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하면 로맨스, 너가 하면 불륜

작가 지망생의 홍보 심리학



4년된 단톡방, 그리고 한 명의 잔류자


4년간 이어진 단톡방. 시간이 흐르면서 올드 멤버들은 하나둘 떠났다.

"바빠서 참여하기 어려워요", "아쉽지만 나가볼게요"라는 정중한 인사말과 함께.

새로운 얼굴들이 그 자리를 채웠고, 방은 다시 활기를 되찾았다.

그런데 유독 한 명만 남아있었다.

김선영. 다른 올드 멤버들과 달리 그녀는 꿋꿋이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선영 씨, 인원 체크할 때 헷갈려서 그런데 톡방은 잠시 나가계시고 밴드는 그대로 계셔도 될 것 같아요."


최대한 정중하게, 상처받지 않게 말을 골라서 보낸 메시지.

하지만 돌아온 답변은 예상과 달랐다.


"6월 초중에 책 나오면 소개해드리고 방 빠질게요.

다른 샘들이 책 소식 알려달라 하셔서 그때까지만... ㅋㅋ"


그 순간 모든 퍼즐이 맞춰졌다.

그녀가 방을 떠나지 않은 이유. 4년간의 인맥, 수십 명의 잠재적 독자들.

그것은 그녀에게 포기할 수 없는 마케팅 채널이었던 것이다.



1장: 책 출간의 날


드디어 그날이 왔다.

김선영의 첫 소설 『내 마음의 북』가 세상에 나온 것이다.


단톡방은 순식간에 축제 분위기가 되었다.

폭죽 이모티콘이 끊이지 않았고, 축하 메시지들이 줄을 이었다.


"와! 드디어 나왔네요!" "축하드려요! 정말 대단해요!" "우리 선영 샘 작가님이 되셨네요!"


그리고 그녀의 본격적인 홍보가 시작되었다.


"아파트나 인근 도서관에 우리 회원님들의 파워로 신착도서 신청 부탁드려도 될까요... 구매하신 분들을 위해 작가가 직접 찾아가는 사인 서비스도 해드린답니다 ㅋㅋㅋ"



2장: 홍보의 심리학


메시지를 본 순간, 나는 복잡한 감정에 휩싸였다.


한편으로는 이해가 갔다. 만약 내가 작가가 된다면?

내 책이 세상에 나온다면? 아마도 나 역시 이런 방법들을 동원하지 않을까?


브런치에 글을 쓰면서 언젠가는 나도 작가가 되고 싶다는 꿈을 키워왔다

김치국부터 마시는 일이라는 걸 알면서도 말이다.

그런 내가 그녀의 홍보를 어떻게 바라보아야 할까?

실제로 단톡방 멤버들의 반응은 뜨거웠다.


정미영은 인스타그램 스토리에 도서관 신착도서 신청 인증샷을 올리며 "커피 쿠폰도 받고 좋은 책도 추천하고!"라고 적었다.


박혜진은 남편 명의로도 도서관에 신착도서 등록을 신청했다고 했다.


최은경은 직장 동료들에게까지 추천한다며 단체구매를 제안했다.


이 모든 것을 보면서 나는 생각했다. 과연 이것이 순수한 응원일까,


아니면 그녀의 치밀한 계산이 만들어낸 결과일까?



3장: 내가 하면 로맨스, 너가 하면 불륜


사람의 심리는 참 묘하다.


똑같은 행동도 누가 하느냐에 따라 전혀 다르게 받아들여진다.


내가 상상하는 나의 홍보:

"소중한 인연들에게 조심스럽게 알리는 따뜻한 소식"


"진심어린 창작물을 나누고 싶은 작가의 마음"


"독자와의 소통을 중시하는 겸손한 자세"


실제로 본 그녀의 홍보:

"4년간 인맥을 관리한 치밀한 마케팅 전략"


"단톡방을 버티고 있던 숨겨진 목적의 실행"


"집단 심리를 이용한 효율적인 홍보 수법"


같은 행동인데 왜 이렇게 다르게 느껴질까?



