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딸의 짐을 싣고 돌아오는 길,
백미러 너머로 멀어지는 캠퍼스의 불빛을 보며 문득 생각했다.
학기 시작한다고 캐리어 가득 짐을 싣고 태워줬던 게 엊그제 같은데,
벌써 시험이 끝나고 방학이 다가온다니. 시간은 정말 빠르다.
"아빠, 이번 주말에 스키장 가요. 1학점 따러요."
처음 들었을 때는 귀를 의심했다.
대학교에서 2박 3일로 스키장을 가는 게 학점이라니.
내가 대학 다닐 때와는 정말 다른 세상이다.
세상이 이렇게 바뀌었구나, 새삼 놀라웠다.
시험기간이라 그런지 일요일 저녁인데도 캠퍼스에는 학생들이 많았다.
도서관 불빛 아래서 구부정한 자세로 책을 들여다보는 아이들,
카페 창가에 모여 앉아 필기를 공유하는 친구들.
저 아이들도 누군가의 자식이고, 저 아이들의 부모도 나처럼 가슴 한편이 먹먹할 것이다.
학교 근처 식당에서 저녁을 먹고, "시험공부해야 돼요" 하며
다시 학교로 들어가는 큰딸을 보냈다.
손 한 번 흔들고 돌아서는 뒷모습이 어른스러웠다.
언제 이렇게 컸을까.
작은딸 생각에 마음이 복잡하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이번엔 작은딸 생각이 밀려왔다.
수시 합격 소식을 듣고 얼마나 기뻤던가.
그런데 기쁨도 잠시, 아이는 지금 선택의 기로에 서 있다.
서울의 작은 여대와 수원 병원 옆 학교 사이에서. '인서울'이라는 단어 하나가 주는 무게감에,
아이도 나도 선뜻 답을 내리지 못하고 있다.
주변을 보면 더 큰 행복한 고민을 하는 친구들도 있다.
스카이 대학이냐, 지방 의대냐를 두고 저울질하는 아이들.
반대로 6개 수시에 모두 떨어져 벌써 재수학원을 알아보는 친구들도 있다.
각자의 자리에서 각자의 무게를 짊어지고 있는 고3 아이들.
요즘 학교는 등교하는 친구도 얼마 없고, 수업 대신 자유시간이 계속된다
갑자기 얻은 자유를 어떻게 써야 할지 모르는 아이들.
고1, 고2 때 시험기간이면 호수공원, 문학관, 수목원으로 불러내 30분 출석 체크하고 헤어지던
그 일상들이 그리울 텐데
우리는 지금 학교의 서열이 줄 서 있고,
성적에 따라 줄을 세우는 현실 속에 살고 있다.
그 현실이 가혹하다는 걸 알면서도, 그 안에서 최선을 다할 수밖에 없는 게
우리 부모들의 마음이다.
면접장을 나서던 그날
면접 보던 날이 생각난다.
떨리는 마음으로 들어갔다 나온 아이가 차에 타자마자 쫑알쫑알 이야기했다.
"교수님이 뭐라고 물어보셨는데, 정확히 생각이 안 나.
근데 뭔가는 대답했어!"
그렇게 열심히 예상 문제 뽑아서 공부했는데, 하나도 안 나왔다는 볼멘소리.
그 말을 하면서도 어딘가 홀가분해 보이던 얼굴.
두 개 학교 면접을 준비하면서 아이는 확실히 성숙해졌다.
질문에 답하는 법을, 자신의 생각을 정리하는 법을, 떨림을 이겨내는 법을 배웠다.
그 과정 자체가 이미 큰 공부였다.
" 너의 선택을 응원한다"
오늘 아이에게 말했다.
"학교 끝나고 네가 지원한 학교에 직접 가봐.
캠퍼스도 둘러보고, 느낌도 받아보고. 그리고 네가 결정해.
어떤 선택을 하든 엄마 아빠는 응원할게."
스스로 선택해야 후회하지 않는다.
부모가 정해준 길이 아니라, 자기 발로 걸어가기로 결심한 길이어야
앞으로 힘들 때도 버틸 수 있다.
지금 이 순간, 수많은 고3 부모들이 나와 같은 마음일 것이다.
아이가 원하는 곳에 가길 바라면서도, 혹시 나중에 후회하진 않을까 걱정하는 마음.
응원하면서도 조마조마한, 믿으면서도 불안한 이 복잡한 심경.
하지만 한 가지는 확실하다.
우리 아이는 이미 큰 문 하나를 통과했다. 넘어지고 일어서고, 울고 웃으며 여기까지 왔다.
그 과정에서 배운 것들, 견뎌낸 시간들이 앞으로 살아갈 힘이 되어줄 것이다.
서울이든 수원이든, 네가 선택한 곳이 네게는 최고의 학교가 될 거야.
엄마 아빠는 언제나 네 편이고, 네가 가는 길을 응원한다.
오늘도 수고했어, 우리 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