도 없이 각자 돌았다.

친구들이랑 가면 "야 이거 봐봐!" "이게 뭐야?" 하면서 한 작품을 30분도 볼 수 있는데, 남편이랑 가니까 그냥 조용히 스쳐 지나가기만 했다. 사진 한장도 남기질 못했다

그 예쁜 희원에서 사진한장 없이

결과: 한 시간 만에 퇴장.


공부 안 하고 간 죄

문제는 여기서부터였다.

공부를 안 하고 갔더니 작품이 하나도 재미없었다. 아름다운 것도 없고, 뭔가 무겁고 어둡고...

"이게 뭐지? 왜 이렇게 우울해?"

나중에 알고 보니 작가의 아픔을 나타낸 거였다.


거미 탄생 비화 - TMI 주의

루이즈 부르주아, 그 유명한 거미 작가.

모성애를 강조하기 위해 거미를 만들었다고?

그런데 스토리를 들어보니... 가정교사와 바람난 아빠를 미워하는 작가의 마음이 담긴 작품이었다.

"아... 그래서 이렇게 무서운 거구나..."

솔직히 작품이 마음에 안 들었다.

거미는 봤다. 분명히 봤다. 근데 이게 내가 원하던 감동은 아니었다.

거미는 컸지만, 내 기대는 작았던 하루.


10월 11일, 청주 국립현대미술관 - 친구들과 함께라는 마법

오랜만에 친구들과의 나들이라 알람보다 먼저 일어났다. 이게 얼마만인가! 이 설렘!

9시 병점역 집합. 난 일찍 도착해서 주변 탐색 중.

그런데...

한 친구는 약속 시간이 다 됐는데 연락 두절. 나중에 보니 비행기 모드였다고. "소리를 못 들었어~"

또 한 친구는 무료 주차 찾다가 10분 지각.

우리의 시작은 삐걱거렸지만

청주로 가는 길

수다 떨며 가니 지루할 틈이 없다. 웃음꽃이 만발한 차 안. 화창한 날씨에 감사하며 예상보다 늦게 청주 도착.

다둥이 카드로 1,600원! (역시 다자녀 카드는 신이야)


5층부터 시작된 자유 투어

6명이 함께 입장했지만, 각자 미술 보는 속도가 천차만별.

"야, 나 먼저 내려간다!" "어, 나 아직 3층인데?"

결국 각자 감상 후 점심때 재회하기로.


점심은 센스의 시작

맛집까지 알아본 친구 덕분에 8,000원짜리 보리밥 정식을 맛있게 먹었다.

그런데 진짜 사건은 카페에서 터졌다.

무화과 타르트 9,000원.

점심보다 비싼 후식이라니! 혼자였다면 평생 이런 사치 못 했을 거다.

하지만 친구 여러 명이 있으니 가능했다.

*"달콤하고 슬픈 감성"*이라는 뜻을 가진 카페에서 사진도 찍고, 행복한 한때.


야심 찬 계획 vs 현실

우리의 계획: 미술관 → 수장고 → 비엔날레 → 운보미술관 → 세종수목원

우리의 현실: 미술관 하나 + 작품 감상평 수다 + 디저트 카페

계획은 많았으나, 달콤한 맛으로 대체되었다.


동부창고에서의 여유

담배 회사 건물이었던 곳이 복합문화공간으로 변신!

음악회도 즐기고, 열림장터에서 구경하는 재미도 쏠쏠.

은반지 만들기 체험도 있고

"나 애 때문에 집에 제일 먼저 가야 해!"라던 친구가 도마에 우드버닝 한다고

우리 출발 시간을 한 시간이나 늦췄다.

키링 고민하던 친구는 결정장애 끝에 키링 4개를 구매해서 가방을 화려하게 장식.

"이게 바로 행복이지~"


단체 사진의 예술

단체 사진 포즈를 공부하며 열심히 찍었다. 사진 보면서 깔깔대는 우리.

이게 바로 미술관 투어의 완성.


귀가, 그리고 남편들의 온도차

집에 늦게 도착한 한 친구. 주차 자리가 없다고 남편이 지하주차장으로 나와서 자기 차를 빼줬다고.

"부럽다... 진짜..."

또 한 친구는 모임 끝나고 남편이 항상 데리러 온다며 부담스럽다고.

나는? 애들 저녁 신경 안 쓴다고 쓴소리나 들었다.

그래도 남편한테 카톡으로 내 위치 실시간 공유하며 "비 온다고 우산 가져와"

"오, 멋진 재회를 기대했건만..."

신호등에서 우산 들고 서 있는 남편. 버스에 내려 신호등 걷는데 까지 비를 맞았다

그냥... 그게 전부였다.


결론

미술관은 친구와 가는 게 정답이다.

혼자 가면 16,000원이 아깝고, 친구와 가면 9,000원짜리 타르트도 행복이 된다.

작품 설명은 못 들어도, 옆에서 "이거 뭐야?"하고 웃을 사람이 있으면 그게 바로 예술이다.

다음 미술관 투어도 친구들과. 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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