4장: 작가 지망생들의 딜레마


나는 문득 궁금해졌다. 나 같은 작가 지망생들은 모두 이런 고민을 하고 있을까?


Case 1: 이현수의 경우 대학 동기 단톡방에서 2년째 소설을 연재하고 있다. 매주 금요일마다 "이번 주 연재분입니다"라며 링크를 올린다. 처음엔 "우와 대단해!"라는 반응이 많았지만, 이제는 대부분 읽씹한다. 그래도 그는 꾸준히 올린다. 언젠가는 이 중 누군가가 출판사 관계자일지도 모르니까.


Case 2: 정윤아의 경우 블로그에 소설을 쓰면서 지인들에게 절대 알리지 않는다. "진짜 실력으로 인정받기 전까지는 아는 사람들에게 말하고 싶지 않아"라고 했다. 그녀는 순수한 걸까, 자존심이 센 걸까?


Case 3: 강민호의 경우 회사 팀장인데 점심시간마다 동료들에게 자신의 웹소설 이야기를 한다. "어제 조회수가 만 명을 넘었어", "댓글에서 재밌다고 하더라"며 자랑한다. 동료들은 겉으로는 "대단하네요"라고 하지만 뒤에서는 "좀 부담스럽다"고 수근거린다.


case4:글을 쓰면 쓸수록 자기의 글이 쓰레기 라며 비판적으로 변하는 은정이


우리는 모두 어디선가 강민호이고, 어디선가 정윤아이며, 때로는 이현수이기도 하다.




5장: 홍보의 정당성


그렇다면 작가의 홍보는 어디까지가 정당할까?

김선영이 4년간 단톡방에 남아있었던 것. 그것이 계산이었다고 하더라도, 정말 비난받을 일일까?

생각해보니 우리는 이미 홍보의 바다에서 살고 있다.

인스타그램의 일상 공유도 결국 자신의 브랜딩이고, 페이스북의 근황 업데이트도 자신의 홍보다.

카카오톡 프로필에 올리는 한 줄 소개조차 자기 PR이다.

그런데 왜 유독 '책 홍보'만큼은 순수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걸까?


6장: 진정성이라는 이름의 함정

"진정성 있게 써야 해."

"돈 벌려고 쓰면 안 돼."

"순수한 마음으로 창작해야지."

작가 지망생들이 흔히 듣는 말들이다. 하지만 정말 그럴까?


김선영의 책을 실제로 읽어본 사람들의 반응은 의외로 좋았다.

"진짜 재밌어요. 밤새 읽었어요." "감동적이네요. 저도 꿈을 포기하지 말아야겠어요." "문체가 정말 좋아요. 다음 작품도 기대돼요."

그녀가 홍보에 능했다고 해서 작품의 가치가 떨어지는 걸까? 마케팅을 잘한다고 해서 진정성이 없는 걸까?


7장: 독자의 관점

한편, 독자들은 어떻게 생각할까?

단톡방에서 그녀의 책을 구매한 멤버들과 개별적으로 대화를 나눠봤다.

정미영: "처음에는 의무감으로 샀는데, 읽어보니 정말 좋더라고요. 주변에도 추천했어요."

박혜진: "솔직히 부담스럽긴 했어요. 안 사면 안 될 것 같은 분위기였거든요. 하지만 읽고 나니 후회는 안 해요."

최은경: "저는 그런 거 별로 신경 안 써요. 좋은 책이면 추천하는 거고, 별로면 안 하는 거죠. 다행히 재밌었어요."

흥미롭게도 대부분은 홍보 방식보다는 작품 자체에 더 관심이 있었다.


8장: 또 다른 작가의 탄생

6개월 후, 우리 톡방에 또 다른 소식이 전해졌다.

이번에는 신입 멤버인 한지원의 에세이집 출간 소식이었다.

"안녕하세요. 부끄럽지만 제 첫 에세이집이 나왔어요. 혹시 관심 있으시면..."

