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진아 도서관

서대문 형무소를 돌아보며
아픈 역사의 벽을 따라 걷다가
뜻밖에 마주한 도서관 하나.

고요히 서 있는 그 건물 앞에서
나는 한 부모의 시간을 생각했다.
사랑하는 딸을 먼저 보내고
그 슬픔을 세상 속으로 흘려보내는 대신
벽돌로 쌓아 올린 마음.

재력은 크기보다 방향이라는 걸
그곳이 말해 주었다.
가장 아픈 자리에
가장 따뜻한 공간을 세운 사람들.

딸이 사랑하던 책을
이제는 수많은 아이들이 펼친다.
한 생의 이름이
수천 권의 페이지로 이어져
오늘도 누군가의 하루를 밝힌다.

무료로 들어와
평생을 다녀도
다 읽지 못할 책들.
지식은 나눌수록 줄지 않고
사랑은 나눌수록 넓어진다는 증거.

나도 문득 생각했다.
언젠가 나의 마지막 날이 오면
무엇을 남길 수 있을까.

비석 대신
책장을.
눈물 대신
이야기를.

누군가 조용히 앉아
한 권을 펼치며 위로를 얻는 곳.
그곳에
내 이름은 없어도 좋다.

다만
누군가의 내일이 조금 더 밝아진다면,
그것이면 충분하다.

작가의 이전글M버스 안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