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밧줄 하나로 심장을 훔친 밤


"어? 문자 왔어?" "응! 드디어!"

공연 하루 전까지 아무 연락이 없어서 슬슬 불안해지던 차에, 드디어 도착한 티켓 문자.

신랑이 신청해 준 경기아트센터 무료 공연이었다.

나는 친한 단톡방에 얼른 이 소식을 뿌렸었는데, 정작 친구는 문자를 못 받았다며 난리였다.

홈페이지는 마비, 전화는 먹통. 서커스 보려고 일정까지 빼놨는데 연락이 안 되니 얼마나 답답했을까?

그런데 더 큰 반전은... 신랑이 갑자기 회식으로 불참!

"그럼 나랑 갈래?" 친구와 함께 가게 된 이 상황이, 오히려 더 좋았다는 건 비밀이다. ㅎㅎ


문화생활의 고수를 만나다

친구는 정말 멋진 사람이다.

일하는 시간을 척척 조정해서 문화생활을 즐기는 그녀.

우리 집은 태양의 서커스에 5명이 50만 원을 결제했는데, 그녀는 2명이 40만 원짜리

좋은 자리를 예매했다더라.

"와... 돈을 제대로 쓸 줄 아는 문화인이네!"라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그리고 우리는 맨 앞줄에 앉았다. 앞줄! 무료인데 앞줄이라니!


밧줄 하나로 한 시간을 채우다

<By a thread>는 정말 인상적인 공연이었다.

화려한 의상도, 진한 무대 화장도 없었다.

오직 큰 밧줄 하나. 그게 전부였다.

그런데 그 밧줄 하나로 한 시간 동안 우리 심장을 쥐락펴락했다.

공중에서 펼쳐지는 근육의 향연, 보이지 않는 '인간관계'의 끈을 표현한 움직임들.

혼란과 유쾌함, 사랑과 두려움... 모든 감정이 밧줄 위에서 춤췄다.


태양의 서커스와는 또 다른 매력. 화려함을 덜어낸 자리에 오히려 더 강렬한 인간미가 채워져 있었다.


친구의 예민함, 나의 둔감함

공연이 끝나고 친구가 말했다. "야, 먼지 때문에 기침 나더라. 밧줄에서 먼지 날리는 거 안 보였어?"

"응?? 나 사레 들렸나 했는데?"

순간 깨달았다. 아, 나는 참 둔감하는구나!

친구는 밧줄에서 날리는 먼지까지 다 느끼고 있었는데, 나는 그저 공연에만 빠져서 멍하니 보고 있었던 것. 예민한 친구 덕분에 공연의 디테일까지 알게 됐다.


결론: 신랑이랑 볼 때보다 친구랑 같이 가니 더 좋았다. (미안 여보 )


맨 앞줄에서 본 근육과 밧줄의 향연, 무료 공연이라는 사실이 믿기지 않을 만큼 완벽했던 밤.

경기아트센터 G-Arts 브랜드 론칭 기념 공연이었다는데, 이런 공연 자주 해주세요!

그리고 친구야, 너 정말 문화생활의 고수다. 다음엔 어디 갈까?

눈오는날 집까지 태워줘서 고마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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