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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바중독

고시원 알바를 계속할 수 있었던 이유

당근에서 우연히 본 고시원 알바. 그냥 하루 가볍게 시작한 일이었는데, 어느새 2년이 훌쩍 넘었다.

이유는 단순하다. 원장님 때문이다.


작은 배려들이 쌓여 만든 마음

명절이 다가오면 원장님은 봉투를 챙겨주신다.

현금이 든 봉투. 올해는 선물세트까지 따로 챙겨주셨다.

명절 때마다 고시원 주방에는 늘 간식이 가득하다.


건조기도 그랬다.

원래는 지폐를 넣어야 쓸 수 있는 유료였는데, 새 건조기 2대로 바꾸면서 무료로 바뀌었다.


어느 날 갑자기 기프티콘이 날아왔다. "수능 백일 남은 기념으로 딸 힘내라고 응원의 선물까지." 솔직히 고백하자면, 나는 내 딸의 수능 백일 전인지도 몰랐다. 원장님이 더 신경 써주셨다.


주말 끼고 중국 여행 간다고 말씀드렸을 때도 그랬다.

"밥 한 끼 사 먹으라고" 하시며 슬쩍 용돈을 쥐어주셨다.

원장님의 미소를 어떻게 거절하랴.


일이 아니라 사람이었다

일을 하다 보면 분명 힘든 순간이 있다.

거울에 앉은 물때, 노후된 곳에 슬쩍 올라온 곰팡이.

청소하면서 듣기 싫은 말을 들을 때도 있다.

하지만 원장님은 항상 직접 나서신다.

궂은일도 마다하지 않고 함께 처리하시면서, 늘 "감사합니다"라는 말로 끝을 맺으신다.


사람이 좋으니 일도 좋아진다는 걸, 나는 이곳에서 배웠다.


그 사실을 확실히 깨달은 순간이 있었다.

원장님이 해외에 보름간 나가셨을 때였다.

다른 분과 카톡으로 업무 지시를 받았는데, 같은 일을 하는데도 이상하게 재미가 없었다.

시간은 더디게 가고, 발걸음도 무거웠다. 같은 고시원, 같은 업무인데 뭔가 달랐다.

그제야 알았다. 내가 이 일을 계속하는 건 일 자체가 좋아서가 아니라, 이곳에서 만난 사람이 좋아서였다는 것을.


마음이 통하는 곳

요즘 세상에 이런 곳이 얼마나 있을까.

아르바이트생을 그저 대체 가능한 인력이 아니라, 함께 일하는 사람으로 대해주는 곳.

명절 선물, 기프티콘, 용돈. 그 모든 것이 의무가 아니라 진심에서 우러나온 행동이라는 걸 느낄 수 있는 곳.

나는 그저 고시원에서 청소하고 정리하는 아르바이트생일 뿐이다.

하지만 원장님의 작은 배려들이 쌓여, 이제는 "우리 고시원"이라고 부르게 됐다.

내일처럼 애정을 갖고 일하게 됐다.

2년이 넘었지만, 그만둘 생각은 없다.

좋은 사람과 함께하는 일은, 그 자체로 축복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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