그녀의 메시지는 김선영과는 사뭇 달랐다. 조심스럽고, 겸손했다.

하지만 반응은 어땠을까?

"링크 주세요!" "축하해요!" "당장 주문했어요!"

결과적으로는 비슷했다.

그때 깨달았다. 홍보의 방식이 문제가 아니라, 그것을 받아들이는 우리의 마음가짐이 더 중요한 것 같다는 걸.


9장: 나의 선택

1년이 지났다.

나도 드디어 브런치 작가가 되었고, 몇 편의 글이 인기를 끌었다. 출판사에서 연락이 왔다.

"에세이집으로 엮어서 출간하는 것 어떻게 생각하세요?"

그 순간 머릿속에 떠오른 건 김선영의 모습이었다.

나는 어떤 선택을 할까?

선택지 1: 철저히 숨기고 혼자만의 성취로 만족한다.

선택지 2: 자연스럽게 지인들에게 알리되, 부담주지 않게 한다.

선택지 3: 적극적으로 홍보하되, 진정성을 잃지 않으려 노력한다.

선택지 4: 모든 수단을 동원해서라도 성공을 거머쥔다.


10장: 성공의 정의

결국 나는 선택지 2와 3의 중간 어디쯤을 택했다.

"안녕하세요. 부끄럽지만 제 첫 에세이집이 나왔어요.

평소 제 글을 좋아해주신 분들께 감사의 마음으로 알려드려요.

물론 부담 갖지 마시고, 관심 있으시면 언제든지..."

그리고 김선영에게 개인 메시지를 보냈다.


"선영 언니, 저도 드디어 책이 나왔어요. 그때 언니가 홍보하시는 걸 보면서 많은 걸 배웠어요.

작가로서 살아간다는 게 쉽지 않다는 것도, 그래도 포기하면 안 된다는 것도요."


그녀의 답장은 의외로 따뜻했다.


"축하해요! 정말 기뻐요. 사실 그때 저도 많이 고민했어요.


어떻게 하는 게 맞는지... 하지만 지금 생각해보니 우리 모두 그냥 꿈을 향해

열심히 살아가는 사람들인 것 같아요."



에필로그: 내가 하면 로맨스, 너가 하면 로맨스


6개월이 더 지났다.

우리 단톡방에는 이제 세 명의 '작가님'이 있다. 김선영, 한지원, 그리고 나.

신기하게도 이제는 누가 홍보를 해도 자연스럽다.

서로의 책을 추천하고, 독서 모임도 만들었다. 때로는 합동 사인회도 연다.

그리고 깨달았다.


내가 하면 로맨스, 너가 하면 불륜이라고 생각했던 건 결국 나의 편견이었다는 걸.


우리 모두는 그저 자신의 꿈을 향해 나아가는 사람들이었다.

방법이 다를 뿐, 마음은 같았다.


김선영이 4년간 단톡방을 지킨 것도, 한지원이 조심스럽게 책을 알린 것도, 내가 중간 지점을 택한 것도,

모두 우리만의 방식으로 꿈을 이루려는 노력이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건, 우리 모두 좋은 작품을 쓰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한다는 것이었다.


후기: 작가 지망생에게

이 글을 읽는 당신이 작가 지망생이라면, 이것만은 기억해주었으면 한다.

홍보도 실력이다. 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건 작품이다.

사람들은 당신의 홍보 방식을 기억하지 않는다. 당신의 작품을 기억한다.

그러니 어떤 방식을 택하든, 부끄러워하지 마라. 대신 더 좋은 작품을 쓰기 위해 노력하라.

그리고 때로는 다른 작가 지망생들을 응원해주어라. 우리는 경쟁자가 아니라 동반자니까.

내가 하면 로맨스, 너가 하면 불륜이 아니라, 우리가 하면 모두 로맨스다.

꿈을 향한 우리의 이야기 말이다.

"모든 작가 지망생들에게, 그리고 언젠가 나 역시 작가가 되기를 꿈꾸는 모든 이들에게 이 글을 바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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