헬리오가발루스의 장미가 들려주는 현대 이야기 미술관에서
사춘기때 난 백합과 함께 자살하고 싶었다
고통없이 백합 향기에 취해서
미술관에서 마주친 그 제목, "헬리오가발루스의 장미". 꽃과 인명이 함께 있다니, 분명 아름다운 이야기일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그림 속 진실은 전혀 달랐다.
그림 속 이야기 3세기 로마의 젊은 황제 헬리오가발루스. 그는 연회 손님들을 천장에서 쏟아지는 장미꽃잎으로 질식시켜 죽이는 기괴한 처형을 고안했다. 알마 타데마의 그림은 바로 그 순간을 포착한다. 화려한 대리석 궁전, 붉은 장미꽃잎의 바다, 그리고 그 속에서 서서히 숨을 잃어가는 사람들. 위층 발코니에서 내려다보는 황제와 귀족들의 무표정한 얼굴들.
꽃잎 속에 숨겨진 현대의 진실
이 그림을 보며 떠오르는 건 오늘날 우리 사회의 모습이다.
SNS에서 쏟아지는 '좋아요'와 하트들. 겉보기엔 사랑과 관심의 표현 같지만, 때로는 진정한 목소리를 묻어버리는 장미꽃잎이 되기도 한다. 비판적 사고는 '부정적'이라는 딱지가 붙고, 불편한 진실은 예쁜 포장지에 싸여 외면당한다.
기업들의 마케팅도 마찬가지다. 화려한 광고, 아름다운 브랜딩, 환경보호를 외치는 그린워싱. 그 예쁜 꽃잎들 아래에서는 노동자들이 숨을 쉬지 못하고, 환경이 파괴되고, 소비자들이 진실로부터 멀어진다.
권력의 장미정원
정치 현장에서도 이 장미꽃잎의 논리는 계속된다. 아름다운 공약들, 감동적인 연설들, 화려한 세리머니들. 하지만 그 꽃잎 더미 아래에서는 시민들의 목소리가 질식하고, 불편한 진실들이 매몰된다. 권력자들은 발코니에서 내려다보며 "아름답지 않나?"라고 미소 짓는다.
침묵하는 관객들
가장 섬뜩한 건 그림 속 관객들의 표정이다. 누구도 막으려 하지 않는다. 마치 오늘날 우리가 불의를 목격하면서도 '나 하나쯤이야', '어차피 바뀌지 않을 텐데'라며 침묵하는 것처럼.
향기로운 질식의 시대
헬리오가발루스의 장미는 21세기에도 여전히 피어난다. 아름다운 포장으로 덮인 권력의 폭력, 달콤한 말로 포장된 조작, 예쁜 꽃잎으로 가려진 진실들. 우리는 매일 이 장미정원을 걸으며 살아간다.
하지만 이 그림이 주는 진짜 메시지는 절망이 아니다. 바로 '각성'이다. 꽃잎의 아름다움에 속지 말고, 그 아래 숨겨진 진실을 보라는 경고. 관객이 아닌 목격자가 되어, 침묵하는 공모자가 되지 말라는 외침.
오늘도 우리 주변에서 헬리오가발루스의 장미가 흩날리고 있다.
그 향기에 취해 잠들지 말고, 깨어있는 눈으로 그 꽃잎 너머의 진실을 봐야 할 때다.